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에 손을 얹을 수도 있었는데 제가 하면 이 사람들이 너무 괴로울 것 같은 거예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제가 살아남아야 하는데도, 왜 그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예전에 가수 활동할 때도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제가 낙오되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게 또 다시 되풀이 됐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제가 팀을 이루는 걸 잘 못하기도 하고, 교류가 없었던 게 오늘의 결과로 돌아온 것 같아요.”

- KBS2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에서 이수경 씨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재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가수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 KBS2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 지난 주 이 프로그램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게 뭔가요?” 하는 마음이었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본 수많은 영화 속 키스신을 한데 모아놓은 장면처럼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들로부터 감동을 빌려 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과유불급이랄 밖에. 출연자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안타까웠지만 마치 베틀이라도 벌이듯 이 사연에 저 사연이 나가떨어지는 상황이지 뭔가.

게다가 의아한 건 심사위원 선정 기준이다. 물론 스포츠도 아니고 심사위원 자격이라는 게 따로 있을 리는 없지만 참가자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줄, 누구라도 토를 달기 어려운 실력과 식견만큼은 심사위원의 기본 덕목이 아닐는지. 현재 진행 중인 Mnet <슈퍼스타K 4>며 MBC <위대한 탄생>, SBS 까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교해보면 지나치게 큰 간극이 아니겠나.

나아가 처세가 재기의 관건이라는 사실을 통감시킬 의도였는지, 출연자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잔인하게도 30명 중 5인 1조로 구성되는 팀 결성에 동참하지 못하게 된 1인의 탈락. 너나 할 것 없이 탐낼만한 실력을 보여줬다든지 아니면 탁월한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다른 사람을 내 쪽으로 끌어 모으던지, 둘 중 하나여야 했다.

따라서 아무리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어도 그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출연자들의 시선을 모으지 못했다면 모두의 관심 밖일 수밖에 없고, 거기에 누군가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소심한 성품이라면 탈락 1 순위는 따 놓은 당상일 밖에.





그런지라 애당초 유난히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이수경(40) 씨가 걱정스러웠다. ‘사람과 나무’라는 그룹으로 활동을 하던 시절에도 그 같은 소심한 성품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손해를 본 것 같다는 그녀. 그녀는 결국엔 의사 표현 한번 변변히 하지 못한 채 탈락하고 말았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는데, 그녀에게 관심을 보인 출연자가 있기나 했을는지. 특히나 그녀는 젊은 층들이 그다지 반기지 않는 주부, 즉 아줌마가 아닌가. “착한 게 아니고 그건 바보 같은 거예요.” 끝까지 경쟁했던 한 출연자의 말이다. 과연 그럴까? 악다구니를 쓰듯 달려들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 그 생존 경쟁 속에서 나 아닌 타인의 심정을 고려하고 염두에 두는 사람은 바보인 걸까? 아마 그건 결코 아닐 게다.

오늘 밤 방송을 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으나 나는 그녀가 탈락하지 않았길 바란다. 그리고 믿는다. 실력 못지않게 중요한 처세는 남을 밟고 올라서거나 야멸치게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끌어주고 다독이며 함께 걷는 것이라는 걸 깨우쳐주기 위한 미션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수경 씨처럼 묵묵히 남을 배려하며 뒤에서 제 몫을 다하는 사람이 설 자리가 이 사회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탈락해서는 안 된다.

부디 이수경 씨도 시간이 흐른 뒤 지금처럼 지난날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이제는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좀 더 용기를 내줬으면 좋겠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서야 어찌 남들이 내 안에 감춰진 보석을 알아 볼 수 있겠는가. 그냥 그대로 행복하다면 몰라도 가슴 속에 앙금처럼 남아있는 노래를 향한 열망을, 한을 간직한 채 세월을 보내지 않길 바란다. 또한 모처럼 내본 그녀의 용기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게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기회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 프로그램이 고맙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KBS2]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