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질문이 아닌 경청이 미덕인 토크쇼

"<승승장구>는 전반적으로 평가절하 되어 있다"_정석희
"대부분의 진화는 강한 쪽으로 가기 마련인데 이것은 유한 쪽으로 가고 있다"_정덕현

[엔터미디어=TV남녀공감백서] KBS <승승장구>는 희한한 진화를 해온 토크쇼다. 대부분의 진화가 강한 쪽으로 흘러간다면, 이 토크쇼는 유한 쪽으로 흘러왔다. MC들이 예능감을 뽐내기보다는 오히려 자제함으로써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해주는 게 <승승장구>의 진화된 모습이다. 이런 <승승장구>만의 독특한 토크쇼 방식에 대해 대담을 가졌다. 그리고 남은 궁금증은 직접 <승승장구> 촬영장을 찾아가 물어보기로 했다(다음 주에 연재).

정석희 : <승승장구>가 평가절하 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했던 연예인들이 <승승장구>에 출연해 뜻밖의 매력을 보여줬던 경우가 꽤 많은데 그 대표적인 예가 김제동이다. MBC <놀러와>에 출연했을 때는 별 활약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얼마 뒤 <승승장구>에서는 마치 제 물을 만난 양 놀았다. 이를 두고 많은 시청자들이 MC들이 워낙 무능해서 김제동이 쥐락펴락 한 거다, 라고 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승승장구>가 남의 말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이라 그런 결과가 나온 거다. 게스트가 마음껏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 있게 집중해서 들어주는 MC들이라는 얘기다. 특히나 메인 MC 김승우는 게스트에게 몰입해준다. 대체로 MC라는 직업적 특성이 언제 얘기를 끊을까, 언제 누구에게 토스할까 궁리하는 게 눈에 보이기 마련인데 김승우는 좀 다르다. 그런 장점을 MC로서의 능력 부족으로 규정짓는다면 그건 좀 억울한 오해라는 생각이다.

정덕현 : 토크쇼가 다 독해져서 전부들 방송분량에 몰두하다 보니까 대화가 오고가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막 던지는 느낌이 강하다. <승승장구>는 PD 입장에서는 편할 것 같다. 막 던지면 PD는 정리해줘야 하는데 <승승장구>는 MC들이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낮추고 필요한 얘기만 해주고 게스트로부터 얘기만 꺼내주니까 새로 정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게 초기의 <승승장구> 모습은 아니다. 초기 '김승우의 승승장구'는 김승우 타이틀이 붙었기 때문에 김승우가 뭔가를 하려고 애썼던 면이 있다.

정석희 : 초창기에는 김승우에게 뭘 하라고 자꾸 시키고, 기대했던 것 같다. 초기 MC 장우영과 아옹다옹하는 관계를 만들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은 김승우가 자신의 페이스대로 하게 맡기고 있는데 그게 더 잘된 것 같다. 여타 프로그램 MC들이 파내고 끄집어내고 폭로한다면 김승우는 게스트가 하고 싶은 만큼만 털어 놓게 해준다. 그런 배려가 있는 토크쇼가 요즘 세상에 하나쯤은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정덕현 : 그런데 그걸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박중훈쇼>가 나왔을 때 게스트에 대한 배려가 과연 시청자에 대한 배려인가. 이걸 등치시킬 수는 없다. 시청자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끄집어내는 게 MC의 역할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었다.

정석희 : 하지만 <승승장구>는 <박중훈쇼>와는 분명 차별화되어 있다. 일단 <박중훈쇼>는MC와 가까운 사람들이 끼리끼리 나온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서로의 관계 때문에 독한 질문을 아예 못하는 구나, 시청자들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승승장구>도 초반에는 첫 번째 손님 김남주를 비롯하여 MC 측근들이 자주 출연했는데 그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데 다행히 회가 거듭되면서 차차 달라진 모습을 보이게 됐다.

정덕현 : <승승장구>는 그 와중에도 물어볼 건 다물어본다. 임하룡이 나왔을 때도 결국 아버지 얘기를 끄집어내 눈물을 흘리게 했다. 부담스럽지 않게 그걸 한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승승장구>도 초기에는 MC 한 명 한 명 캐릭터를 세우기 위해서 코너도 강하게 들어갔다. 우리 빨리 물어. 우리 지금 만나. 이런 코너에 MC들의 역할이 도드라졌는데 지금은 캐릭터가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으로 앉아 있다.

정석희 : MC들이 나름대로 각자의 캐릭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최근 투입된 이수근이야 두말 할 것도 없지만 막내 이기광조차 <일요일 일요일 밤에>‘뜨거운 형제들’에서는 당돌함으로 주목을 받았었으니까.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캐릭터를 오히려 누르려 드는 게 눈에 보인다. 아마 그런 점을 마뜩치 않아 하는 분들도 있을 거다. 정재용도 그렇다. Mnet <정재용의 더 순결한 19>에서의 삐딱한 느낌, 또 DJ DOC로서의 악동이미지를 기대한 분이라면 <승승장구>에서 보여주는 여유로운 이미지가 용납될 리 없다. 하지만 사실 그게 대중이 모르는 정재용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언젠가 정재용의 어머니께서 출연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비로소 정재용이 따뜻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정덕현 : 형식은 '해피투게더'와 비슷하다. '해피투게더'도 MC들이 별로 말을 안 한다. 게스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역할만 한다. '해피투게더'는 인물이 많기 때문에 이야기 배분을 해주는 역할이 필요한 데 그런 것들을 유재석이 적절히 끊어가면서 간다. 그런데 여기는 누군가 그걸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거다. 그래서 김승우라는 제목을 굳이 붙일 필요가 없고 그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다. 김승우 입장에서도 프로그램 입장에서도. 그래서 네 명의 캐릭터가 나와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해주는 새로운 토크쇼로 보이기도 한다.

