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위에서 듣는 노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우리는 가끔 명동이나 강남역 주변처럼 번화가를 혼자 걸을 때가 있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면 혼자 걷는 이들은 몸을 움츠리고서 서둘러 겉옷을 여민다. 이 시간 이 번화가에서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연인이거나 낄낄대며 서로를 구박해도 괜찮은 친한 친구인 것만 같다. 호주머니 안에 스마트폰을 만져보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여전히 반가운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고민이 된다. 감기에 걸리기 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봤자 반겨주는 것은 외로운 사람처럼 웅크리고 있는 이불 한 채가 전부다.

그럴 때에 잠시나마 친구가 되어주는 것은 길 위에서 듣는 노래다. 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구절에 발걸음이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물론 그 음악은 빠른 비트의 댄스 음악이거나 혹은 너무 처절하게 울부짖는 목소리의 곡들이 아니다. 번화가에서 들리는 댄스음악은 호객행위의 사운드트랙처럼 들리고 너무 처절한 곡은 집에서 혼자 들어야 제 맛이다.

대개 걸음을 멈추게 하는 길 위의 음악들은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곡들이다. 그것도 20대, 우리가 너무 많은 걸 알지 못해서 혹은 너무 많이 안다고 착각해서 오히려 아름다웠던 때의 추억의 음악들 말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외로운 이들의 마음을 담담하게 노크하는 길 위의 노래가 우리를 붙잡는다.

빅뱅의 지드래곤과 자우림의 김윤아가 함께한 는 올해 늦가을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들려오는 가요 중 하나다. 이 노래는 지드래곤의 솔로 앨범 중에서도 상당히 이질적인 트랙이다. 다른 곡들이 어지러우면서도 매끈한 비트를 좋아하거나 지드래곤 특유의 랩핑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잘 맞는다면 만큼은 그 앨범의 다른 노래들이 취향에 맞지 않는 이들에게 선물 같은 노래다. 휘파람과 맞물리는 기분 좋은 복고적인 비트와 멜랑콜리한 추억에 빠지게 하는 분위기가 이 노래의 장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김윤아가 부르는 파트, 그리고 후반부에 지드래곤이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부르는 이 곡의 훅이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 늦가을과 초겨울 외로움을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자그마한 그 무엇을 떠올리게 한다. 그 무엇이란 사람에 따라 다들 것이다. 따스한 커피, 쓰면서 단 소주, 누군가의 체취에 대한 기억, 추운 아침이지만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냉기, 어쨌든 사람들 각각의 쓸쓸함을 위로해주는 한 잔의 그 무엇.
<내 맘은 이리 울적한데 말할 사람이 없다/나도 가끔 활짝 웃고 싶은데 곁엔 아무도 없다/maybe i'm missing you>

명동 한복판 대형매장의 쇼윈도 앞에 서서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를 듣는데 문득 70년대의 명동이 떠올랐다. 장발의 남자들과 짧은 미니스커트의 여성들, 가위와 자를 들고서 젊은이들을 쫓아다니는 경찰들이 그 거리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거리를 감싸는 70년대의 사운드트랙은 쿵쿵 쪼개지는 비트가 아니라 부드러운 통기타 선율이었을 것이다.



7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통기타의 부드러운 소리는 어떤 의미였을까?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시절의 감수성을 이해하기란 사실 쉬운 건 아니다. 다만 통기타의 소리는 늘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 받은 먼지를 떠오르게끔 한다. 먼지에 불과하지만 햇빛에 반짝거리는 먼지들은 한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 보인다. 어쩌면 명동에서 들리던 포크송은 7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속삭였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서울에 드리워진 먹구름 때문에 어둠 속의 먼지 같아. 하지만 언젠가 창문 너머 햇빛이 비치면 우린 모두 아름다워질 수 있을 거야.

김의철의 <저 하늘의 구름 따라>라는 포크송이 있다. 70년대 중반 김의철이 만들고 부른 이 노래는 원래 <불행아>란 제목의 노래였다. 후에 김광석이 리메이크하기도 한 <불행아>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희망을 노래하는 노래가 아니다. 그렇다고 바닥으로 떨어진 절망만을 오롯이 노래하는 것도 아니다. 잔잔한 통기타 선율과 오보에 연주가 어우러진 이 노래에 실린 김의철의 목소리는 우리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주고 담담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저 하늘에 구름 따라/흐르는 강물 따라/정처 없이 걷고만 싶구나/바람을 벗 삼아 가며/눈앞에 떠오는 옛 추억/아, 그리워라/소나기 퍼붓는 거리를 나 홀로 외로이 걸으면/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친구/그러나 갈 수 없는 이 몸/홀로 가야할 길 찾아 헤매이다 헤어갈 나의 인생아>

안타깝게도 이 곡은 심의를 통과하지 못할까 우려한 음반사 사장의 의도에 따라 제목을 바꿔야만 했다. 그리고 ‘묻혀갈 나의 인생아’를 ‘헤어갈 나의 인생아’로 고쳐 불러야 했다. 김의철은 그 때문에 발매된 이 앨범을 다시 수거했고 70년대 이 앨범은 묻혀버린 레코드가 되었다.

하지만 <불행아>란 노래는 묻히지 않았다. 그 생명력은 길고 길어서 70년대를 지나 80년대 내내 대학생의 입에서 입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 노래의 어떤 매력이 오래도록 젊은이들을 사로잡았을까? 어쩌면 이 노래와 가장 가까운 정서는 절망이 아니라 푸념이 아닐까 한다. 푸념이란 단순히 투덜거림이 아니라 주저앉은 이들이 다시 일어나기 위한 마음의 준비운동이다. <불행아>를 불렀던 많은 이들은 불행을 노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행에 대한 두려움을 독주처럼 삼키기 위해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불행아>가 태어난 지 벌써 40여년의 시간이 지났다. 과거에 비해 삶은 풍요로워졌다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음을 고백한다. TV가 친구인 우리는 의 정서처럼 외롭고 쓸쓸하며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게다가 너무 빨리 우리를 등 떠미는 시대는 한 사람이 외로움에 잠기는 시간마저 빼앗지 못해 안달이다. 그러니 길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건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모두가 웅크리는 쌀쌀해지는 계절에 아직 타인이 들어설 수 있는 마음의 호주머니가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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