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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지휘는 무대 위의 교통정리”
기사입력 :[ 2012-11-15 16:04 ]


- “마지막 한 음까지 소홀히 다루지 않아야” 지휘자 윤호근 [인터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돌직구 인터뷰] “오페라 지휘자의 비밀의 열쇠는 마지막 한음까지 소홀히 다루지 않는 철저한 장인장신에 있어요. 2009년 베를린 슈타츠오퍼(베를린 국립오페라단)에서 부지휘자로 일할 당시 바렌보임이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왜 템포가 맞지 않았는지 물어본 일화가 있어요. 지적받은 단원이 모르겠다고 하자, 무대 위에선 ‘모른다’는 단어는 존재하는 않는다고 화를 내며 어디서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를 설명해주셨죠. 이렇듯 오페라 지휘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 전에 완벽한 준비는 물론이구요.”

2009년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에게 발탁되어 동양인 최초로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부지휘자로 활동해 화제를 모은 주인공 윤호근 씨를 만났다. 현재 그는 2012년 서울시오페라단 정기공연 “모차르트 오페라 시즌” 중 하나인 <마술피리> 지휘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모차르트 오페라 시즌”은 모차르트 오페라인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마술 피리> 세 가지 작품을 하루에 한 작품씩 번갈아가며 공연하는 레퍼토리 형식의 오페라 프로젝트이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서울시합창단이 함께한다. 김홍승 연출가가 세 작품을 총괄하고, 김주현 지휘자가 <돈 조반니>를 박인욱 지휘자가 <코지 판 투테>를 지휘한다.

■ "훌륭한 지휘는 가수가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노래할 수 있게 유도 하는 것“

‘한편의 오페라가 무대에 올려 질 때 지휘자의 역할이 어디까지 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인터뷰의 출발점이었다. 이 질문에서 시작 된 궁금증은 행복한 <마술피리> 여행을 지나 19년간 음악만을 보고 살아 온 한 남자의 인생에 대한 공감으로 마무리 됐다. 준비해 온 질문을 던지면 모범답안 같은 답으로 받아치는 조금은 딱딱한 그런 류의 인터뷰가 아니었다. 2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이런 윤 지휘자에 대한 주변 평도 ‘재미있고 편하고 즐거운 지휘’라는 게 지배적이다.

“오페라에서 서곡의 막이 오을 때부터 끝까지 공연을 이끌어나가는 중심체는 지휘자입니다. 모든 게 지휘자의 손끝에서 결정되는 거죠. 물론 주 멜로디는 성악가가 가지고 있죠. 그런 성악가를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유도하는 게 지휘자의 임무입니다. 가수의 컨디션에 따라 원하는 템포가 다른데, 느리게 가길 원하면 기다려주는 여유도 필요하죠. 만약 가수가 그날 컨디션이 베스트가 아니어서 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상태라면, 오케스트라 소리를 줄여서 가수의 소리가 조금이라도 돋보이게 해야죠. 가수 호흡이 딸리는 느낌이 든다면 오케스트라 호흡을 빨리 해서 가수가 마지막까지 무사히 갈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발란스, 즉 균형이 중요한거죠. ”

“오페라 지휘는 교통정리”라고 밝힌 윤 씨는 지휘자는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해서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지휘자들이 관현악 지휘는 할 수 있어도 오페라 지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전했다.

“2년 이상의 공부가 필요한 바그너 오페라도 있지만, 대개 오페라는 6주 이상의 오케스트라 연습이 필요해요. 물론 가수들은 훨씬 전부터 준비해야죠. 지휘자는 한 작품을 준비하는데 1년 정도의 공을 들입니다. 성악가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야 교통정리를 할 수 있겠죠. 텍스트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기본이고, 가사, 악보, 조명, 가수들의 다양한 목소리, 슬픈 음악, 기쁜 음악 등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해요.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오페라는 번역된 리브레토로 이해하는 게 아닌 원어로 알아야 돼요. 이태리어가 주는 맛, 독일어의 시적인 뉘앙스들을 알고 지휘하는 것과 모르고 지휘하는 것은 또 달라요. 성악가들이 특정 부분의 프레이즈와 긴장감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캐치해내야죠.”

