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MBC 뉴스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9시 ‘MBC 뉴스데스크’가 오늘부터 방송시간을 8시로 옮긴다고 한다. 뜬금없이 8시라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1980년대에 나는 9시 'MBC 뉴스데스크'에 길들여져 있던 꼬마였다. 9시 뉴스가 시작하기 전이면 늘 착한 아이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라는 귀여운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다. 하지만 9시에 잠드는 아이란 착한 아이가 아니라 그저 졸린 아이일 따름이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대한민국 어린아이들은 잠들지 않았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현재 시각을 알리는 시계초침소리를 듣고 'MBC 뉴스데스크'를 시청했다. 물론 아버지가 어떤 채널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KBS 9시뉴스'를 보는 집도 있었겠다. 다만 우리집은 무조건 'MBC 뉴스데스크'였다.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9시 종합뉴스의 세계는 관심의 영역이 아니었다. 위대하신 대통령 각하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뉴스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전혀 귀에 안 들어왔다. 그보다는 개구리 왕눈이가 언제쯤 악당 투투를 물리치고 행복하게 살지 그게 더 궁금할 나이였다. 그런데 나만이 아니라 옆에서 뉴스를 시청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는지 큰 관심은 없는 눈치였다.

다만 부모님은 북한 관련 뉴스가 나오면 다소 긴장하시는 눈치셨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우리 집은 경기도 파주, 바로 휴전선 바로 밑의 동네였다. 심지어 흑백텔레비전이 있었을 때는 아날로그 채널을 드르륵 돌리다가 9번 11번 사이에서 북한 방송이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 'KBS 9시뉴스'와 'MBC 뉴스데스크' 사이에 북한 뉴스가 있는 셈이었다. 북한의 아나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뉴스를 진행할 때의 말투가 비슷했던 것 같다. 위대하신 운운, 하면서. 그건 정말 코믹하게 들렸다.

북한 관련 소식만큼 자주 등장한 뉴스는 대학생 데모 관련 뉴스였다. 물론 대학생들이 외치는 구호에 집중하는 뉴스는 거의 없었다. 그저 화염병을 든 대학생과 곤봉을 든 전경과의 충돌만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당시의 9시 뉴스는 그렇게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뉘어져 있었던 것 같다. 위대한 대통령, 무서운 북한, 사나운 대학생. 그리고 경제 뉴스 약간과 주식 소식, 김동완 아저씨와 함께하는 일기예보 추가.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9시 종합뉴스란 맛없는 종합선물 과자와 비슷했다. 오히려 짜릿하고 즐거운 늦은 밤의 외화시리즈나 드라마들을 볼 생각에 9시 종합뉴스를 견뎠을 뿐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간 뒤로 나는 'MBC 뉴스데스크'에서 좋아하는 코너를 발견했다. 바로 <카메라 출동>이었다. 그건 정의의 기동순찰대를 꿈꾸는 어린아이를 한순간 흥분시키는 코너였다. 비록 기동순찰대는 아니지만 기자는 카메라기자와 함께 무언가 부조리한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으로 발빠르게 움직인다. 무언가 잘못을 숨기고 있던 이들은 카메라를 막으며 기자를 위협한다. “찍지 마, 찍지 말라니까.” 하지만 기자는 끝까지 마이크를 들이밀고 카메라기자는 더 깊숙한 현장으로 파고든다. 결국 이익을 위해 잘못을 저지른 인물들은 고개를 숙이고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게 기자와 카메라의 힘이며 진짜 뉴스라고 생각했다.

그 후,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면서도 'MBC 뉴스데스크'는 언제나 곁에 있었다. 처음에는 <카메라출동>만을 좋아했지만 이후 여드름이 나고 콧수염이 나고 면도를 하면서부터는 정말 'MBC뉴스데스크'를 좋아했다.

그런 까닭인지 'MBC 뉴스데스크'의 앵커에 대한 추억도 아련하다. 80년대의 앵커였던 고 이득렬 아나운서의 느릿한 저음을 아직 기억한다. 너무 무표정해서 시큰둥과 시크함 사이를 오갔던 백지연 아나운서의 표정도 떠오른다. 손석희 아나운서가 보여준 젠틀한 진행도 기억한다. 바바리코트 차림의 파리 특파원 엄기영의 앵커 진출은 한편의 멋진 영화처럼 보였다. 물론 그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행보를 영화로 만들면 씁쓸한 블랙코미디가 되겠지만 말이다. 주말 'MBC 뉴스데스크'의 최일구 앵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딱딱한 뉴스에 입담 소스를 뿌려 새로운 맛으로 요리해 준 처음이자 마지막 앵커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MBC 뉴스데스크'는 언제나 옆에 있었다. 그때는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여서 사회의 부조리함이 무엇인지 피부에 와 닿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MBC 뉴스데스크'의 코너였던 <카메라출동>의 후예처럼 여겨지는 'PD수첩' 역시 빠짐없이 챙겨보았다. 더러운 걸 더럽다고 말하는 뉴스 고발이 흔치 않았던 시기였다. 'PD수첩'의 수첩이야말로 우리나라에 진짜로 필요한 수첩인 셈이었다.

그런데 MBC의 그 독창적인 뉴스고발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자꾸만 가물거린다. 'MBC 뉴스데스크'는 아직도 존재하건만 어찌하여 이리 추억의 이름이 된 것만 같을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MBC 뉴스데스크'를 시청 안 한 지가 이미 오래다. 밤 9시만 되면 눈이 감기는 피곤에 절은 30대가 되어서가 아니다. 그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MBC 뉴스데스크'가 재미없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방송을 요즘 누가 보나. 드라마는 극적이어야 재밌고, 개그콘서트는 웃겨야 재밌고, 뉴스는 그럼 어떻게 해야 재미있을까? 그 빤한 답을 MBC는 모르는 걸까,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지금 <카메라출동>이 부활한다면 가장 먼저 기자들이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야 할 인물들은 뉴스를 재미없게 만든 사람들일 것 같다. 물론 <카메라출동>이 부활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이제는 어른으로 자란 9시에 잠들지 않는 수많은 아이들은 출동시킬 카메라 하나쯤은 다들 품고 있으니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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