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제가 했었어요. 자꾸 문자로 고맙다, 고맙다 하니까. 어차피 나는 너네 잘 되라고 그 프로그램을 만든 건 아닌 거고. 나도 잘 살자고, 오천 원 더 벌자고 로또를 판 거고 너희들은 운이 좋아서 로또가 맞은 거고. 서로서로 거래로 끝난 거니까 나에게 그렇게까지 고마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너무 잘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기면 ‘이 자식들 봐라?’ 이렇게 될 거 아니에요.”

-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서 신원호 PD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지상파 3사가 저마다 한 해를 결산하는 각종 행사로 어수선했던 지난 31일 밤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 오른 2012년 마지막 손님은 여름 내 우리를 울고 웃게 했던 드라마 tvN <응답하라 1997>의 주역 서인국과 정은지, 그리고 연출을 맡은 신원호 PD였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우리가 <응답하라 1997>을 되짚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제대로 한 해를 마무리 지었다 할 수 있으리오. <현장토크쇼 택시>의 센스 있는 선택에 아낌없는 박수를!

하지만 사실 주인공 두 사람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저 ‘아, 반갑다!’ 정도였다. 그런데 신원호 PD의 모습이 보이자 뭐랄까. 느닷없이 가슴이 울컥해지는 게 아닌가. 언제 다시 이토록 감성을 자극하는, 연출부터 작가, 배우, 삼박자가 딱딱 맞는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과연 내 생전에 가능하긴 할까? 1월부터 같은 제작진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작품을 구상한다고 하니 기대해보기로 하자.

어쨌거나 지상파 방송에서는 앞다퉈가며 한 명 한 명 수상자가 가려질 즈음, 이들은 소박하니 택시 안에서 이런저런 후일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잊히지 않을 정겨운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특히나 내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시원(정은지)이 어머니(이일화). 피라미드 모양으로 마냥 켜켜 쌓아 올리던 김밥이며 부침개, 딸내미가 부침개 찍어 먹을 간장 달라니까 간장을 컵으로 퍼주던 장면, 또 고스톱 치다가 열 받아서 남편(성동일) 머리를 냅다 때리던 장면, 아파서 입원한 남편이 드라마를 보다가 맥 풀려하자 공중전화로 쪼르르 달려가 작가에게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다 해가며 협박하던 장면. 뭐 이루 다 언급하기도 어려울 정도가 아닌가.



또 잠깐 등장했던, 시원이 할아버님 제사 적마다 카스텔라를 사들고 오시던 작은 할아버님도 기억난다. 그분이 들려주신 형님 얘기는 우리로 하여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 않았나. 그런가하면 고래 잡은 윤제(서인국)가 뒤뚱거리며 걸을 때 한 마디씩 거들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음성도 그립고, 하다못해 시원이와 늘 툭탁이던 한반 친구 은도끼(정경미)조차 그리워진다.

그러나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인지라 2012년 최고의 드라마로 꼽는다 해도 손색이 없을 이 드라마를 위해 그 흔한 트로피 하나 준비하지 못했으니 이리 서운할 데가 있나. 나쁘고 하찮은 것에서도 다 배우는 게 있기 마련이라더니 올 한 해 몇몇 막장 드라마를 통해 새삼 깨달은 건 좋은 드라마는 모두가 연기를 잘 하게 만드는 반면 총체적 난국의 드라마는 멀쩡히 잘 하던 배우들까지 어색한 연기를 펼치게 만든다는 것. 각 방송사 연기대상에서 과분한 상을 받고도 민망해하기는커녕 당당히 받아들던 이들이 어디 한 둘이어야 말이지. 연기는 형편 무인지경이었어도 시청률만 잘 나오면 장땡인 이 죽일 놈의 세상, 그저 서글프달 밖에.에고, 지난 시상식에서 쌓인 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바람에 말이 옆으로 새버리고 말았다.

신원호 PD를 위시한 제작진을 평생의 은인으로 여겨야 옳을 서인국과 정은지에게 ‘나 또한 나 잘 되자고 한 일이니 굳이 그럴 필요 없다’며 감사의 인사를 극구 사양하던 그. 워낙 누구 하나 잘 되고 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숟가락을 얹으려 들거나, 생색이며 공치사가 늘어지는 요즘이라서 그럴까? 그의 말이 섬광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나 서인국 씨, 정은지 씨. 아무리 감독님이 사양을 한다고 해도 제작진은 물론 그대들에게 성원을 보내준 수많은 이들을 잊어서는 아니, 아니, 아니 되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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