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 인도스타일 뮤비가 K팝에 주는 교훈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나는 보통 케이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곳은 내가 무언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내 영역과 관련되어 할 이야기가 조금 생겼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소녀시대의 이미지와 사운드의 소비자다. 단지 적극적이지는 않다. 텔레비전에 공연이 나오면 보고 움짤이나 광고를 소비하지만, 새 앨범이 나오자마자 음원이나 CD를 사거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뮤직 비디오를 즉시 챙겨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나는 이 사람들의 신곡인 ‘I Got a Boy’에 대해 발표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특별한 의견이 없었다. 설날 스페셜을 보긴 했지만 랩이 오글오글하고 멜로디가 잘 귀에 안 들어오는 노래라고 생각했고 그냥 넘겼다.

그러다가 어제 유튜브를 뒤지다가 재미있는 클립을 하나 찾았다. 이 비디오는 ‘I Got a Boy’의 가사가 영어 사용자의 귀에 어떻게 들릴 수 있는지를 자막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 비디오에 따르면 “물어볼 뻔 했다니까? 너 바꾼 화장품이 뭔지”는 “Motor boat brunette don't eat canoe popcorn. Want some cream on Cheek?”처럼 들린다. (이게 오글거리는 한국어 가사보다 더 멋지지 않는가?) 하여간 내가 어떤 형태로건 ‘I Got a Boy’의 뮤직 비디오를 접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엉터리 영어 가사에 맞추어 흥얼거리며 뮤직 비디오를 보고 있자니, 강한 기시감이 몰려온다. 뭐야, 이 친숙한 마살라 향기는?

그렇다. 나는 지금 소녀시대가 나오는 볼리우드 뮤지컬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화들짝 정신이 든 나는 공식 뮤직 비디오를 체크해봤다. 이건 내 착각이 아니었다. ‘I Got a Boy’는 어쩌다 보니 마살라 분위기가 나는 곡이 아니었다. 안무, 멜로디, 가사, 뮤직 비디오 아이디어 전체가 의도적인 마살라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태연과 써니가 “아, 내 왕자님! 언제 이 몸을 구하러 와 주실 텐가요? 하얀 꿈처럼 날 품에 안아 올려 날아가 주시겠죠?”라고 노래 부르는 부분을 보라. 이게 케이팝 가사처럼 들리는가? 멜로디는 어떤가? 심지어 힌디 노래를 부를 때처럼 살짝 째진 목소리를 내는 멤버들은 어떤가? 안무는 어떤가? 허리와 손, 팔을 놀리는 자세, 빠르고 반복적인 리듬은 딱 인도 스타일이다. 그렇게 보니 처음에는 정신없게 들리던 노래의 구조도 이제 그럴싸하게 말이 된다.



다른 부지런한 사람들은 일주일 전에 눈치 챘을 발견에 뒤늦게 키득거리는 동안, 이 노래에 대한 나의 평가는 조금씩 올라갔다. 케이팝 아이돌들이 영어권 힙스터 흉내를 내면서 마살라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는 걸 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노래의 질을 떠나 이것은 엄청나게 신기한 구경거리다.

나에게 이것이 더 재미있었던 것은, 케이팝과 마살라 영화가 나에게 거의 같은 부류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두 장르 모두 의도적인 키치와 진지함의 경계를 구별하기 힘들다.

이건 내가 마살라 영화의 리뷰를 잘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편의 마살라 영화가 나온다. 인도 평론가들은 첫 번째 영화를 격찬하고, 두 번째 영화를 고루한 클리셰라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나에게 두 영화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게 신나고 유치하고 재미있게 보인다. 이들의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샤룩 칸이 복근을 드러내면 클리셰이고, 리틱 로샨이 골반을 흔들면 도전적인가? 내가 알 턱이 있나.

케이팝의 경우도 마찬가지. 나에겐 각자의 차이가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세계의 차이점이 그렇게 크지 않으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그 유사점이 더 잘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긴 나는 최근 동방신기 무대 공연도 은근슬쩍 볼리우드 스타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조금 낙천적이 된 나는 잠시 이를 문화적 교류의 가능성으로 해석해 보려 했다. 최근 들어 인도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조금 대중적이 되었다. 가끔 국내 개봉도 되고 케이블에서도 나온다. 그렇다면 그 영향일까?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최근 들어 인도 대중문화의 세계적인 인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어느 쪽이건 이 사람들은 힌디 음악을 모방해도 쿨 함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무언가로 보았던 게 분명하다. 그게 성공했는가는 다른 이야기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다보니, 내가 늘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까 케이팝 문화 속에서 우리가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어떤 연대를 맺을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흘러가게 된다. ‘I Got a Boy’의 뮤직 비디오는 의식적인 연대 제스처와 아무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이 어떤 형태로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이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할리우드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우리 상품만을 팔 수는 없다. 진정한 문화 교류에서는 대화가 필수이다.

그러고 보니 저번 명절 스페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 프로그램에서 제시카는 니나라는 가수의 ‘Someday’라는 노래를 불렀다. 나에겐 처음 듣는 곡이었고 처음 듣는 가수였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니나는 필리핀 가수였고, 그 노래는 필리핀 사람들이 OPM, 그러니까, Original Pilipino Music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장르에 속해있었다. 그리고 이 간단한 제스처에 대한 필리핀 팬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누가 이 곡을 골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 있는 대화였다. 그 대화는 아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쪽에서 조금만 진지하게 노력을 한다면.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I Got a Boy’ 뮤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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