윤 씨는 인터뷰 내내 ‘지휘자에게 필요한 건 신뢰와 서포트’라고 강조했다. “성악가들은 지휘자를 믿고 지휘자는 성악가 및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신뢰해야죠. 연주하는 사람이 불안해선 안 되는 거잖아요. 가수들의 불안감은 무의식중에 관객들에게도 전해지거든요. 한편의 공연이 잘 풀리느냐, 안 풀리냐의 관건은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어요. 독일에서 12년간 생활하면서 느낀 건 ‘정말 좋은 공연은 가수들이 마음 놓고 노래 부를 수 있게 다양한 소리의 색깔, 감정을 이끌어내는구나. 이게 바로 지휘의 예술이구나’ 란 사실이에요. 지휘란 홀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더구나 오페라는 모든 게 어우러져야 제대로 빛이 나는 종합예술이잖아요.”

■ 음과 양의 조화를 보여줄 오페라 <마술피리>

서울시오페라단은 “모차르트 오페라 시즌”을 준비하며 무대 장치는 축소화하면서 영상에 포커스를 맞추어 더욱 새롭고 신선한 오페라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윤 씨는 모차르트 3작품을 한꺼번에 올리는 엄청난 프로덕션을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작품에 임한다고 했다. “관객은 오케스트라를 보지 않고 무대를 보겠죠. 하지만 관객이 음악, 미술, 영상 등 총체적인 예술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하려면 음악을 이끌어가는 지휘자의 손길이 너무도 중요하거든요.”

그렇다면, 독일어로 된 징슈필(Singspiel) <마술피리>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어떤 정보를 알아두면 좋을까.“ <마술피리>는 음과 양의 조화를 다룬 오페라에요. 고대 이집트엔 밤의 세계를 다스리는 ‘밤의 여왕’(소프라노 구민영▪ 윤성회)과 태양의 신을 섬기는 ‘자라스트로’(베이스 김형태▪ 서정수)라는 두 권력자가 대결하고 있었어요. 여기서 ‘밤의 여왕’은 딸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딸을 이용해 태양계 권력을 빼앗아 오려는 인물입니다. ‘자라스트로’는 엄마의 스트레스 아래 자란 사춘기 소녀 ‘파미나’(소프라노 박지홍▪최윤정)를 어렸을 때부터 지켜봤겠죠. 그래서 엄마의 성품과는 다른 순수한 딸을 지켜주기 위해 유괴한거죠. 그렇게 오페라엔 ‘파미나’가 세상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담겨있어요.”

‘소리(음악)는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란 메시지가 담겨있는 오페라가 <마술피리>이다. 윤 씨 역시 ‘모차르트 음악 안에 사랑, 슬픔, 복수, 행복 모든 감정이 들어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의 귀만 자극하는 것이 아닌 머릿 속까지 변화시켜요. 극중 플루트 멜로디를 들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요. 들짐승도 춤추고, 노예들도 춤춘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거죠. ‘밤의 여왕’ 아리아에선 천둥, 번개를 만날 수 있는데, 심리적으로 불안한 어둠의 색깔이죠. 등장인물들이 어려울 때마다 ‘마술피리’를 불면 많은 도움을 얻게 되요. 무서운 들짐승은 순해지고, 슬픈 사람은 행복한 사람으로, 건방진 사람은 겸손한 사람으로 바뀌어 서로를 이해하게 되죠. 이렇게 어둠에서 밝은 세계로 인도해주는 작품이 <마술피리>입니다.



■ “‘타미노’와 ‘파미나’가 재회하는 장면은 매번 가슴이 뭉클해요”

<마술피리>는 윤호근에게 각별한 작품이다. 유럽 생활 중 매번 극장에 갈 때마다 표가 매진이 돼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웠던 작품이기에 더더욱. 몇 번을 허탕을 친 끝에 윤 씨는 용기를 내 ‘티켓 구합니다’는 푯말을 내 걸고 극장 앞에 서 있기에 이른다.

“가난한 유학생 시절, 독일에서 처음 본 오페라가 바로 <마술피리> 입니다. <마술피리>는 너무 보고 싶은데, 표를 구할 수가 없어 혹시 일행이 오지 못해 남는 표를 싸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푯말을 들고 서 있었어요. 다행히 은발의 할머니가 남는 표를 선물하겠다고 하셨어요. 맨 꼭대기 층 자리에서 공연을 함께 보던 중 2부가 시작되고, ‘타미노’와 ‘파미나’가 재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옆자리 할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공연을 보시는 거였어요. 공연이 끝난 뒤 그 이유를 들었어요. 할머니의 아버님 사연이 특별하더군요. 아버지가 군인이셨는데, 2차 세계대전 중에 끌려가셨는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생사여부를 알 수 없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할머니의)어머니가 직접 찾아 나섰는데 결국 아버지 시신도 찾지 못한 채 홀로 돌아오셨대요. 그런 사연으로 그 두 남녀가 재회하는 장면이 나오면 목이 메인다고 했어요. 극 중 주인공들처럼 재회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들도 겹쳐지신거죠.”

