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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석 “강제규·윤제균 등 후배 감독이 멘토”
기사입력 :[ 2011-04-11 17:38 ]


- “영화계에 직접지원 늘릴 터”
- “무조건 영화발전을 중심으로 일을 도모하겠다”
- 김의석 영화진흥위원회 신임 위원장 인터뷰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생생인터뷰]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이번 제8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을 선임하는 과정만큼 뒷말이 많았던 적도 없었던 듯 싶다. 모두들 한마디씩 하는 분위기였다. 누가 되면 절대 안되고, 그렇다면 이러이러한 사람이 돼야 하는데, 정작 그 사람은 요지부동 관심이 없어서 문제라는 식이었다. 그만큼 로비(lobby)도 엄청났다는 후문이다. 뜬 소문이고, 실로 가당찮은 일이겠으나 심지어 어떤 사람은 청와대 ‘빽’까지 동원했다는 말이 돌았다. 그 말이 돌 때쯤엔 정말, 영진위 위원장 하마평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다들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영진위는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많은 우려와 뒷소문을 물리치고 영화감독 출신인 김의석 씨(54)가 영화진흥위원회의 새 수장에 올랐다. 대체적으로 무난한 인선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한숨을 돌리는 표정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제 영진위 정책을 둘러싼 날 선 갈등은 좀 잦아들지 않겠느냐는 기대들이 나오고 있다. 이제서야 영진위가 식물인간형 공기관에서 탈피해 뭔가 실질적인 지원업무를 진행해 나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만큼 지난 약 3년간 영진위를 이끌어 온 전임 두 위원장의 실책과 오류가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영진위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영화계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새 영진위원장을 만났다.

요즘은 어떤 차를 이용하시나?
-“(웃음) 드디어 관용차를 타고 다닌다. 위원장이 되기 직전까지는 그냥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근데 그건 왜 묻나?(웃음)”

아니 뭐…아무래도 그게 제일 달라졌을 것 같아서. 근데 위원장이 되기 전까지도 위원장 직무대행이었다. 관용차를 사용해도 됐었다.
-“그래도 영 마음이 편칠 않았다. 직무대행이란 말은 언제라도 새 위원장에게 직무를 넘겨줘야 하는 직책이란 뜻이기도 하다. 자칫 그 차를 타고 다니는게 몸에 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안타고 다니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말은 거꾸로 해석하면 위원장 되는 일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얘기처럼 들리기도 하고.
-“그렇게 들리는가. 위원장이 되겠다고 여기저기 로비를 하고 다닌 일은 전혀없긴 하다. 한창 위원장 공모가 진행중일 때, 결국 응모를 하긴 했지만 내가 과연 응모 자격이 있나,하는 생각이 더 컸다. 나보다 더 잘 할 사람이 영화계에 수두룩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위원장이 된 만큼 그 책임과 역할을 다 할 생각이다.”



자격 운운은, 전직을 생각하면 지나친 겸손으로 들린다. 직무대행은 얼마나 했나?
-“4개월 했다. 영진위에 들어 온 것은 지난 해 7월이고. 그런 거 보면 영진위 내부에서 고속 승진을 한 셈이다. 위원이 되고 나서 곧바로 부위원장이 됐고, 그 다음에 직무대행을 바로 달았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위원장이 됐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빠르다.(웃음) 뭐 하긴, 영화 행정,정책업무가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2006년부터 전주영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었다. 기관장이 뭘 해야 하는지, 업무의 공공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현해 내야 하는지 등등은 그 전에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이런저런 경험이 이번 위원장 직무 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장 출신, 곧 감독 출신이어서 영화계에서 환영의 목소리가 큰 것 같다.
-“아마도 현업과의 소통이 남다르지 않겠느냐고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현장과 대화가 잘되는 것 만큼 너무 자기 목소리를 안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것 같다. 우유부단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 지금까지 영화계 내부에 기여한 것도 적지 않느냐는 소리도 들린다. 현장출신으로서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라는 얘기로 듣고 겸허한 자세를 유지하려 한다.”

