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박2일>, 성시경을 건드리면 재미가 쏟아진다

[서병기의 대중문화 프리즘] 발라드 가수가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에 출연하는 게 모험인 시절이 있었다. 몇 해 전 신승훈이 <무릎팍도사>에 나와 19년 동안 CF를 안 찍은 이유에 대해 “내 노래는 슬픈 발라드인데, 쾌활하게 찍는 음료수나 아이스크림 CF와 내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거절했다”고 설명한 게 이를 상징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제는 발라드 음악과 예능의 공존, ‘윈윈’이 가능해졌다. 매달 한 곡을 발표하며 발라드도 부르는 윤종신이 예능에서 폭넓게 활약을 펼치고 있고, 발라드 가수인 김종국은 3년간 노래를 발표하지 않고도 <런닝맨>에서의 활약으로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발라드 가수가 예능을 하면 무조건 좋아진다는 말은 아니다. 예능이나 광고에서 까불면서 가볍게 보이는 모습이 심각하게 노래하는 멜로적 분위기를 해친다고 받아들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우선 예능에서의 기능과 특징이 집약돼 있는 캐릭터가 잘 잡혀야 한다. 윤종신은 ‘내용 있는 깐족’ ‘다양성 있는 깐족’이어서 오래 간다. 그래서 예능을 해도, 음악을 해도 각각의 자신의 위상이 확고하다.

김종국의 ‘능력자’라는 캐릭터는 게임버라이어티의 분위기를 팽팽하게(때로는 살벌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런 김종국이 제공하는 ‘능력자’는 든든한 캐릭터다. 특히 어린이들로부터는 ‘슈퍼히어로’급으로 대접받는다.
 
단단한 근육질 몸매에서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가느다란 목소리를 뽑아내는 김종국의 창법은 예능프로그램에서 유재석 등에 의해 ‘개미 목소리’라며 유머화되기도 한다. 이런 반전은 발라드 가수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시대다.
 
<1박2일>의 성시경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성시경은 현 발라드 가수의 표상이다. 그는 <1박2일>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시청자 투어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도와주는 그런 모습의 연장이라고 파악했던 것 같다. 초반 성시경의 특징은 밥을 안주면 화를 낸다는 점, 게임에 지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는 점 등이다. 이럴 때는 다른 멤버들보다 유독 얼굴에 표시가 많이 났다.



이런 모습은 성시경의 진면목이어서 리얼리티로서의 가치는 있었지만 이를 시청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재미있지도 않았다. 불평, 불만, 투덜로만 캐릭터를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김종민과 성시경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무식하고 엉뚱한 면모를 지닌 김종민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치욕적인 질문을 해도 별로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김종민은 흥분하고 화를 내야 정상인데, 오히려 툭툭 털어버린다.

상대가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할 때 계속 화를 내면 리얼리티물, 다큐고 예기치 못한 엉뚱한 반응이나 재밌는 반응을 보이면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이 된다. 김종민이 이를 알고 연기를 한다면 ‘천재’고, 모르면서 한다면 운 좋게도 태생적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에 맞는 사람이다.

성시경은 퀴즈 게임을 통해 ‘성충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하기는 했다. 고학력인 성시경은 ‘쿨’하기는 한데, 퀴즈에서 하위권이 되면 당장은 당황스러워한다. 그럼에도 성시경은 가만히 놔두면 다큐물이 되버리는 경향이 있다. <1박2일> 초반에는 성시경이 잘 안보였던 이유다. 하지만 성시경에게도 캐릭터가 효과적으로 잡히는 방법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성시경을 건드리는 것이다. 성시경은 건드리면 캐릭터가 나온다.


 
성시경이 몰래카메라의 표적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성시경은 영남 알프스의 억새밭 여행에서 간식비 마련을 위한 산상퀴즈 대결이 ‘몰카’임을 알아차리자 눈을 마구 깜빡이며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고, 제작진을 향해 “짜증이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 온다”며 불만을 드러내 웃음을 더했다. ‘식탐왕’ 성시경은 화를 참지 못하면서도 결국 라면에 대한 식탐을 참지 못했다. 성시경을 놀려먹으면 반응이 나오고 재미있어 이후에도 멤버들이 성시경을 건드리는 빈도수가 많아졌다.

게다가 성시경은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뚜껑 없는 예능에서 절대 필요한 요리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캐릭터 구축에 유리했다. 야외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에는 초창기 이수근을 버티게 만든 운전 실력이나 음식과 요리에 관련된 기술이 있으면 좋다. ‘성금이’ 성시경이 아침을 장만하기 전 시장을 보는 모습은 무척 자연스럽다. 여기서 만난 지역 주민과의 소통까지 더해진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앞으로도 성시경을 건드리면, 건드리는 수만큼 성시경의 별명은 늘어날 것이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corp.com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