<마술피리>에 대한 특별한 일화를 전하며 윤 씨는 사연의 주인공인 할머니의 심정으로 돌아간 듯 눈가가 다소 촉촉해졌다. 그래서 ‘혹시 마음이 여린 감성적인 남자냐’는 질문을 넌지시 던졌다. “19년간 타국에서 홀로 생활하다보니 음악이 하나의 우주가 된 듯해요. 금방 감정 이입이 돼 빠져들어요. 감정을 이해하게 되니 감동하게 된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음악을 하는 겁니다.(웃음) 그 재회 씬은 매번 지휘할 때마다 특별하게 다가오고, 기분이 이상합니다.”

윤 씨가 <마술피리> 중 제일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는 장면은 파미나가 ‘나는 알았네, 행복이 영원히 사라졌음을’ 을 부르는 2막 장면. 사랑하는 ‘타미노’(테너 류승욱▪ 전병호)가 침묵의 시련 중인 줄 모른 채 자신에게 차가운 태도를 보여 파미나가 사랑의 절망감을 담아 부르는 아리아이다. “장송행진곡 리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등을 돌리고 자기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가지게 되는 슬픔을 너무나 잘 담아낸 곡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죠.”

■ “다시 태어난다면 지휘자가 아닌 테너 가수로”

서울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소년은 독일로 유학해 만하임 국립음대에서 관현악, 합창지휘, 실내악, 가곡 반주를 전 과정 최우수 성적으로 끝마쳤다. 오케스트라가 좋아 실내악 연주에 전념했다.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변성기를 거친 뒤 스스로 소리가 예쁘지 않다고 여긴 청년은 성악가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지휘자, 그중에서도 오페라 지휘자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99년 독일 기센 시립극장에 지휘자와 음악코치로 데뷔한 뒤 2001년부터 2008년까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극장에서 지휘자와 전속 음악코치로 일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테너가 되고 싶은 꿈은 있었어요. 제 목소리가 예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꿈을 접었지만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꼭 테너로 살고 싶어요. 이 소프라노, 저 소프라노에게 칼 맞아죽는 오페라 가수 인생도 살아보고 싶거든요.(웃음)

독일어 가곡 반주를 하며 독일어 감각을 익히고 지휘과에도 들어가게 됐어요. 운이 좋아 프랑크프루트 오페라 극장에서 일한 지 1년 뒤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로 승격됐어요. 기센 시립극장에서는 나이드신 지휘자들이 꺼리는 현대음악 지휘를 많이 했고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극장에서는 대형 오페라들을 배웠어요. ”

불혹의 나이를 지났지만 아직 윤 씨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지 못했다. 물론 ‘음악’이라는 동반자가 있어 외로워 보이진 않았다. “왜 가정을 꾸리지 않았냐구요? 가정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기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독일에서 하루 24시간은 항상 대기 상태였어요. 본 지휘자가 아프면 부 지휘자인 제가 그 자리를 채워야했죠. 겨울엔 가수들이 감기에 잘 걸리는데, 그렇게 되면 가수들이 무대 올라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잖아요. 새로운 가수를 캐스팅 해 와 계속 연습을 시키는 것도 제 몫이었어요. 10년이 넘어가니 조금 편해지긴 했지만, 정말 초반 5~6년은 지옥이었어요.”

‘어시스트’ 자리에서 매번 마음을 졸이며 연출가들이 쓰는 단어의 상징성, 철학성을 캐치해내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는 윤 씨, 그렇게 음악에만 빠져 살다보니 벌써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있었다고 밝혔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문득 ‘시인 지휘자’란 말이 떠올랐다. “페이스북에 가끔 글을 남기기도 하는데, 주변사람들이 오페라 텍스트 같은 제 글을 보고 ‘니가 시인이야.’라고 하더군요. 그러면 전 쉬인(오래된 사람)이라고 받아치죠(웃음)”

한편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마술피리>는 19, 22, 24, 26일 오후 7시 30분에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윤호근 지휘자는 <마술피리> 지휘 이후, 국립오페라단이 오는 12월 국립극장 무대에 올리는 오페라 <라보엠>으로 다시 한번 국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윤호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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