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이 못지않은 브라우니의 인기, 과연 지속될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2012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를 많이 끈 대한민국의 스타는 당연히 <강남스타일>의 싸이일 것이다. 하지만 2012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핫한 스타는 <개그콘서트> ‘정여사’의 말없고 귀여운 시베리안허스키 브라우니가 아닐까 한다.

2012년 여름 시작한 <개그콘서트>의 ‘정여사’는 속물스럽고 뻔뻔한 부유층 여성을 패러디한 코너다. 이 코너에서 애완견 브라우니를 데리고 다니는 정여사는 황당한 이유를 대며 낡은 물건을 신제품으로 교환해 간다. 그리고 자신이 불리한 입장에 처하면 브라우니를 앞에 내세운다. “브라우니, 물어. 물어.” 하지만 브라우니는 아무도 물지 않는다. 그저 특유의 귀여운 얼굴로 웅크리고 앉아 있을 따름이다. 정여사가 브라우니에게 무언가를 지시해도 결코 따르지 않는다. 여전히 귀여운 포즈로 웅크리고 앉아 있을 따름이다.

정여사의 소품이었던 브라우니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오히려 코너보다 더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수많은 연예인을 비롯해 이외수 작가까지 브라우니와 함께 찍은 인증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브라우니의 이런 유명세는 고스란히 경제적 효과로 이어졌다. 뽀로로홀릭에서 겨우 벗어난 아이들 사이에서도 브라우니는 불티나게 인기를 끌어 추석에 대박을 친 것도 모자라 연이어 크리스마스 선물로도 2연타를 쳤다고 한다. 그 사이 또 몸값은 엄청 올라서 이젠 동물인형계의 엄친아로 자리한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산 브라우니에서 유독물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브라우니는 신문의 사회면에까지 오르내리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어 한국산 브라우니 감별법도 등장했다. 한국산 브라우니는 귀 밑에 살짝 하얀 눈썹이 보이고 눈망울도 까맣고 더 크다고 한다. 결국 진돗개나 풍산개도 아니건만 한국산 브라우니의 혈통인증서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면 실은 정여사와 정여사의 딸을 먹여 살리는 건 브라우니가 아닌지 의심이 갈 지경이다. 아, 가을쯤에는 <브라우니>라는 제목의 노래까지 발매되었다. 뮤직비디오에는 브라우니와 섹시한 춤을 추는 여성댄서가 함께 등장한다. 그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 대뇌피질이 오글오글해지면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거기에 더해 최근에는 브라우니팡 카카오톡 게임이 출시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화제를 일으킨 스타가 있었나? 당연히 2012년 대한민국의 최고스타는 브라우니다. 게다가 브라우니는 톱스타에게 언제나 따라다니는 어려웠던 시절의 고생담 역시 지니고 있다. <정여사>에 등장하기 전까지 브라우니는 6개월여를 KBS 소품실의 어두운 구석에서 외로움을 침묵으로 담담히 씹어가며 버티고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누구나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브라우니에 열광하는 걸까? 브라우니가 말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여심의 마음을 휘어잡을 만큼 멋진 분위기의 꽃미남도 아니다. 고작해야 브라우니의 털은 화학섬유고 눈은 플라스틱이며 그 안에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대신 솜이 가득 차 있을 따름이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필자 역시 언젠가부터 뜬금없이 이런 농담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브라우니, 물어!”

브라우니 현상을 보고 떠오른 건 미국 만화 <피너츠>다. 이 만화에서 찰리 브라운의 애완견 스누피는 주인에게 별반 관심이 없다. 오히려 스누피에게 하소연하고 관심을 표하는 이들은 이 만화 속의 꼬마들이다. 스누피의 주인공 찰리 브라운을 비롯해 만화 속의 아이들은 모두들 정서적으로 결핍되어 있고, 불안하고, 외로워하지만, 자신들의 인생에 대해 애늙은이처럼 냉소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한탄을 사람들에게 아무 관심 없는 애완견 스누피에게 털어놓는다. 대답은 기대하지 않지만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듯이.



어쩌면 2012년 그리고 2013년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은 모두 피너츠 속의 어린아이들과 비슷한지 모른다. 어딘가 의지할 곳도 믿을 곳도 없다. 악착같이 달려도 나아질 거란 믿음을 가지기조차 팍팍하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절벽 같은 현실을 매일 마주하며 살기엔 더더욱 벅차다. 그럴 때에 브라우니가 필요하다. 달콤한 초콜릿 덩어리 브라우니처럼 몸과 마음에 활력을 줄 대상이. 지저분한 집안을 몰래 청소해주는 영국 신화 속 요정 브라우니처럼 답답한 마음을 잠시나마 청소해줄 대상이. 그게 어쩌면 귀여운 시베리안허스키 인형 브라우니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브라우니의 인기는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미 브라우니는 이미지 소비를 너무 많이 해서 조금씩 식상해져 가는 중이긴 하다. 잠시 잠적했다가 컴백한다고 해서 다시 인기를 끌 만큼의 새로움 또한 갖추고 있지 못하다. 뭔가 변화를 준다고 핑크색 브라우니나 하늘색 브라우니가 나온다면 그건 안 하니만 못한 일일 것이다.

아마 2013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어린이들의 외면을 받는다면 브라우니의 인기도 끝날 것 같다. 하지만 브라우니의 귀여움과 말없는 침묵은 아직까지는 사랑스럽다. 브라우니 인형을 살 의향은 없지만, 만일 누군가 브라우니를 숭배하는 사이비종교를 만든다면 한번쯤 찾아가서 “브라우니, 물어”를 외치고 큰절을 올릴 마음 정도는 있을 만큼.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정태호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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