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밀과 모밀의 차이를 알아내다 보니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짧지 않은 세월을 문자로 먹고 살았다. 내 탓인지 남 탓인지, 헷갈리는 부분은 계속 아리까리하다. 다행이라면 아리송한 부분이 무엇인지는 뚜렷이 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메밀과 모밀 중 어느 쪽이 맞는지도 알쏭달쏭했다.

우문에 현답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드문 일이고, 물음이 현명할수록 제대로 궁리하도록 하고 바른 답을 찾게끔 할 공산이 커진다. 메밀과 모밀 중 어떤 게 맞을까? 이 질문 대신 밀과 비교할 때 메밀이나 모밀이라고 불리는 곡식은 무엇이 다른가 하고 물어봐야 한다.

쌀은 찹쌀과 멥쌀로 나뉘고, 벼는 찰벼와 메벼가 있다. 끈기가 있으면 ‘차지다’고 말하고 끈기가 덜하면 ‘메지다’고 한다. 밀은 끈기가 있는 곡식이다. 그럼 끈기 없는 밀은 무엇이라고 불릴까?

메밀은 밀에 비해 점성이 떨어진다. 밀은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이 있어서 반죽이 잘 되는 반면 메밀은 글루텐이 적어 찰기가 없기 때문에 가루가 잘 엉기지 않는다. 메밀 가루에 밀가루를 섞으면 반죽이 쉬워진다.

메밀은 한자로는 교(蕎)라고 쓴다. 일본에서는 교맥(蕎麥)이라고 표기하고 소바(そば)로 읽는다. 밀과 메밀의 관계가 한자에서는 소맥(小麥)과 교맥(蕎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밀이 소맥이면 대맥(大麥)은 보리다.

밀가루는 글루텐의 함량에 따라 강력분(强力粉), 중력분(中力粉), 박력분(薄力粉)으로 나뉘어 제조ㆍ판매된다. 글루텐 함량이 많을수록 점도가 높아지니, 이 순서는 차진 정도의 순서다. 빵을 더 쫄깃하게 만들려면 강력분을 쓰면 된다. 케이크는 박력분으로 굽는다.

어떤 글에서 빵과 떡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얘기를 읽었다. 내가 지닌 사전을 찾아보면 빵은 ‘곡식 가루를 반죽하여 불에 익힌 음식’, 떡은 ‘곡식 가루를 반죽하여 쪄서 만든 음식’이라고 풀이된다. 이런 설명이라면 그 사람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빵과 떡의 차이는 글루텐 함량이 다른 데서 비롯된다. 가루 음식은 가루가 서로 엉겨붙게 해서 만든다. 빵은 밀가루 같이 점성이 있는 재료로 먼저 반죽을 한 다음 익힌다. 떡은 쌀가루를 원료로 하는데, 쌀가루는 반죽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떡은 증기로 가열해 쪄낸다.

베트남 쌀국수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다. 쌀국수는 그럼 쌀가루를 찐 뒤 압출(壓出)해서 뽑아내는 걸까? 누르면 면발이 나오긴 하겠지만 뚝뚝 끊길 텐데? 쌀국수는 실제로는 이름은 쌀국수이지만 쌀은 많아야 50%고, 나머지는 밀가루를 넣어 반죽해 뽑아낸다.

떡을 찌면 차지게 되는 건 쌀가루 속의 녹말 성분이 열을 받아 풀처럼 끈끈해지기 때문이다. 녹말이 풀처럼 되는 과정을 호화(糊化)라고 한다. 호(糊)는 풀이나 죽을 뜻한다. 입에 풀칠하는 방책을 호구지책(糊口之策)이라고 할 때의 호(糊)다.

찹쌀은 멥쌀보다 차지다. 그럼 찹쌀 가루로는 반죽을 해 빵을 구울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찹쌀이 멥쌀보다 차진 것은 녹말을 이루는 포도당이 결합된 구조가 멥쌀보다 촘촘해서다. 녹말은 아밀로오스와 아밀로오스보다 짜임새가 촘촘한 아밀로팩틴으로 나뉘는데, 멥쌀의 녹말은 아필로팩틴과 아밀로오스가 80대 20 비율이고 찹쌀은 아밀로팩틴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밀은 소맥(小麥)이고 대맥(大麥)은 보리다. 콩은 대두(大豆)고, 소두(小豆)는 팥이다. 숙맥(菽麥)은 무엇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숙맥불변(菽麥不辨)을 줄인 말이다. 숙맥이라는 말은 알지만, 숙(菽)이 무엇인지는 헷갈린다. 숙(菽)은 콩이라고 한다.

나는 숙맥은 아니지만 숙맥이라는 단어에 관한 한 숙맥에 가까운 듯하다. 나는 또 메밀과 모밀 중 어느 쪽이 맞는지 분간하지 못하는 숙맥이었다. 메밀과 모밀을 헷갈려 하는 사람을 ‘메모’라고 부르면 어떨까.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자료]
최진, 신나는 요리 맛있는 과학, 산책주니어, 2010
이령미, 라면으로 요리한 과학, 갤리온, 2007

[사진=호아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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