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호는 어떻게 버라이어티에 스며들었나?
- 김준호, 이경규에 기죽지 말고 진짜 ‘까불이’ 돼라

[서병기의 대중문화 프리즘] 개그맨이 버라이어티 예능에 오면 넘어야 할 벽이 있다. 이수근은 말 할 타이밍을 못 맞춰 1년 넘게 고생했다. 서부영화에서 권총 빨리 뽑는 장면만 1년 연습한 꼴이다. 정형돈은 ‘안 웃겨서' 고생하다 이제는 그 리얼한 캐릭터가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김준호도 여기에 딱 걸렸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연기를 하면 안 된다. 맥락 없이 ‘꺾기도' 같은 걸 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나마 토크쇼인 <해피투게더>에서는 가끔 봐줄 수 있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인 <남자의 자격>에서는 ‘맥'을 끊을 수 있는 행위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완전히 그 캐릭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김준호는 10년 넘게 해온 게 코미디인지라 꽁트를 안 할 수 없었다. 김준호가 상황극을 할 때마다 이경규는 “꽁트 하지 말라 말이야”라고 호통을 쳤다.
 
이경규의 이 말은 결과적으로 김준호가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게 해준 결과가 됐다. 지금 이 친구가 연기를 하고 있으니 <남격>의 기존 분위기와 분리해서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경규의 호통에 대한 김준호의 반응은 ‘연기'가 아닌 ‘리얼'이다. 여기서 캐릭터가 나온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자신의 모습을 캐릭터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만약 김준호가 이경규의 말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네, 알겠어요”라고 했다면 <개콘>(상황극)이 돼버린다.

‘1박2일'에서 이수근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 이수근이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1년 넘게 적응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일꾼'을 하고 있을 때 강호동이 이수근에게 “코미디언 아이가”하고 상황극을 던져준 것과 유사하다는 얘기다. 버라이어티 적응 유예 기간 중에 억지로라도 웃길 수 있는 판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걸 하면서, 여기서 나오는 이수근의 반응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캐릭터 구축에 사용될 수 있는 재료다.

이경규가 김준호를 도와주기 위해 꽁트를 못하게 했는지, 꽁트를 싫어해 짜증을 냈을 뿐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김준호는 잘 버텨냈다. 콩트도 하면서 그 반응과 갖가지 체험을 통한 느낌으로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에 한걸음씩 다가갔다. <남격> 정희섭 PD에 따르면 이경규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의 진정성을 워낙 중시한다고 한다. 그러니 꽁트는 꾸며진 모습이어서 처음에는 하지 말라고 했다가 김준호가 뼛속까지 개그맨이어서 그것을 인정해준 것이라는 것이다.

가수, MC, 배우, 개그맨 등 리얼 버라이어티 멤버들은 저마다 출신 성분이 다르다. 서로 원천기술이 달라 리얼 버라이어티를 오래 한 멤버는 이를 이질적으로 받아들인다. 이경규가 아나운서인 전현무를 “진정성이 없어. 모두 설정이다”라고 하고, 김준호에 대해서도 꽁트를 못하게 한 이유다.



하지만 버라이어티의 궤도에 완전히 오르기 전에는 자신의 원천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김준호는 시작은 연기지만, 그에 대한 반응을 받아칠 토크 능력은 있다. ‘해피투게더'를 연출했던 정희섭 PD는 “2달동안 김준호가 무려 4차례나 게스트로 나왔다. 언제나 토크 준비도 많이 하고 몸개그와 애드립도 가미하면서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다”면서 “PD 입장에서 <남자의 자격> 멤버로 욕심이 안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김준호가 리얼 버라이어티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은 이윤석이 <이야기쇼 두드림>에서 했던 말에 잘 드러나 있다. 이윤석은 “<남격>은 원래 이경규라는 호랑이가 먹이를 물어오면 다음에는 후배 하이에나들이 물어뜯는 구조였다”며 “그런데 김준호는 혼자서 고기를 마련해오는 고양이다. 꽁트를 하면서 초딩개그로 <남격>의 품격을 망쳤으나 지금은 자기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출연했던 김준호도 이 상황에서 토크 버라이어티 능력을 발휘했다. 김준호는 “<남격>은 ‘이경규 신과 노예들’로 구성돼 있다. 이윤석이 <남격>의 실질적인 핵심인데, 유일하게 이경규와 접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맞받아쳤다.
 


김준호는 “이경규 선배님이 자꾸 진정성을 얘기하시는데, 버라이어티와 진정성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철인3종경기에 참가해(김준호는 완주했다) 땀을 흘려보고 암 환자들이 계시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눈물을 흘려보니까 그냥 버라이어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경규, 김국진 등 연로하신 선배님이 수영 연습을 하는 걸 보면서 느낀 점도 있었다. 이런 게 리얼이었다. 버라이어티에는 감동도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버라이어티 새내기다 보니 <해투>와 <남격>에서 유재석과 이경규 선배에게 수업 받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유재석 선배로부터는 말투와 순간재치, 박명수 선배와의 호흡, 6시간 내내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끄는 방법 등을 눈여겨 본다”고 말했다. 그는 <라디오스타>와 <고쇼>의 게스트로, <해투>의 고정멤버를 경험한 게 리얼 버라이어티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KBS에서 <남격> <해투> <퀴즈쇼 사총사>의 고정MC로 활약하는 김준호는 지난 8월 ‘한일코미디페스티벌'을 기대 이상으로 이끌고 내년 열릴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도 착실히 다져나가는 등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다.

어쨌든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남격>에서 형성된 김준호의 캐릭터는 ‘까불이'다. 이경규한테 기죽지 말고 지금처럼 계속해서 ‘자신있는 까불이'가 됐으면 한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corp.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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