정석희 : 처음에 '시청자를 위한 신개념 토크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는데 그 배려하고 들어주는 토크쇼라는 점이 요즘으로 보면 ‘신개념’인 거다. <승승장구>의 그처럼 조금씩 진화하는 점이 마음에 든다.

정덕현 : 이런 방식의 진화가 생각 외로 어려운 점이 있다. 대부분의 진화는 강한 쪽으로 가기 마련인데 이것은 유한쪽으로 거꾸로 가고 있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게스트 때문인지 <승승장구>는 시청률이 너무 들쭉날쭉 이다.



정석희 : 초대 손님이 한 명인지라 그 한 사람에 의해 시청률이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다. 솔직히 나부터도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는 게스트면 채널을 돌리고 만다. 그래도 칭찬해주고 싶은 건 이 프로그램이 그동안 다른 토크쇼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핫하지 않은 게스트에게 관심이 있다는 거다. 최근의 예만 봐도 가수 남진도 반응이 뜨거웠고 연기자 안문숙을 단독 게스트로 초대해서도 뜻밖의 재미를 끌어냈다. 요즘 소위 가장 잘 나가는 스타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재미를 줄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거다.

정덕현 : 경쟁프로로 '강심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진화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강심장'과 정반대로. 화려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조용히 얘기하는 방향, MC가 나서는 게 아니라 조용히 듣는 입장, 게스트도 핫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안 봤던 인물들, 그런 것들이 확실한 차별화를 준다. 임하룡이 나온 회가 지금 승승장구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임하룡은 물론이고 조금산, 이경애, 이경래 등 다른 인물들도 나왔는데 그들도 그렇게 주목받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끼리 너무 합이 잘 맞으니까 MC가 할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듣는 귀로만 앉아있어도 되는 토크쇼. 그래도 충분히 재밌는 토크쇼가 <승승장구>다.

정석희 : 맞다. 엄용수나 조금산 같은 분들에게서 역시 일세를 풍미했던 면모가 보이더라.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분들을 다시 발견하게 해주어서 좋았다.

정덕현 : 마치 '세시봉'처럼 그때 풍경과 그 시대를 겪었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동류의식을 보여주고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는 팀워크를 보여줄 때 찡한 게 오더라. 또 코미디언이라는 이 말이 강하게 오는 게 있다. 그런데 지금 이수근은 아마 근질근질할 거다. 초기에 들어와서 이수근이 방향을 잘못 잡은 적이 있다. <승승장구>의 구세주처럼 나서는 느낌. 그러니까 이거 <승승장구> 아닌데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차분히 앉아있다.

정석희 : 물론 <해피선데이>‘1박 2일’에서의 이수근과 <승승장구>에서의 이수근은 스타일이 다르지만 이곳에서의 들어주는 진행도 이수근 안의 한 부분일 거다.

정덕현 : 이 형식을 좋아하는 시청층은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지만 좀 더 많은 분들이 보려면, 또 그 관건이 게스트 섭외에 있다면 그 방식을 좀 더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과연 PD는 게스트 섭외에 어떤 기준을 갖고 있을 지 궁금하다.

정석희 : 개편 후 시청자와 함께 하는 코너가 대폭 줄어든 점이 아쉽다. '당신은 왜'라는 코너의 시청자 댓글참여 정도에 그치고 있는데 그래도 '우리 빨리 물어'의 폐지는 환영하는 바다. 시청자의 주옥같은 질문들을 그런 식으로 빨리 소비해버리는 게 안타까웠다. 예전 <상상플러스>가 갖고 있었던 일반인들의 참여 노하우가 좀 더 많이 들어갔으면 한다. 또 MC들이 각자 다른 분야에서 들어온지라 참신하긴 하지만, 서로의 관계에 얽힌 이야기가 부족해 밋밋하게 느껴진다. 인위적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들의 관계가 스토리로 엮이면 좋을 것 같다. 이를 테면 <무한도전>이나 ‘1박 2일’처럼 말이다.

정덕현 : 들어주는 건 좋은데 투명인간이 되면 곤란하다. 정말 궁금한 건 이렇게 재치가 있고 예능감이 뛰어난 친구들이 어떻게 그렇게 자제를 하고 있는가다. 본인들은 얼마나 얘기가 하고 싶을까. 그래도 <승승장구>가 보여주는 편안한 느낌. 뭔가 소통이 되고 있다는 그 자체가 호감이다. 너무 핫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 것도 전략적으로는 잘하는 것이다. 그런 인물이 나오면 대중들의 질문 욕구도 많아진다. 하지만 잘 모르는 인물은 그게 필요 없다.

정석희 : 제작진이 MC들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지가 궁금하다. 잘 알아야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제작진은 MC들에게 애정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정덕현 : 나는 게스트 섭외의 기준이 궁금하다. 또 섭외의 노하우가 있다면 뭐가 있을지도.
(다음 주에 승승장구 촬영장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대담 : 칼럼니스트 정덕현, 정석희, 정리 : 정덕현


[사진 = 전성환 기자 shjeon0877@entermedia.co.kr,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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