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희 “<나의처용>, 처용콤플렉스 앓는 현대인 자각하게 하는 연극” [인터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돌직구 인터뷰] “배우요? 배우는 사랑받을 수 있는 짓거리를 해야죠.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연기를 못하는 것. 그건 죄악이겠죠. 관객이 사랑해주고, 같이 하는 동료 배우들도 사랑으로 품어주는 배우 있잖아요. 이런 배우들이 모여 좋은 연극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동료배우들과 저희 집에 모여 고기파티를 하며 팀워크를 다지기도 합니다.(웃음)”

오는 14일부터 28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될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세 번째 작품, 연극 <나의처용은밤이면양들을사러마켓에간다>(이하 나의처용) 연습으로 바쁜 배우 이남희를 만났다. 최치언 작가와 이성열 연출 콤비가 뭉쳐 만든 <나의처용>은 현대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검은 처용의 속삭임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낼 예정. 이 작품의 특이점이라면 화와 분노를 참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부조리함을 검은 처용의 존재로 치환시킨 점. 연극 속에선 동남아시아 혼혈인 오가리와 그의 망상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낸다.

■ 막판에 뜨는 사나이(?) 이남희

최근 배우 ‘이남희’란 이름 석자를 극명하게 각인시킨 작품은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려진 <우어 파우스트>였다. 그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메피스토 연기를 선보여 제48회 동아연극상 연기상과 제4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연기상을 거머쥔 주인공이다.

사실, 최근 이남희의 행보를 보며 제일 먼저 떠오른 연극은 2005년 서울시극단 단원들과 이젠 고인이 된 박광정 연출가가 의기투합해 무대에 올린 <막판에 뜨는 사나이>였다. 온갖 야유와 독설을 내뱉는 능글능글한 캐릭터 ‘빅 파크스’를 맡아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정말 제목 그대로 막판에 뜰 것 같은 배우로 점쳐졌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뜬다’는 의미는 연극 마니아가 아닌 일반인들도 이름을 듣고 ‘아 그 배우’ 라고 바로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의미한다.

하지만 강렬한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2011년 배우 정보석과 함께 출연한 <우어 파우스트>가 전환점이 된다. 공연이 올려지기 전엔 연예인 정보석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린 게 당연지사. 하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기자들 뿐 아니라 관객들의 입에서 제일 많이 오르내린 이는 배우 이남희였다.

-당시 정보석 씨에 대해서만 기사가 우르르 쏟아져 나온 것에 대해 서운한 건 없었나.
“저는 오디션을 거쳐 <우어 파우스트>에 합류했는데, 연예인 출연 소식에 언론이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도 공연 본 후에 많은 분들이 메피스토에 대해 긍정적인 평을 해 주셔서 좋았어요.”

-상도 탔지 않나. 일반 관객들에게 ‘이남희’란 이름을 확실히 알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저도 더 이를 갈며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어요. 그런데 상 탔다고 해서 유명해지는 건 아니더라구요.(웃음)”

-배우 인생 20년이 넘었는데, 최근 들어서야 이남희 배우 멘트 하나 하나가 기사화되지 않나.
“‘연극 시상식도 영화, 연기대상처럼 TV 생중계하는 그 날까지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멘트랑,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가 올릭픽 경연식으로 진행 돼 마지막에 금은동 메달을 뽑아주셨으면 한다’는 말을 했었죠. 그런데 다 기사화 돼서 나오더라구요.”

-원래 그렇게 재치 있는 성격이었나. 아님 예전에도 그랬는데 주목이 덜했던 건가
“예전엔 말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 거죠. 시상식 때 한 멘트는 저희 어머님이 진짜 하신 말씀이구요. 또 제 신조가 연극이든 인생이든 즐겁게 하자인데. 같이 즐거울 수 있는 말들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헛소리가 되면 안 되는 거죠. 올림픽 멘트는 내 뱉기 전에 잠시 검색 해 본 다음에 정리해서 말 한 거에요.(웃음) 재치있게 받아들여진 말 주변 때문인지, 아님 연극대상을 탄 것 때문인지 몰라도 대통령 하례식도 초청받아 건배사를 제안하기도 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작품 제의는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우어 파우스트>이후로 조금 더 작품 제의가 많이 들어오긴 했는데, 그 뒤로 1년간 연극을 못했어요. 드라마 <무신>에 합류하게 됐거든요.”



■ 떡 방앗간 셋째 아들이 드라마 <무신>에 출연한 날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이남희(52)는 서울예대를 거쳐 연극무대로 뛰어들었다. 30년 가까이 연극과 함께했다. <길 떠나는 가족> <오구 죽음의형식> <남자충동> <벚꽃동산> <미친키스> <꼽추왕국> <안티고네> <방문자> <블라인드 터치> <짐> <하이라이프> <이> <뱃사람> <오셀로> <인간의 시간> <아트> 등 셀 수 없는 작품을 했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에선 당시 의상 담당자와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고 <아트>작품으론 팬 카페(연극쟁이 이남희)가 생기게 된다. 최근엔 시골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진 사건도 일어났다. 막을 내린 MBC 주말드라마 <무신>에서 음양술사인 주연지(최산보)역으로 나와 몰입도 있는 연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처음 해본 드라마 경험은 어땠나
“김진민 감독이 술자리에서 제 씬 더 나와야 되는데 많이 못 나왔다고 미안하다는 말도 했는데, 아무튼 저에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감독이 이번 <나의처용>도 꼭 보러온다고 했죠.”

