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돋보기] 중견 연기자 임예진 씨가 얼마 전 SBS <강심장>‘나는 전설이다 특집’ 오프닝에 등장하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과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다지 굴곡진 삶을 살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되고, 한때 하이틴 스타로 각광받았다는 사실은 확실히 전설로 남을만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MBC <세바퀴>를 비롯한 토크쇼들에서 밝혀진 터, 새로운 무슨 얘기가 있을지 짐작이 안 됐다. 입담 좋은 스타들 사이에서 묻혀버리는 거 아닐지 한 편으론 살짝 걱정도 됐고. 그런데 이게 웬 일, 그날 담담히 꺼내놓은 임예진 씨의 토크는 그 어떤 흥미진진한 폭로보다, 또 그 어떤 이의 눈물어린 고백보다 마음에 와 닿았다.

임예진 씨의 토크 주제는 한 마디로 ‘남편 자랑’이었다. 열혈 팬이어서, 임예진 씨를 볼 목적 하나로 방송국 PD 시험을 봤다는 일화부터가 드라마틱한 그녀의 남편은 평생 한결같은 아내 편이란다. 그러면서 예를 몇 가지 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표지판에 관한 에피소드다. 임예진 씨가 운전을 하고 길을 가다가 자칫 이정표를 놓쳐 한참을 돌아가게 될 경우, 우리네 남편들처럼 “왜 그거 하나 똑바로 못 봐! 당신 때문에 늦었잖아.”하고 역정을 내는 게 아니라 “이정표를 저 따위로 만들어 놨는데 어떻게 제대로 봐! 보면 이상하지!” 하며 오히려 표지판을 나무란다는 것. 그렇다고 임예진 씨가 바보도 아니거늘 진정 이정표 탓이라 여길 리는 없다.



그뿐 아니라 밖에서 겪은 서운한 일을 하소연할라치면, 심지어 임예진 씨 본인이 잘못한 일이어도 매번 남편이 전적으로 편을 들어주는지라 자연스레 화도 풀리고 섭섭함도 사라지더라는 것.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편이 되어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큼 든든한 게 또 어디 있을까. 무슨 일만 생기면 어디선가 달려오는 슈퍼맨처럼, 혹시 위기에 빠져 모든 사람이 외면할지라도 변함없이 곁을 지켜줄 이가 있는 임예진 씨가 눈물 나게 부러웠다. ‘로열 패밀리’가 무에 부러우며 고관대작이 무에 부럽겠느냐 말이다.

그런데 뒤를 잇는 생각은 나는 과연 한결 같은 누군가의 편이 된 적이 있었나, 하는 반성이었다.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한 대목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처럼 나 스스로가 누군가의 슈퍼맨이 되어줄 작정을 해본 적이 있긴 하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해결하기 어려운 난관에 부딪혔을 때, 위로 받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떠올릴 사람이 이 세상 천지에 몇이나 될까? 심야 토크쇼를 시청한 후 이런저런 궁리로 잠을 이루지 못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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