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더원의 고향, 스페이스A 1집에 대해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지난 연말 나가수 가왕전에서 가왕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놀랍게도 더원이었다. 노래 잘 하는 고수들만 모인 그 자리에서 더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저 어깨 넓고 팔뚝 굵고 날카로운 인상의 아저씨는 누구?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감미로운 미성이면서도 성량 또한 풍부해서 많은 관객들을 쉽게 자기 팬으로 끌어 모았다. 결국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지 한 달 만에 9월의 가수로 뽑히면서 화려하게 <나는 가수다>를 떠났다. 그리고 연말에 열린 가왕전에서도 수많은 스타 가수들을 제치고 가왕을 차지했다.

한편 더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동시에 이미 잊혔던 댄스그룹 하나가 종종 거론되었는데 바로 스페이스A였다. 발라드 가수 더원이 실은 1998년 상반기에 발매된 스페이스A 1집의 객원보컬로 참여했던 것.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스페이스A 1집의 히트곡인 <주홍글씨>에 출연했던 무대의 동영상을 보면 후반부에 노래하는 더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선글라스를 끼고 번질번질한 에나멜 재질의 롱코트를 입은 그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 보이지만 말이다.

굳이 더원이 아니라도 스페이스A 1집은 그저 그런 댄스음반이라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구석구석 살펴볼만한 재미가 있다. 이 앨범은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나이트클럽용 음반이다. 하지만 당시 나왔던 수많은 댄스음반들에 비해 스페이스A의 노래들은 보컬의 힘 있는 목소리를 듣기도 좋고, 다양한 시도를 한 댄스곡들의 맛을 즐기기도 좋고, 틀어놓으면 순식간에 방안이 나이트클럽화 되어 춤추기도 좋다.

히트곡 <주홍글씨>는 시원시원한 보컬과 귀에 꽂히는 훅과 꽉 찬 사운드로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나이트클럽용 가요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그룹의 노래가 인기를 끌게 된 것도 방송이나 팬들의 사랑이 아닌 강남 및 서울 곳곳의 나이트클럽의 힘이었다 하니 말이다.

<주홍글씨>가 밤이면 밤마다 나이트클럽에서 울려 퍼지는 바람에 원래 이들 1집의 타이틀곡이었던 <입술>은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주홍글씨>가 전형적이라면 <입술>은 변칙적인 댄스곡이다. <입술>은 요란한 랩과 나른하게 깔리는 여성보컬과 매력적인 남성보컬이 어우러진 특이한 곡이었다.

<입술>의 뮤직비디오 역시 재미있는데 90년대 후반의 유행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 분들은 이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면 된다. 당시 반짝 빛났던 독특한 매력의 배우 이지은이 출연한 이 뮤직비디오에는 키스 하려는 두 남녀를 배경으로 다양한 모습이 펼쳐진다. 거기에 멜빵바지도 등장하고, 물이 허옇게 빠진 게스청바지가 떠오르는 청바지도 출연하고, 입술선은 강조하고 죽은 갈색 빛깔 립스틱 바르던 당시 화장법도 나오고, 폭탄 같은 야자수 헤어도 등장하고, 뒷주머니에서 꺼내는 지포라이터도 등장하고, 단발보다 조금 긴 남자주인공의 헤어스타일도 등장하고, 민소매 티 입은 남자도 나오고, 맥도날드 피에로도 등장한다. 과하게 ‘뽀사시’해 보이는 우윳빛 냄새나는 화면도 딱 그때 스타일이다. 그리고 이 노래는 <주홍글씨>와 달리 남성보컬 그러니까 더원 중심으로 노래가 흘러간다. 이 뮤직비디오의 후반부에 보면 지금보다 슬림하고 단발 비슷하게 머리 기르고 흰 양복 입은 더원을 볼 수 있다.



<주홍글씨>와 <입술> 말고도 <돈쥬앙>이라는 곡도 들어볼만하다. 1년 후 99년에 한국가요계에 몰아닥칠 테크노 바람에 어울리는 곡이다. 히트곡 <주홍글씨>를 거의 다 이끌어가는 여성보컬 김현정도 눈여겨 볼만하다. 물론 이 김현정은 <그녀와의 이별>을 부른 김현정도 빅마마킹 BMK 김현정도 아닌 스페이스A의 김현정이다. 하지만 김현정처럼 늘씬하고 BMK 못지않게 울림 있는 목소리를 지닌 여가수였다.

그녀는 당시 유행하던 혼성그룹에서 가장 독보적인 보컬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스페이스A 1집과 2집 이후로 그녀는 팀에서 사라졌고 솔로로 데뷔할 법한 능력이었음에도 가요계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스페이스A 2집에서 메인보컬로 참여한 <성숙>이나 <섹시한 남자>는 아직까지 노래방에서 많은 이들이 부르고 있다.

어쨌든 10대 팬보다는 불특정다수의 성인 팬들을 노렸던 이 댄스그룹은 절대 귀여운 척은 하지 않는 그룹이었다. <주홍글씨>나 <입술>, 2집의 <섹시한 남자>에서 볼 수 있듯 다소 위험하고 어찌 보면 살짝 느끼한 가사 역시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나이트클럽의, 나이트클럽에 의한, 나이트클럽을 위한 댄스그룹이 아마 스페이스A가 아니었을까 한다. 아마 그 점이 당시 인기 있던 혼성그룹인 샵이나 코요테와는 차별화된 점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자료조사를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은 스페이스A 1집 당시 더원과 김현정, 랩퍼 제이슨이 모두 객원가수였다는 것. 015B와 015B 앨범의 객원가수 관계와 비슷하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스페이스A의 시작은 사실 나이트클럽계의 015B였다는 이야기인가? 우리가 믿고 있던 스페이스A가 실은 진짜 스페이스A가 아니란 말인가?

<주홍글씨> 뮤직비디오의 촌스러운 복제인간 스토리가 실은 스페이스A에 대해 은유하는 바가 있다는 말인가? 어쨌든 파고들면 들수록 스페이스A 1집은 재미난 댄스앨범이라는 사실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 안에는 모두 모여 도리도리 춤 추는 나이트클럽 같았던 9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이 남아 있다. 밤의 축제는 화려했으나 그 후에 우리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아무 생각 없이 도리도리 춤을 추기에는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이 지쳤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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