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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무서운 방송의 힘, 연극배우는 외롭다”
기사입력 :[ 2012-12-06 16:34 ]


- <그와 그녀의 목요일> 정재은 “연기엔 정답이 없다” [인터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돌직구 인터뷰] 배우 정재은 하면, 2004년과 2008년 두 차례 공연됐던 <지챠트콥스키의 갈매기>의 ‘아르까지나’가 먼저 떠오른다. 많은 <갈매기>를 봤지만 그렇게 흥미로운 ‘아르까지나’는 그 이후로 만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터뷰의 첫 시작도 바로 그 이야기였다.

“<갈매기>란 작품은 지금까지 제가 해오던 연기 방식과는 달랐어요. 내가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내 자신이 죽을 것 같은 치열함, 두려움, 긴장이 있었죠. 지챠트콥스키 연출이 초반에 배우들을 너무 힘들게 한 점도 있구요. 알고 보니 일부로 ‘아르까지나’의 가슴에 분노를 심어주려고 그런 거더군요. 첫 공연이 끝나고 연출이 안아줬는데. 펑펑 울었죠.”

그때의 추억 때문일까. 정씨는 ‘예술의 전당 공간에 들어서면, 꼭 친정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갈매기>가 예술의 전당에서 올려졌잖아요.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라 절망, 고통, 희망, 즐거움을 동시에 느꼈죠. 그래서 이번 연극이 연극열전과 예술의전당이 공동제작해서 올리는 작품이라고 했을 때, 너무도 기뻤어요.”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의 주인공 배우 정재은을 만났다. '연극열전4'의 마지막 작품으로 황재헌 작가 겸 연출이 프랑스 작가 마리 카르디날의 「샤를르와 룰라의 목요일」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재창작했다.

■ “연극 배우의 ‘연극’ 출연엔 왜 관심을 가져주지 않죠?”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위암 선고를 받고 국제분쟁 전문 기자직을 은퇴한 ‘연옥’과 30년간 연옥과 친구이자 애인으로 지낸 역사학자 ‘정민’이 주제를 정해 대화를 나누는 ‘특별한 목요일’에 대한 이야기다. '결혼 빼고 다 해본' 친구 사이로 둘 사이엔 정민이 뒤 늦게 존재를 알게 된 ‘딸’도 있다.

황재헌 작가가 집필 단계부터 배종옥을 염두에 두고 쓴 것처럼 극중 여자 주인공의 이름도 ‘종옥’과 비슷한 ‘연옥’이다. 드라마 속 배우 배종옥의 입에서 들었을법한 지적이고 다부진 대사들도 많다. 여기에 더해 언론은 ‘조재현과 배종옥의 연극 출연’에만 포커스를 맞춰 기사를 쏟아냈다.

주역 4명 중 연극 배우란 타이틀이 가장 편하게 들리는 배우 정재은은 이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가장 늦게 합류했어요. 게다가 출연진들이 다 연예인인데, 내가 여기서 잘 못하면 어떻게 하나. 책임감을 많이 느꼈어요. 빨리 잘 따라가야겠다. 그런 걱정 때문에 몸무게도 2kg이나 빠졌네요.”

더욱이 얼마 전엔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세 명의 출연진들이 MBC 연예프로 ‘라디오 스타’에 나간 뒤 예매율은 급격히 높아졌다. 첫 공연을 마치고 내려온 배우 정재은의 입에서 터져나온 말은 “방송의 힘이 무섭구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연극 배우들이 외롭구나”였다.

정재은 연극배우에게 필요한 자질로 ‘인내심’을 꼽았다. “연극 배우는 인내심이 없으면 힘들어요. 연극을 좋아하고 진득한 성격의 배우들이 결국 집중력 있는 연기를 보여줘요. 순간적인 감정에 충실한 사람은 버티기 힘들죠. 기다릴 줄 알고 참을 줄 알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다른 분야로 가야죠.”