그러니까..뭐가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모든 것을 영화를 중심으로 놓고 고민해야 한다는 소리다. 지난 몇 년간 아마도 그 점이 문제였던 것 같다. 때론 정치적인 잣대가 적용되기도 했고,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 커서 실질적인 정책 운용이 안됐었던 측면도 없지 않다. 모든 것의 중심에 영화발전이란 화두를 넣고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본다.”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예를 들어 독립영화전용관의 운영주체나 시네마테크 운영을 갑자기 공모제로 전환하기도 해서 말들이 많았다. 독립영화관의 경우, 아직도 영화인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예전의 모습으로 환원시키는 것도,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될 것이다. 일정한 수정은 필요하다. 과거로 무조건 회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독립영화권과 관련한 문제를 지나치게 민주 대 비민주의 정치적 구도로 해석하는 것은 지금 시대적 관점에서 봤을 때 다소 올드 패션한 방식이라고 본다. 예전의 10년은 영화계가 거시적 관점에서 ‘민주화’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두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10년, 또 향후 10년은 영화의 올바른 산업화를 목표로 노력해야 할 때다. 그러니 그런 문제 말고…이제 좀 다른 차원의 일을 고민할 때라는 얘기다. 예컨대 내수시장을 뛰어 넘어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방법론이 무엇인가, 그 기간을 얼마나 앞당길 것인가와 같은 문제. 그런 문제는 영진위와 같은 공적 기관이 앞장서서 해야 할 최우선 현안에 속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진위의 지원정책이 진실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지금, 제작자든 감독이든, 현금이 없어서 난리다. 그런데 지난 두 위원장 시절에 그 같은 직접지원을 모두 없앴다. 장비나 후반작업 지원 등 간접지원만 대폭 늘려놨다. 그것이 옳은가.
-“옳지 않았다. 균형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바로 해결하려고 한다. 영화인들이 갈증처럼 느끼는 기획개발비도 부활될 것이다. 독립영화인들에 대한 직접지원도 다시 회복될 것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지원방식이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융통성이 생길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금이 지원되면 회계처리가 자금 지원 직후부터 언제까지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회계 처리의 소급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금을 지원받기 전에 해당 영화를 기획하고 개발하느라 들었던 시기까지 영수증을 소급해서 처리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작품 제작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이런저런 조치가 늦어도 5월부터 시행될 것이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시기들 바란다.”



질문이 다소 반복되더라도 이런 식으로 일문일답을 해보겠다. 새 위원장으로서 버려야 할 것은?
-“영진위를 둘러싸고 벌어져 온 갈등과 반목, 불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것은?
-“한국영화가 계속 발전한다는 믿음과 확신, 끈기.”

새위원장으로 바꾸고 개선해야 할 점은?
-“영진위는 영화발전을 위한 서비스 집단이라는 내부 인식의 진정한 변화.”

문제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어쩌지 못할 때 찾아가는 사람은 있나?
-“음…없다.(웃음) 생각해 보니 영화위원장으로서 멘토로 삼았던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모든 영화인들이 다 멘토다. 괜한 말이 아니고 이런 거다. 강제규나 윤제균, 김용화 같은 감독을 만나고 느낀 건데, 언제부턴가 영진위 내에서도 중국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중국시장이야말로 향후 한국 영화계가 추구하는 글로벌 마켓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세 사람을 만나고 나니, 이미 이 사람들은 그 시장을 준비하고 있더라. 박찬욱이나 김지운 감독 같은 사람을 만나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나의 영화계 멘토다. 영화계에서는 후배지만 늘 배우는 게 많다.”

정병국 문화관광부 장관과는 나이가 같다. 잘 통하나?
-“국회에서 문방위만 12년 하신 분이다. 문화정책에 있어서는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대변하겠다는 태도지 현업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생각은 없는 분 같더라. 생각에 오차를 발견하지 못했다.”

영진위가 2012년에는 부산으로 간다. 이전 계획에 변화는 없는가?
-"영진위 이전은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정해진 것이다. 세부 방법, 실행 과정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생기기는 했지만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단 2012년이 아니고 2013년에 이전이 될 것 같다. 지금 홍릉 영진위 건물은 이미 매각됐다. 남양주 종합촬영소는 매각이 진행중이다.”

당신은 정체성은 여전히 감독인가? 아니면 이제는 행정가로 자리매김 했는가?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은 고2때였다. 그래서 전공도 영화로 했고, 학교를 나와서도 다시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영화행정가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개인적 인생의 측면에서도 큰 전환점을 맞고 있는 셈이다.”

요즘 제일 힘든 것은 무엇인가?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글쎄...무조건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것?(웃음) 고민할 시간조차 없다. 영진위를 다시 재생시킬 것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 = 전성환 기자 shjeon0877@enter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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