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커 펀치’, 예고편의 카타르시스로 만족하라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비디오 게임은 예술인가.” 시카고 선 타임즈의 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여기에 대해 한 번 뱉은 부정적인 말 한마디가 기나긴 토론이 되어 몇 년을 끌고 있다. 이버트 자신이 여기서 빠지겠다는 컬럼을 썼는데도, 그칠 줄을 모르는 걸 보면, 이런 종류의 토론은 시작한 사람이 끝낸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정의에 대한 대부분의 토론이 그렇듯, 이 토론도 그리 쓸모는 없다. 다 ‘예술’이라는 개념을 과대평가한 결과라는 거다. 예술은 가치평가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냥 인간이 하는 특정 성격의 행동을 정의한 것에 불과하다. 무엇이 예술이라고 해서 예술이 아닌 다른 것보다 특별히 잘난 어떤 것이 되는 건 아니다. 심형래의 [디 워]는 예술이고, 동해 바다에서 보는 일출은 예술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쪽을 보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경험인가?

더 까다로운 건 어떤 행위에서 순수하게 예술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보자. 서구 문화가 만들어낸 가장 순수한 예술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돈 많은 불면증 환자의 수면 치료용으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많이 그렇게 쓰인다. [전함 뽀쫌낀]은 어떤가. 위대한 영화지만 이 작품의 예술성과 정치성을 구분할 수 있는가? 스핏파이어 전투기는 어떤가. 무도회에 나가는 소녀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예술작품이지만, 독일군의 공습으로부터 영국을 구한 전투기라는 기능성을 무시하고 이 기계를 아름다운 조형품으로만 볼 수 있을까. 그럼 게임은 어떤가. 여기엔 분명 미술, 음악, 문학 기타등등의 예술적 요소가 들어간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행위 자체는 예술 감상과 같은 걸까? 억지로 우기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성급하게 예술의 정의를 확장시킬 필요가 있을까? 좋은 게임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굳이 거기에 예술이라는 단어를 훈장처럼 억지로 달아주어야 하나.

난 지금 비디오 게임의 예술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비디오 게임이 예술이건 아니건 난 상관없다. 그건 단어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에 불과하다. 하지만 보다 지엽적인 면에 대해서는 조금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은 영화와 같은 내러티브 예술이 비디오 게임을 원작으로 삼거나 모델로 삼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인터액티브 예술과 내러티브 예술을 비교하며 원론적인 이야기를 읊을 생각이 없다. 그런 원론을 따라가다 보면 가상의 테크놀로지와 가상의 가능성을 끌어들이며 헛소리를 하게 된다. 그런 걸 하느니, SF 단편이나 한 편 더 쓰는 게 낫다. 내가 이야기하려는 건 보다 초라한 것이다. 인터액티브 매체로서 비디오 게임은 아직 극히 초보적이며 선택의 기회도 제한되어 있다. 얼핏 보면 게이머는 게임 안에서 무한의 자유를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게임을 진행하는 방법엔 제한이 있다. 멀티 엔딩 역시 중복답이 있다는 의미 이상은 없다. 어쩔 수 없이 현재의 비디오 게임은 일시적으로 내러티브 예술을 모방하게 되는데, 그 모방 자체는 모델로 삼은 내러티브 예술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 그런데 그걸 다시 한 번 영화가 모방한다고 치자. 당연히 허접한 시나리오가 나온다. 그 시나리오에는 게이머들이 단순한 이야기 진행과 공식을 용납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덩어리인 게임성이 제거되어 있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 그건 내가 막 [써커 펀치]의 시사회에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마 이 작품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미리 실망할 준비를 하고 보시라. 여러분이 이 영화를 보면서 예고편을 보고 상상했던 카타르시스를 느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노골적인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 장르를 예술영화식으로 풀어내려는 거대하지만 어설픈 야심 같은 것.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비디오 게임의 예술을 영화 속에 전격적으로 도입했다는 것이다. 본편 예고편만 봐도 나온다. 현자로 나오는 스코트 글렌이 “다섯 개의 아이템을 찾아라!”라고 말할 때부터 뭔가 수상쩍다고 느낀 사람들이 나 뿐일까? 다들 앞으로 이 영화가 보여줄 게 자연스러운 흐름을 형성하는 온전한 이야기가 아니라,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CG 액션을 잇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 다시 말해 영화의 내러티브를 모방하는 비디오 게임의 내러티브를 다시 한 번 모방하는 최악의 각본을 따르는 영화라는 것을 눈치 챌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거다.

지금의 기술문명이 계속 지속된다면 앞으로 비디오 게임은 우리가 지금 만지작거리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매체가 될 것이다. 그 안에서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 [올리버 트위스트]나 [죄와 벌] 수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날도 올 것이다. 그 때가 된다면 영화가 비디오 게임을 모방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아니, 그 때가 된다면 비디오 게임이 영화라는 예술을 먹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가 아니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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