- <닥치고 패밀리>, 시대착오적인 시트콤의 한계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로또 당첨 모양 드라마 한 작품으로 하루아침에 톱스타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와 매력 있고 정감 가는 캐릭터,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받쳐줄 탄탄한 연기력, 이 삼박자가 절묘하니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리라.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와 현빈이 그랬고, MBC <커피 프린스 1호점> 또한 공유와 윤은혜를 온전한 스타로 만들었다. 가까이로 보자면 tvN <인현왕후의 남자>의 유인나도 역할 하나 잘 만나 존재감이 확연히 달라졌으며 최근 화제작 tvN <응답하라 1997>에 출연 중인 연기자들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이렇다 보니 연기자들이 작품 선택을 두고 심사숙고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싶다. 똑같이 힘들게 노력했는데 누군 박수갈채에다 CF 출연이며 상까지 받는가 하면 누군 길바닥에서 느닷없이 등짝을 두들겨 맞는 신세가 되니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프로의식 결여라는 소리를 들을는지는 모르나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이미지를 더해줄 역할을 고르려고 애들을 쓰는 건 인지상정이 아니겠나.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재혼으로 합가를 하게 된 두 가족의 좌충우돌 에피소드, KBS2 시트콤 <닥치고 패밀리>는 참 이상한 작품이다. 어떻게 매력은커녕 정이 가는 인물이 단 한 사람도 없을 수가 있는지, 살아생전 이런 드라마는 처음이다. 그렇다 보니 요즘은 아예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게 된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다 보면 공감이 가는 인물이나 상황 하나쯤은 만들어지겠지 싶어서. 사실 꾹꾹 놀러 참으며 기다리는 이유는 이 시트콤에 관심이 가는 연기자들이 출연 중이기 때문인데 불과 한 달 만에 그 인내심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마다 내 가슴을 치게 만드는 연기자는 바로 <옥탑방 왕세자>에서 내시 도치산 역으로 눈도장을 찍은 최우식이다. 도대체 이 청년은 왜 하필 차기작으로 이 시트콤을 택한 걸까? 본인이고 소속사고 사전에 충분히 검토를 했을 텐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맡은 열우봉이란 인물이 답답하긴 해도 짜증을 불러오지는 않는다는 점. 그래도 하도 대거리 한번을 제대로 못하고 늘 당하기만 하니 당장 오늘이라도 손을 잡아끌어 탈출시키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열우봉의 아버지 열석환(안석환)네 식구들은 가장을 닮아 착하긴 해도 지나치게 눈치가 없는 사람들이다. 공짜라면 자리를 안 가리고 사족을 못 쓰는가하면 굶고 살았는지 먹을 것만 보면 체면 불구 환장을 하고 덤비는 통에 늘 어머니 우신혜(황신혜)네 식구들의 눈총을 산다. 그들이 궁상을 떨 때마다 매번 들려오는 닭울음소리. 에구구, 닭이 다 싫어질 지경이지 뭔가.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상처를 한 후 지금껏 아이들을 돌봐준 장모님 궁애자(남능미)와 쭉 함께 살아왔고 재혼을 한 다음에는 어쩌다 보니 새 장모님 나일란(선우용녀)까지 모시고 살게 된 열석환. 자기 아들딸들이며 장모님이 허구한 날 아내네 식구들에게 무시와 멸시를 당하는데도 항상 실실 웃고만 있다. 이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그저 사람 좋고 긍정적이기만 한 것도 민폐라는 생각이 들 정도.

반면 엄마 우신혜 쪽 가족들은 하나 같이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다. 큰딸 지윤(박지윤)과 둘째 딸 다윤(다솜), 거기에 신혜의 어머니에다가 동생 우본(이본)까지 거만, 교만, 오만, ‘만’ 삼종 세트로 똘똘 뭉친 개념 없는 여자들이니까. 그냥 성질만 칼칼하다면 개성으로 봐줄 만도 한데 사치스럽고 게으르고 무능하고, 신세를 지면서도 고마운 걸 모르는데다가 때론 교활하기까지 하니 한 마디로 평생 인연을 맺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랄 밖에.

그런데 문제는 캐릭터만이 아니다. 상황 설정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한 둘이 아니다. 최근의 몇몇 에피소드들만 봐도 그렇다. 우연히 할머니와 손자 벌 되는 고교생이 서로 벗은 몸을 보게 된다는 설정도 어이없지만 요즘 세상에 고등학교 2학년짜리 남학생(최우식)이 무슨 시간이 남아돌아서 노인들이 문화센터에서 춤을 배우시는 시간에 그 부근을 얼쩡거리겠으며, 아무리 센터장(안석환)이라고 해도 연구원으로서의 실력은 출중하다지만 피부미용 강의 경험이 전혀 없고 그다지 적합하다고도 보기 어려운 자신의 딸(박희본)에게 강좌를 맡길 수 있겠는가. 전권 발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왜 굳이 피부미용실 기념행사에 가족 소개 코너가 있어야만 하는지, 왜 그들은 예상대로 걸신들린 식성으로 행사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야만 했는지, 이거야 욕하면서도 꾸역꾸역 본다는 막장 드라마 코드를 차용해온 신개념 시트콤도 아니고 원. 어쨌거나 나는 하루하루 이미지가 망가져 가는 연기자들이 아까워 죽겠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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