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우재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이것은 강마루에 대한 칼럼이 아니다. 주말 밤 8시에서 10시까지 KBS와 SBS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두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각각 성은 다르지만 똑같은 이름을 지녔다. 우재, 부르기만 해도 어딘지 기대고 싶은 넓은 어깨가 떠오르는 이름이다. 내가 눈물을 흘릴 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 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사내다운 이름, 우재.

이 이름의 여성판 버전으로는 희재가 있다. 소설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연극으로 다시 피어나는 <국화꽃향기>의 희재는 모든 남성들의 편안한 연상녀의 총합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말이 없으면 분위기가 청순하되 알고 보면 성격은 털털해서 남자 후배의 마음에 봄바람을 불어넣는 선배. 내가 배고프고 갈 곳 없을 때 자취방의 문을 두드리면 라면 한 그릇에 찬밥 약간 전자레인지에 데워 뚝딱 차려줄 것 같은 누나. 씩씩하면서도 가끔 흘리는 눈물 한 방울로 사나이의 가슴을 울리는 여성.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한 향내가 풍기는 국화 같은 이름, 희재에는 그런 매력이 있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희재가 아니니 다시 두 남자 우재에게로 넘어가자. 주말 저녁 8시부터 밤10시까지의 전국의 여성들은 우재의 매력에 빠져든다.

이상윤이 연기하는 <내 딸 서영이>의 강우재는 ‘우직한’ 우재다. 우직한 우재는 사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해가 빠르거나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인물은 아니다. 드라마 초반에서 한눈에 반한 서영을 대책 없이 돌직구로 몰아가는 모습만 보아도 그러하다. 가끔은 욱하는 성질도 드러나서 아버지와 한판 붙을 때는 사나운 들소 같다. 가끔 보면 눈치도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닌 것 같다. 아버지가 의류업체 회장이어서 그런지 옷 입는 센스는 좋아 보이지만 말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마음은 처음부터 그대로였고 끝까지 그대로인 우직한 우재라는 점이다. 또 그 감정을 여우같이 숨기는 것도 아니고 날 것 그대로 다 홀랑 드러낸다. 속이 훤히 보이는 타입이지만 그렇다고 방정맞지는 않다. 사랑하는 여자에게만 헤벌쭉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예의바르고 묵직한 남자다. 밀고 당기는 연애의 재미는 없지만 남편감으로는 최적의 캐릭터인 셈이다.



얼마 전 결혼한 여자친구 L의 말에 따르면 까탈스럽고 섬세한 남자보다 약간은 촌스러워도 밥 잘 먹는 남자가 신랑감으로는 더 낫다고 하니 말이다. 거기에 이상윤이란 배우의 겉모습 역시 우재라는 역할에 딱 맞는 맞춤옷이기는 하다. 살짝 어눌한 대사처리 역시 우재라는 인물의 성격과 맞물려가는 구석이 있다. <내 딸 서영이>의 우재를 맡은 이상윤이 괜히 어머니들 사이에서 인기가 폭발하는 게 아니다.

반면 주말 밤 9시에 등장하는 <내 사랑 나비부인>의 이우재는 ‘우아한’ 우재다. 우아한 우재는 남나비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수호천사처럼 나타난다. 그리고 위기의 상황을 단숨에 해결한다. 주먹질, 이런 거는 잘 안 한다. 우아한 우재는 쉽게 성질을 부리는 인물이 아니다. 멋진 코트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 한 통으로 몇 마디만 해주면 사건은 깔끔하게 해결된다.

게다가 우아한 우재는 남나비의 마음까지 귀신처럼 알아차린다. 늘 씩씩한 모습만 보이는 남나비가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도록 북돋아준다. 남나비의 속이야기를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들어준다.



우아한 우재는 사실 90년대 유행했던 드라마 속 실장님이나 이사님의 최신판 버전이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차인표나 <아름다운 날들>의 이병헌이 보여주었던 능력 있고 멋있는 왕자님 말이다. 하지만 이 왕자님들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났다. 소매를 걷고 색소폰을 불거나 나직한 저음으로 속삭이는 남자들은 강렬하지만 살짝 느끼하다. 게다가 점점 팍팍해지는 세상에서 무조건 멋있는 척하는 남자보다 그냥 자신의 투덜거리는 한탄을 들어주는 남자가 더 나을 수 있는 법.

이우재를 맡은 박용우는 미남이지만 강렬한 마스크는 아니다. 살짝 싱거운 맛이 풍기지만 그래서 더 이우재라는 인물에 어울린다. 진한 얼굴의 신현준이나 김성수가 이우재를 맡았다면? 아마 지금처럼 남나비와 편안한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을 것 같다. 우아한 이우재는 심지어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법까지 우아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우직한 우재와 우아한 우재, 주말의 연인 우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다. 현실의 남자들은 대개 우직하게 살기엔 눈치를 너무 많이 봐야하고 우아해지기엔 먹고 살기가 너무 바쁘니 말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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