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재투성이 신데렐라는 언제나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 받는 존재였다. 마법사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 신데렐라가 얼마나 아름답고 눈에 띄는 아이인지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쥬얼리에서 서인영은 재투성이 존재였다. 아무리 두 눈을 부릅뜨고 특유의 음색이 쥬얼리의 <니가 참 좋아>에서 도드라져도 골반을 흔들며 털기춤을 추어도 사람들은 자그마한 키의 서인영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시 쥬얼리에선 연기만 빼면 무엇이든 잘 하는 박정아와 백치미의 이지현이 인기였다. 그나마 털기춤으로 약간의 관심을 끌기 전까지 그녀에 대한 기사는 기껏해야 성격이 털털해서 서인봉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슬프게도 그녀는 쥬얼리에서 빛나지 않는 보석이었다.

하지만 서인영게도 기회는 주어진다. 엘리라는 예명으로 컴백했던 그녀의 첫 솔로무대를 기억한다. 데뷔시절부터 그녀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2집 더티로 파격적인 변신을 했던 때의 모습이 떠오르는 무대였다. 골반이 드러나는 야한 의상, 짙은 메이크업과 컬러렌즈, <너를 원해>라는 힙합 리듬의 강렬한 노래까지. 사람들은 엘리 혹은 서인영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물론 악플과 야유로 도배된 관심이었지 인기라고 말하기는 애매했다. 하지만 최소한 박정아의 솔로 앨범보다 더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건 틀림없었다.

쥬얼리의 재투성이 신데렐라는 <너를 원해>로 활동하면서 21세기의 신데렐라로 주목 받으려면 청소 잘하는 착한 소녀가 될 필요가 없다는 걸 배운다. 물론 그건 그녀만이 아니라 방송계의 예능프로그램을 만드는 기획자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들은 서로를 원했다. 속물스러운 된장녀라는 시대의 은어와 거기에 잘 맞는 당돌하고 명품을 좋아하는 젊은 아가씨의 캐릭터. 그녀를 태워주기 위해 나타난 마법사의 호박마차는 바로 <우리 결혼했어요>와 <카이스트> 같은 리얼 예능프로그램이었다.

서인영은 가수의 매력보다 리얼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매력을 더 뽐냈다. 그 안에서 서인영은 마음껏 자신에게 주어진 이미지를 소비한다. 예능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끌 무렵 킬힐을 신은 서인영은 쥬얼리의 누구도 따라올 수 있는 위치에 올라 있었다. 그 무렵에 발표된 엘리의 <신데렐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의 신상녀 서인영이라는 캐릭터와 가수 엘리라는 캐릭터가 최고의 시너지효과를 발휘한 프로젝트였다.

상반기 쥬얼리의 ‘one more time’의 빅히트 못지않게 <신데렐라>는 큰 히트를 친다. 그 무렵 신데렐라 엘리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가 아니라 결국엔 나의 선택, 요즘엔 내가 대세인 주인공이었다. 게다가 당시 컴백해서 인기를 끌던 이효리가 라이브에서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신데렐라 엘리는 댄스음악의 라이브에 강해 춤을 추면서도 음정은 꽤 안정적이었다. 사람들은 엘리의 또다른 매력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알고 보니, 노래도 꽤 잘 하는 가수였잖아?



하지만 신데렐라 엘리에게 마법의 시간은 길지 않은 법이다. 왕자님 따위는 조연에 불과했던 화려한 무도회는 12시가 지나도 밤새 이어질 것 같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과도하게 이미지를 소비한 서인영은 그 후 계속 주춤하는 느낌이었다. 우선 ‘One more time’이 빅히트를 친 것과 달리 쥬얼리의 후속곡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리고 서인영과 박정아는 쥬얼리에서 탈퇴해 각자 새로운 길을 간다. 박정아는 아예 연기 쪽으로 꾸준하게 한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서인영 역시 가수로서의 자아를 찾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엘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엘리는 좋은 목소리를 가진 가수였다. 하지만 신상녀 이미지는 자꾸만 가수 엘리의 길과 충돌했다. 그녀의 음색이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서인영이 지닌 이미지에만 집중이 되곤 했다. 만일 서인영이 자신의 스타성을 포기하고 엘리의 음악에만 집중했다면 그 길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발라드나 미디엄템포 음악을 모은 <러브 엘리>는 귀로 듣기에 꽤 괜찮은 프로젝트였다. 톡 쏘는 말투지만 알고 보면 괜찮은 여자들의 동성친구 같은 이미지 역시 자신의 새로운 트레이드마크로 삼았으면 괜찮았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신데렐라 엘리는 더 멋진 여왕의 모습을 보여주길 원한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아무리 요즘엔 대세라도 신데렐라는 여왕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여왕의 새 헤어스타일에 대해 진짜 촌스럽다고 과감히 말할 수 있는 단짝친구의 자리가 더 맞아 보인다. 하지만 엘리는 여왕의 옥좌가 있는 계단으로 킬힐을 신고 발을 디뎠다.

<리듬 속으로> 같은 노래는 잘 빠진 댄스곡이지만 서인영의 목소리는 쉽게 녹아들지 못했다. 뒤이어 발표한 ‘Oh my gosh’의 경우는 모든 핀트가 어긋난 것 같았다. 그 노래가 요구하는 기계적인 보컬과 서인영의 목소리는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니었다. 서인영의 파르르한 고음은 어딘지 타령조의 민요가수 같은 느낌도 들어서 세련되거나 쿨한 음색은 아니다. 힘은 있지만 깊이 있는 음색도 아니다. 댄스음악에 적절한 리듬감을, 발라드 음악에 슬픈 풍미를 더하는 매력을 지녔을 따름이다.

2012년 서인영은 엘리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자신의 회사를 세우고 자신의 이름으로 두 곡의 노래를 발표한다. 신곡 ‘Anymore’와 ‘let's dance’는 서인영의 음색과 어울리는 그럴싸한 곡들이다. 운전하면서 가볍게 흥얼거리기에 좋을 법한 적당히 상쾌하고 중독적인 음악. 이벤트성으로 보여준 짧은 활동이었지만 서인영이 지닌 매력이 드러나는 활동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보다 독보적이고 노래 잘 하는 후배가수들은 너무 많다.

과연 그녀에게 두 번째 호박마차는 찾아올까? 그것은 그녀가 처음 자기 힘으로 세심하게 곡을 고르며 만들고 있다는 새 앨범을 들은 뒤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쥬얼리도 신상녀도 엘리도 아닌 서인영만의 음악에 대해 아직까지는 간만 본 상태니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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