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인이 피어나는 자리는 어디인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아이유와 이효리 사이에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멤버 가인이 있다. 물론 가인이 그 중간의 어정쩡한 자리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가인이 피어나는 위치는 아이유나 이효리 모두 다다르기 어려운 지점인 것 같다. 노래하는 가인은 좁다란 담벼락 같은 경계 지점을 한 마리 잿빛고양이처럼 살금살금 하지만 당당하게 걷는다.

노래만으로 승부하는 디바형 여가수를 제외하면 한국의 솔로 여가수는 크게 아이유와 이효리의 세계로 나누어진다.

이효리는 한국에서 댄스음악을 하는 섹시 아이콘의 여가수가 얼마나 여유롭고 당당하게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 가느냐를 보여준 상징이다. 박지윤의 <성인식>은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그대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요’라고 말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다지 당당한 느낌은 아니다. 차라리 엄정화나 이정현의 댄스곡의 가사들이 더 강하다. 물론 한여름에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에 어울리는 배신당한 여자의 분노가 서린 댄스곡들이지만 말이다. <배반의 장미>나 <와>의 뮤직비디오에서 두 여가수의 부릅뜬 눈을 떠올려 보라. 김현정의 다 돌려놔, 라고 말하는 <멍> 역시 돌려놓지 않으면 남자의 얼굴에 멍이 들 것 같은 무시무시한 노래지만 어쨌든 배신당한 여인의 처절한 한이 서린 것은 마찬가지다.

반면에 2천년대 초반에 발표된 이효리의 솔로 데뷔곡 <텐미닛>에서 배신당한 여자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다. 그루브한 질감에 가벼운 톤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여주인공은 부담 없이 쉽게 말한다. 임자 있는 멋진 남자의 여자친구를 리드미컬하게 까 내리면서 노래의 주인공인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이다.

이효리의 반대편에는 아이유의 길에 다다르는 청순 아이콘 여가수의 흐름이 있다. 이지연, 강수지, 하수빈으로 이어지는 그 계보에는 우윳빛 빛깔의 배경화면과 하얀 레이스 장갑, 살포시 내리깐 눈으로 상징되는 그녀들의 뮤직비디오와 음악이 존재한다. 거기서 2천년대 이후 동안 열풍이 이어지면서 여리면서 귀염성 있는 외모와 목소리의 장나라가 등장한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그 청순 아이콘의 자리는 아이유에 도달해 있다. 물론 아이유는 마냥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는 아니다. ‘나는요/오빠가 좋은 걸’이라는 가사에서는 이미 그 말이 오빠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아는 똑똑한 소녀의 인상 같은 것이 담겨 있다.

아이유와 이효리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넘어서기 힘든 경계선이 존재한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섹시 여가수와 청순 여가수를 분류해서 보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가인은 팅커벨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 두 지점을 마음대로 섞어놓는 능력을 발휘한다.



가인의 외모는 사실 청순형도 섹시형도 아니다. 화장을 완벽하게 지운다면 오히려 평범한 외모에 가깝다. 눈매는 작고 가늘고 얼굴은 평면적이고 키는 살짝 작아 보인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백지와 같아서 아이라인의 마법하나로 그녀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신이 가능하다. 그 지점에서 가인의 천사 같기도 하고 악마 같기도 한 독특한 매력이 발산된다. 특히 센 언니들과 함께 있을 때는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마스코트 같던 그녀가 솔로로 등장했을 때는 언니들의 기까지 다 빨아들인 채 무대에 서는 것만 같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듯 다채로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 덕인 것 같다.

물론 외형적인 이미지만으로 가인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녀는 안정적인 보컬을 기반으로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자신의 음색에 덧입힐 줄 안다. 가인은 이미 첫 번째 솔로 미니앨범에 실린 탱고 선율의 <돌이킬 수 없는>에서 다소 무거운 목소리로 브라운아이드걸스 시절의 그녀의 보컬과 상반된 매력을 보여준 바 있다.

두 번째 미니앨범 'Talk about S.'에서 가인은 자신의 음색을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타이틀곡 <피어나>의 힘 있으면서도 밝은 목소리는 물론 90년대말 트립합 음악의 음산한 여성보컬이 떠오르는 <시선>, 음색의 팽팽한 긴장감을 여유롭게 실뜨기하듯 가지고노는 듯한 <팅커벨>과 브라운아이드걸스 시절의 목소리에 뮤지컬스러운 느낌이 만난 <그녀를 만나>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기 다른 보컬의 매력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타이틀곡 <피어나>의 뮤직비디오가 있다. 19금 논란으로 말이 많았던 이 뮤직비디오는 하지만 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올라가는 약간은 황당하게 글로벌한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이 뮤직비디오가 그렇게 논란이 일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이미 마돈나는 80년대 말에 'Express yourself'의 뮤직비디오로 에로틱함의 정점을 보여준 지 오래다. 지금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레이디가가나 리한나의 뮤직비디오와 비교해도 <피어나>의 뮤직비디오 정도는 애교다.

19금 논란이 일긴 했지만 뮤직비디오 <피어나>의 매력적인 부분은 사실 에로틱한 지점이 아니다. 핑크의 최근 곡 'Try'의 뮤직비디오 정도는 되어야 에로틱함을 예술적으로 멋지게 그려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이 뮤직비디오의 매력은 카메라가 화면 속 가인을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잡아주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피어나>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가인은 야하기보다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 감독이 만들어낸 특유의 화사한 색감 역시 그런 분위기에 한 몫 한다. 사랑의 감정을 깨달은 여자의 솔직한 모습을 담고 싶다는 주제에 충실한 플롯과 미장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어떤 부분은 과하게 도드라지고 반대로 어떤 부분은 너무 판에 박힌 듯하다. 지붕 뒤로 보이는 거대한 꽃이 피어나는 장면이나 그 외에 몇 가지 장면들이 그러하다. 흰 양복의 귀여운 척하는 남자 백댄서들도 약간은 정신 사나워 보인다. 하지만 빤한 구성과 흐름을 지닌 걸그룹들의 그저 그런 뮤직비디오보다 <피어나>가 훨씬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건 틀림없다. 그건 단순히 뮤직비디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말 그대로 노래하는 가인이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주는 팀과 함께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충분히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로엔엔터테인먼트, X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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