연극 속 배종옥·조재현 커플과 정재은·정웅인 커플을 다 만나봤다. 배종옥 표 ‘연옥’이 출렁거리는 감정의 물결까지 견고한 이성으로 커버하는 여자라면, 정재은 표 ‘연옥’은 미세한 파동, 흔들거리는 감성의 틈을 상대에게 좀 더 내어주는 여자였다. 어느 한 배우만 만나고 끝내기엔 두 배우의 색깔이 너무 달랐다.

“배우가 연기하는데 있어 표현의 차이는 분명 있겠죠. 보는 관객의 성향에 따라서 느낌도 다 다를 것이구요. 황재헌 연출 역시 특별한 디렉션을 주지 않아요. ‘연기엔 정답이 없다’는 게 저 지론이기도 하구요.”



■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는 여자

정재은이 보여 줄 ‘연옥’은 자신에 대한 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아프고 외로워도 외롭다고 말하지 못한다. 자존심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에게 '너 왜 그러니'라는 말도 하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만 사는 여자. 자기만의 틀이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는 여자이다.

“저와 비슷한 점이요? ‘연옥’은 저와는 완전 다른 여자입니다. 전 혼자서 뭘 하기 보단 같이 하는 걸 좋아하죠. 물론 비슷한 점이 전혀 없지는 않네요. 제가 몇 년 전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쉰 적이 있어요, 남편(배우 서현철)이 자주 찾아와서 오랜 시간 같이 있었으면 했는데 극장가기 2시간 전에만 잠시 왔다 갔어요. 한참 남편이 연극 <너와 함께라면>으로 여러 언론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 시기였어요. 그런 기분 있잖아요. 전 제 본업인 배우 일을 못하고 있는데 남편은 항상 들떠 있을 때 그걸 바라보는 외로운 기분이죠. 자존심은 있어서 속 마음을 내비치진 못했어요. 어찌 보면 ‘연옥’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

그렇다면 ‘연옥’이란 인물은 왜 속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전 ‘연옥’이 굉장히 약하고 여린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무너지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본 거죠. (자신도 두려워하는 일인) 정민의 발목을 붙잡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럴까요. 정민이 “왜 널 감추냐?”하는 장면에선 정말 먹먹해져요.“

극 후반 ‘연옥’은 정민에게 함께 토론하고 싶은 주제로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이 장면의 여운이 상당히 묵직했다. “그동안 정민이랑 찍은 사진을 동봉해 편지를 보내요. ‘이중섭의 소 그림과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을 동시에 즐기는 법. 음악.그리움. 나. 그리고, 너.‘로 나래이션을 끝내는데, ’나. 그리고. 너‘란 대목에서 매번 뭉클해져요. ’연옥‘이란 여자는 절대로 그런 주제로 ’정민‘이와 토론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에 그렇죠. 황 연출은 이 편지를 쓰고 일주일 뒤에 ‘연옥’이 죽었을 것이다는 말을 하기도 했죠. 여러 생각들이 겹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 대사 없이 몸의 기운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배우

<그와 그녀의 목요일>무대는 작은 탁자와 의자 몇 개가 전부이다. 기존 연극과는 달리 무대의 사방을 모두 활용하는 미니멀한 오픈 무대 컨셉으로 객석이 마주보고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또한, 남녀 주인공뿐만 아니라 딸 ‘이경’(김정원▪ 이예슬)과 그의 남자친구(김수량)까지 등장해 오늘날 부모 자식 간의 사랑, 현대인의 사랑법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젊은 ‘연옥’(조윤지▪ 신유주)과 젊은 ‘정민’(성열석▪ 나경민)도 등장한다.

