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영동 1985> 정지영 감독의 미처 못한 이야기 [인터뷰]
- <남영동 1985>, 소문내지 않고 촬영한 진짜 이유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생생인터뷰] (전문)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의 신작 <남영동 1985>가 숱한 화제를 모은 끝에 드디어 오늘(22일) 개봉한다. 이 영화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안기부의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간 모진 고문을 당했던 故김근태 상임고문(민주통합당)의 수기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 지난 10월 초 열렸던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리젠테이션 부문에서 상영된 이후 한 달이 넘는 동안 줄곧 주목과 관심을 끌어 왔다. 개봉 전 영화가 한 달 넘게 이처럼 입소문이 활발한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그만큼 영화가 같는 폭발성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지금은 대선 정국이다. 정지영 감독을 서울 시내에 있는 프레스센터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워낙 많은 얘기들이 나온 탓에 이번 인터뷰는 ‘조금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 우리는 고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전해진 얘기’일 뿐이다. 고문 장면 묘사에서 이런저런 애로가 많았겠다.

“처음엔 거기서 행해진 모든 행위를 다 보여주려고 했다. 예를 들어 바늘 끝으로 손톱 밑을 후빈다든지 하는. 벼라 별 일이 다 벌어졌던 시대고, 또 그런 곳이니까. 그런데 생각을 바꿨다. 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고문 전시장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니까. 관객들을 끔찍한 경험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일반 사람들도 알고 있는 몇 개의 고문으로 강도높게 가자고 방향을 틀었다. 그게 더 설득력 있을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고문 방법이 몇 개 나오지 않는다. 물고문과 전기고문 정도다.”

- 고문 장면의 강도가 세다. 그래서 실연(實演, 실제연기) 소리가 나온다. 특히 고추가루를 입에 붓는 것은 어떻게 했나?

“음…그거 오미자 가루다. 물론 고추가루가 섞이긴 했는데, 안 매운 고추다.”

- 그래도 실제로 털어 넣던데.

“음…어쨌든 맵지 않은 거다.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었다.”

- 물고문은?

“욕조에 거꾸로 처넣는 장면이 상당한 난이도가 있는 촬영이었다. 처음엔 타이밍을 잘 모르니까 언제 커트를 불러야 할지 난감하더라구. 코에 물을 들이 붓는 물고문 장면은..물론 코를 막고 한 것이다. 얼굴에 수건을 덮고 물을 부으니까 그건 일종의 트릭이 가능했다. 그래도 워낙 양이 많아서 박원상이 힘들었을 것이다.”

- 이근안 캐릭터가 돋보였다. 실재 인물 그대로를 따라 간 것인가.

“아니다. 전혀 다른 캐릭터다. 거의 100% 재창조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캐릭터는 대체로 역을 맡았던 이경영에게 맡긴 것이다. 이경영은 악마적일 만큼 차분하고 침착한 톤을 연기했다. 그건 아마도 전혀 이근안스럽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영화적으로는 새로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 고문 중간중간 이두한(이근한의 극중 이름)이 휘파람을 부는 게 소름끼친다.

“이두한이 영화 속에서 장의사라고도 불린다. 고문의 전문가이고 그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긴다기 보다는, 무관심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고문기술자가 아니라 심문기술자라고 불렀을 정도다. 자기는 애국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정상이 아니다. 그가 중간중간, 고문을 약간 쉴 때 혹은 고문을 이제 막 준비하려고 할 때 부는 휘파람 소리로 이 인물이 갖는 비인간적인 느낌을 강화시키려 했다.”



- 왜 꼭 ‘클레멘타인’인가.

“글쎄? ‘클레멘타인’의 애조 띤 곡조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곡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작권료를 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만들었다.”(웃음)

- 이경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명계남, 문성근 씨가 맡은 역할은 다분히 전형적인 느낌이다.

“그건 의도적으로 그랬다. 그 시절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극단적으로 왜곡된 반공이데올로기를 가졌다든지(문성근), 오로지 출세나 승진밖에 모르는 인간형이라든지(명계남) 등등 그 당시의 상징적 시대상을 보여 줄 수 있는 아주 전형적인 캐릭터들을 넣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 둘의 연기가 진부했다고 느꼈다면 그건 순전히 내가 의도한, 나의 책임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는 오로지 작은 공간 하나에서 2시간 가까이 고문으로 이어지는 영화다. 박원상과 이경영이라는 특별한 캐릭터가 나온다. 거기에 몰입시키기 위해서도 주변 인물들을 보다 전형적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 오로지 작은 하나의 공간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한 방법은?

“앵글이었다. 어쩌면 굉장히 단선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마치 직구가 들어 오듯 2시간 동안 한번에 빨려 들어오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다양한 각도의 촬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앵글을 다양하게 구사하면 매우 풍부한 미장센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김종태(김근태의 극중 이름)이 고문 중에 꿈꾸는 환상 장면이 필요했던 이유는?

“숨 좀 쉬자는 거였다. 안 그러면 관객들이 도저히 압박감이 심해서 못 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나레이션도 없다. 김종태의 생각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 내면의 심리라든가 무의식의 소망 같은 것. 그래서 그걸 환상장면으로 표현하자고 생각했다.”



- 어찌 보면 소리소문없이 영화를 찍었다. 있을 수 있는 외압을 고려해서인가?

“그건 아니다. 외압은 전혀 없었다. 내가 아마도 많이 시끄러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아닐까?(웃음) 다만 세트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를 빌리고 하는 등등의 일에 있어서 조금 과도하게 가격을 부르는 경우는 있더라. 아예 거기를 못쓰게 하려고 그랬던 건지, 암튼 그건 잘모르겠다. 소문내지 않고 영화를 찍었던 건 배우들을 보호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괜찮지만 혹시 배우들이 ‘이런 류의 영화’에 출연한다고 해서 차별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부러진 화살> 때부터 안성기 등등과 철저하게 약속을 한 부분이다. 영화가 다 완성돼서 극장 상영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영화에 대한 홍보를 하지 않겠다고.”

- 이게 대선에 영향을 미칠까?

“자꾸 그런 질문을 받는다. 이건 대선용 영화가 아니다. 과거의 우리가 얼마나 지난하고 처절한 일들을 겪어 오고 지나 왔는가를 되씹어 보는 영화다. 그런 과거를 잊지 말자는 영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가. 이제 다들 많이 잊었다. 잊혀지면 안될 일들이다.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투표를 독려하는 데 더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 먼저냐, 관객들이 그냥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 먼저냐고 물으면 당연히 후자다. 암튼 빅3 후보들은 다 이 영화를 봤다.”

- 박근혜 후보도?

“아마 DVD가 전달된 것으로 안다. 정치적인 영화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물론 보좌관 얘기일 수도 있지만.”

- 여러분은 2시간이 고통스럽고, 배우들은 20일이 고통스러웠고 영화 속 실재 고문 피해자(들)는 20년이 고통스러웠다는 말이 요즘 많이 회자된다.

“끔찍해 하지 말고 같이 아파해 달라는 차원에서 한 얘기다.”

- 그래도 흥행을 예측한다면?

“<부러진 화살>이 370만 정도의 관객이 봤다. 그 370만의 반만 봤으면 좋겠다.”(웃음)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아우라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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