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설픈 예능 토크쇼가 돼 버린 ‘박근혜 토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지난 26일 저녁 11시 신개념 예능 정치토크쇼 <박쇼>의 파일럿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이 방송은 파일럿방송 치고는 특이하게도 3개 지상파는 물론 종편에서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최초의 라이브 토크쇼였다. 물론 방송 전에 잠시 웹상에서 이 방송의 대본시트가 유출되면서 이 방송이 녹화냐 생방이냐, 아니면 토론프로를 가장한 토크쇼냐 아니면 토크쇼를 가장한 토론프로그램이냐로 많은 말들이 오갔다.

하지만 우선은 수많은 방송국들이 모두 Live 마크를 달고 있으니 시청자인 우리는 이 방송을 생방으로 알고 시청할 수밖에.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막상 뚜껑을 연 <박쇼>는 토론프로그램보다 토크쇼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든 방송사에서 방송할 만큼 핫한 포맷의 방송은 아니었다. 물론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들이 존재하긴 했다.

신개념 정치토크쇼 <박쇼>는 SBS가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시청률 면에서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던 토크쇼 프로그램 <고쇼>의 포맷을 응용해 꾸려졌다. 오디션은 아니지만 면접 형식으로 게스트가 면접관의 면접에 응하는 방식이었다. 면접관으로는 중앙일보 정진홍 논설위원을 비롯한 각 대학의 교수진들이 출연했다.

이 방송의 대본 시트가 미리 유출되면서 과연 면접관들의 뼈 있는 질문들이 연출이냐 아니면 즉석에서 나온 것이냐를 두고 또 시청자들은 궁금해 했다. 하지만 게스트이자 이 쇼의 주인인 박근혜 대통령후보의 대답 역시 즉석에서 답변하는 것처럼 조리에 잘 맞지 않고 가끔 말이 끊겨서 그 진상을 쉽게 유추할 수 없었다. 만일 생방의 묘미를 살리기 위한 사전 연출이었다면 정말 잘 짜진 토크쇼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쇼의 주인인 박근혜 대통령후보는 생방의 탄력을 잘 살리지는 못했다. 편안한 자세, 열정어린 진심, 푸짐한 수다가 토크쇼의 묘미이다. 우리가 가끔 영어회화 공부 를 위해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토론 토크쇼를 볼 때 제일 감탄하는 부분들이 그 지점이다. 어찌나 말을 찰지게들 하는지 감탄이 나올 때가 있다. 무엇이든 잘 먹는 대통령보다 무슨 문제에 관해서건 자신의 신념을 또릿또릿 말하는 대통령을 한번쯤 가져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이야기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또한 갖가지 사안들에 대한 겉핥기가 대부분이라 말이 길어질수록 흥미가 떨어졌다. 토크쇼를 이끌어가기에는 유머감각 또한 부족했다. 그녀 혼자의 힘으로 시청자들을 웃겼던 부분은 사교육을 사교교육이라고, 솔선수범을 솔선을 수범이라고 발음했던 그 부분 정도가 전부인 듯했다. 하지만 <고쇼>에서 고정패널들이 MC를 도와주듯 이 토크쇼에서도 면접관들은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답변에 좀 더 밀도 있는 살을 붙여주려 애썼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후보가 자연스럽게 토크쇼 분위기에 녹아드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자신의 포즈가 괴상하게 찍힌 사진에 대해 해명하는 부분이었다. 성형 전 얼굴이나 못생긴 얼굴로 찍힌 졸업사진에 대해 해명하는 여자연예인처럼 그녀는 아주 유쾌하고 편안해 보였다.

한편 <박쇼>의 실질적인 메인 MC인 송지헌 전 아나운서는 방송 내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베테랑 MC인 송지헌 전 아나운서는 물론 <박쇼>를 매끄럽게 진행하는 데에 한 몫 단단히 한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진행방식이 21세기의 토크쇼와 잘 맞는가는 의문이었다. 패널로 나온 면접관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여주인공인 박근혜 대통령후보의 토론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호위무사처럼 면접관들을 억누르는 일에 바빴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아예 못 나오시는 수가 있습니다.” 정확히 이 문장은 아니었지만 이날 정진홍 논설위원에게 던진 송지헌 전 아나운서의 농담은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그 농담 역시 2012년에는 맞지 않는 농담이었다. 아니, 말 한 마디 대통령 후보에게 따지듯이 한다고 못 나오시는 경우가 있나? 아니지, 혹시 정말 그렇게 되는 건 아닌가?

<박쇼>가 끝나갈 무렵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해진 건 송지헌 전 아나운서의 낡은 농담이 무덤에서 걸어 나와 무시무시한 진담처럼 변할까 두려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박쇼>를 강하게 발음하면 너무 섬뜩한 단어로 변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아쉬운 건 <박쇼>에서 제일 기대했던, 혹은 짤방도 제일 많이 만들어질 것 같았던, 비빔밥 만드는 요리코너가 안 나왔다는 점이다. 왼쪽으로 비비고, 오른쪽으로 비비고 재밌었을 텐데.

아, 그런데 월요일 밤에 내가 본 프로그램이 예능 프로그램이 맞긴 맞는 거겠지?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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