정재은의 무대에서 많은 대사 없이 온 몸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던 딸의 임신소식을 듣고 아르바이트 하는 곳으로 찾아가는 장면이다. ‘이경아. 엄마랑 이야기하자’라는 말을 하며 딸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조명이 아웃된다. “‘연옥’은 딸에게도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엄마죠. 오로지 일만 하는 여자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표현을 안 했을 뿐이지 내면적으론 딸을 너무도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딸의 임신과 낙태 소식에 흔들렸을 그 감정이 확 와닿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감정을 짧은 그 장면 안에 녹여내려고 했어요.”

방백이 많은 극이다. “배우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죠. ‘연옥’이란 인물을 연기하다 어느 순간 나래이션 역을 해야해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죠. 관객들이 여러 각도에서 인물의 모습을 속속들이 볼 수 있는 무대 구조라 발가벗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 ‘첫공’의 쾌감을 즐기는 배우 정재은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배우 정재은은 94년 러시아 유학파 1세대인 전훈·이항나·박신양 등과 극단 ‘떼아뜨르 노리’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봄이오면 산에 들에>, <카페신파> <지챠트콥스키의 갈매기>, <세자매>, <강 건너 저 편에>, <썸걸(즈)>, <8인의 여인>,<파티>, <유리가면>, <홍어>, <결혼전야>등에 출연했다. 최근엔 <죽은 남자의 핸드폰>,<쿠킹위드 엘비스>,<푸르른 날에>, <너와 함께라면>, <엄마들의 수다>로 관객과 만났다. 또한 KBS 탤런트 13기로 배우 조재현·서주희 등과 동기다.

그 중 <강 건너 저 편에>란 작품으로 지금의 남편 배우 서현철을 만나게 된다. 현재 뮤지컬 <심야심당>의 노총각 타다시 역으로 캐스팅 된 그 배우가 맞다. “당시 현철 배우가 다른 배우들 앞에서 제 흉내를 그렇게 잘 냈어요. (커다란 제스처를 보이면서)‘재은이랑 이야기를 하려면 수화가 돼야한다’이러면서 오버해서 흉내를 된 거죠. 당시엔 제가 여장부 스타일처럼 다소 격했나봐요. 그때부터 남편이 ‘오버하지 마’란 말을 많이 해서 지금 제 성격은 좀 더 차분해진 것 같네요.(웃음) 남편의 실제 성격요? 진지해요. 진지한 사람이 코미디를 하고 있으니 더 웃긴거죠.”

정씨는 무대에 오르기 전 초 긴장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특히 막이 오르기 10분전이 최고 긴장되는 순간이에요. 내가 이걸 왜 하나.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겠다고 하고 있는 걸까. 단명하겠구나. 별 생각이 다 들어요.

그런데 ‘첫공’이 잘 끝났을 때 그 쾌감은 정말 뭐라 말 할 수가 없죠. 테크니컬 적인 음향, 조명적인 것을 제외하고 첫 공연에서 연기자들끼리의 호흡이 최고로 나오는 것 같아요. 초 긴장한 배우들의 모든 촉이 다 거기에 맞추어져 있는 거잖아요. 커튼콜이 끝나고 내려온 뒤 ‘내가 이래서 무대를 떠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불안감, 무서움이 다 보상 받는거잖아요. 5년 단축된 수명이 다시 5년 연장된 느낌이랄까요. 이 맛이 이런 생활을 반복하게 하는 것 같아요. ”

연극 작업에서 에너지를 얻는 배우 정재은은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따라간다.”고 했다. “전 과정을 중요하시는 사람이에요. 과정이 좋았는데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겠죠. 그건 우리 뜻이 아닌거죠. 다만 과정도 좋지 않았는데, 결과까지 안 좋으면 화가 나고 허무해져요. 그 동안 제가 했던 작업들을 반추해보니 과정이 좋았던 작업들은 대부분 잘 됐던 것 같아요. 배우 간 팀워크 뿐 아니라 배우와 연출간의 팀워크도 좋아야 하는 거죠. 이번 작품의 과정 역시 좋네요. 황 연출이 작품도 참 잘 썼구요.(웃음)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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