-TV에 나오는 모습 보고 가족들도 좋아했겠다.
“제가 충청남도 예산 떡 방앗간 집 셋째 아들인데,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어요. 시골 사람들에겐 난리가 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인거죠. 연극 보러 서울 올라오는 건 쉽지 않잖아요. 제 아버지 유일한 꿈이 아들이 TV에 나오는 거였는데, 소원이 이뤄지신 거죠. 동네잔치를 벌일 정도로 기뻐하셨어요. 동네 사람들도 저를 보는 눈길이 달라지더라구요.”

-30년 동안 한 연극 작품보다 드라마에 한번 출연한 것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것도 있지 않나.
“연극 보는 층이 한정 된 것도 있겠죠. 장단점이 있다고 봐요. 연극배우들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걸 나쁘다고는 보지 않아요. 드라마에 출연 안하면 앙금이 남겠구나 생각해서 출연한 것도 있구요.”

-여기서 말하는 앙금이란 게 대중을 끌어 모으는 인지도 같은 건가.
“홍보팀이든 극단이든 이왕이면 인지도 있는 배우를 쓰고 싶어하죠. 그게 은연중에 배우들에게도 느껴지는 거죠.”

-드라마로 간 배우들은 잘 안 돌아오던데.
“다른 이유보다 페이의 격차가 크니까 흔들리지 않을 수 없어요. 배우도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전 드라마에 출연할지라도, 어떤 일이 있어도 1년에 한편 이상은 연극을 꼭 하고 싶어요.”



■ 브레이크 장치가 없는 차를 타고 달리는 ‘오가리’

연극 <나의처용>은 역신을 물리친 ‘처용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망상과 현실, 죽은자의 세계와 산자의 세계가 엉키면서 상당히 그로테스크하게 진행된다. 술과 마약에 취해 환각과 분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주인공인 오가리는 용서해야하지만 용서할 수 없는 갈등과 죄의식에 사로잡힌 ‘처용컴플렉스’가 유발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다.

-제목이 너무 길어 외우기가 힘들다.
“저도 처음엔 잘 안 외워지더군요.(웃음) 작가의 말을 들어보니, 일본의 애니메이션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 앞에 ‘나의 처용’을 붙여 제목을 만들었대요.”

-띄어쓰기도 없이 길게 나열된 제목의 구체적 의미는?
“쉼표도 띄어쓰기도 없이 붙여 써 놨잖아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제목이에요. 처음엔 띄어쓰기도 없이 돼 있는 제목 보고 정신병자 이야기인가? 라는 상상도 들잖아요. ‘양’이란 단어도 다양하게 해석 돼요. ‘김 양, 최 양, 박 양’같은 불특정 여자를 호칭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메에~’ 하는 양으로도 해석 돼 제의적 의미도 담아내고 있거든요. ‘마켓’도 그렇구요. E마트, 롯데마트 같은 물건 파는 마켓이란 의미도 있지만,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마켓이란 해석도 가능해요. 그렇게 되면 사람을 죽이러 마켓에 간다는 의미가 나오겠죠. ”

-오가리 역할은 엽기적이고도 다면적인 인물로, 이남희 배우에게 최고의 적역이라는 평가가 있었다는데.
“대본이 완성되기 전에 하겠다고 계약했어요. 대강의 시놉시스만 보고도 오가리란 인물이 인간말종에 인간쓰레기에 가깝더군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이었어요. 순간 망설여지기도 했는데, 이 인물이 어떻게 완성될까 궁금해졌어요. 막상 공연 연습이 시작되니 애증반 사랑반으로 바뀌더군요. ‘오가리’란 인물로 변신하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뭔가 확실한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에요. 런 쓰루 하면서 하나 하나 찾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진행중이에요. 물론 정식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서 표현할거구요.”

-완벽한 오가리를 표현하기가 힘들다는 의미인가
“‘오가리’란 인물은 가장 생짜 같은 인물이라고 봤어요. 생생한 인물 있잖아요. 정형화된 인물이 아닌거죠. 뭐라고 분석하기도 애매한, 틀 속에 갇혀있지 않은 인물이거든요. 어찌보면 무당이 접신한다는 말을 떠 올릴 수도 있겠내요. 제가 접신의 경지에 이르면 작품이 더 흥미진진해지며 잘 살아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우어 파우스트>의 메피스토 이미지도 비춰지는건가
“‘오가리’란 인물을 언뜻 보면 아예 없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메피스토보단 더 자유로운 인물이죠. 욕망이나 욕구를 즉발적으로 내비치는 데 망상, 분열된 자아들의 조합이 잘 맞으면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을 듯 해요.”

-극중 ‘검은 처용’은 어떤 의미인가
“불륜을 용서와 관용으로 미화시켰던 처용가를 새롭게 해석해보는 거죠. 과연 처용이 한 일이 불륜에 대한 대범한 용서인가 아니면 현실에 대한 체념인가?라는 질문을 현시대 관객들에게 던져 본 거에요. 악마 같은 이 세상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어요.”

-오가리 옆에서 맴도는 ‘남두자’ ‘하구니’ ‘맛탱이’ 이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 건가
“저의 분열된 자아들과 망상 속의 인물이에요. 마약중독자 남두자(유연수)는 오가리가 지닌 악마성을 대변해요. 뒷골목에 사는 여장 남자로 나온 하구니(김수현)는 오가리의 여성성에 가깝죠. 완벽하게 착한 선은 아니지만 좋은 쪽으로 가져가려는 자아 같은거에요. 그렇다고 최치언 작가가 뚜렷하게 선과 악을 구별하고 있진 않아요. 정신과 의사 맛탱이(이명행)나 뽕녀(장희정)등은 분열된 자아에 가깝구요. ”

-어떤 매력이 있는 연극인가
“재미있다 혹은 구역질이 나온다는 극과 극의 반응이 나올 듯 해요. 다양한 평가가 가능한 작품이죠. 극중에 택시 운전사인 오가리가 차로 돌진하면서 떠드는 장면이 있는데, 딱 그 기분이다. 브레이크가 갖춰지지 않는 차를 전 속력으로 몰고 가는 기분 말이다. 세상에 대해 내질러봐. 깨져보자. 뭔가 해보자. 이런 느낌이 와요. 관객들의 어딘가를 건드려 자각하게 하는 연극이죠. 기존 연극 톤과는 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 “매듭과 앙금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다”

배우 이남희의 연기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그의 묘한 보이스 컬러를 잊지 못하게 된다. 혹자는 이를 두고 여성성이 강한 흉내 내기 어려운 화법이라고 했다. 게다가 이남희 배우의 외형은 지극히 남성스러운 이미지다. 외모에서 연상되는 목소리와는 전혀 다르다는 의미다.

-목소리가 여성적이다는 지적은 받지 않았나
“초반에 많이 받았죠. 정말 말도 못하게 연습해서 이 정도까지 왔어요.”

-더 여성적인 톤이었다는 말인가
“더 소리도 작고 하이 톤이었어요.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몇 년동안 연습했죠. 그 때문인지, 그 뒤론 연습을 아무리 힘들게 해도 목소리가 안 나오진 않아요. ”

-본인의 목소리가 싫었을 법도 한데.
“전 원망하기 보단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 타입이에요. 물론 배우에겐 목소리가 정말 중요하죠. 그래서 중성적인 톤까진 훈련으로 단련시켰어요. 그런데 전 제 목소리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봐요. <남자충동> 같은 여성성을 함께 표출해야 하는 작품이 그랬어요. 또한 구순기 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 진폭 등을 더 많이 담아낼 수 있는 소리거든요. 다양하고 복잡한 이미지를 담아내는 폭이 크다는 평도 들었어요.

-(갑자기 궁금증이 들어서)이번 공연을 위해서 특별히 파마를 한건가
“제 본래 머리입니다(웃음) (본인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더니)주변에서 파마 값 안 들어서 좋겠다고 하죠. 제가 비밀이 많죠.(웃음)

-어떤 성격인가
“전 매듭을 가지고 있는 게 싫어요. 그 동안 제가 출연했던 작품 중에 마음에 안 들었던 작품도 있지만 가슴 속에 쌓아놓진 않아요. 담아낼 땐 정말 열심히 담아내지만 막상 끝나면 쉽게 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어요. 연극 무대에선 연극에 매진하고 드라마 무대에선 드라마에 정말 빠져서 일하는 성격이에요.”

배우 이남희는 연극 <나의처용>이 끝나자마자 바로 안톤 체호프, 헨리크 입센과 함께 ‘현대극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스트린드베리이를 기념하는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극단 마고의 장용휘 연출가가 올리는 <스트린드베리와 춤을>(11월 1일~9일. 국립극단 소극장판)이란 작품에서 왕년엔 잘나갔던 군인이지만 현재는 부인과 애증이 얽힌 엉망진창 결혼 생활을 하는 포경대위로 분할 예정. 스트린드베리이의 <죽음의 춤>을 프리드리히 뒤렌마트가 재해석해서 만든 블랙코메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삼국유사프로젝트 팀 중 금메달을 딸 수 있겠는가 라는 장난스런 멘트를 던지자. “제가 던진 말이 저를 더 옥죄일지 아닐지는 더 지켜봐야겠지요.(웃음) 금메달을 따기 위해 남은 연습기간 더 열심히 할게요. 배우와 관객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연극, 무대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짓거리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국립극단,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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