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조건>, 진정으로 칭찬해주고픈 이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지난 해 연말 4회에 걸쳐 방송되며 호평을 받은 파일럿 프로그램 KBS2 <인간의 조건>이 토요일 밤 11시 15분, 정규 편성으로 돌아왔다. ‘그래, 이거야! 이런 걸 만들어야지!’ 했었는데 바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어찌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갖가지 ‘조건’들. 그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간다운 삶의 진짜 조건은 무엇인지 심사숙고해보게 만드는 한 주일간의 체험.

휴대전화, 텔레비전, 인터넷 없이 생활하기를 통한 고민과 해답은 비단 출연자들의 몫만은 아니었다. 보는 이들 또한 스스로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들었으니까. 나 역시 휴대전화의 대중화 이후 아들 친구들의 연락처는 물론 이름조차 거의 알지 못하게 된 터라 공감하고 깊이 반성했었다. 특히나 TV와 인터넷이 없이 지내다 보니 집에 돌아오는 식구들을 뛸 듯이 반색을 하며 맞이하는 광경이라니. 개가 사람을 왜 반기는지, 왜 그렇게 꼬리를 흔드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양상국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었다.

하나를 잃는 대신 또 다른 하나를 얻게 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던 그들. 그랬던 그들에게 이번에 새로이 주어진 미션은 ‘쓰레기 없이 살기’다. 미션의 실체를 알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김준호, 박성호, 양상국, 허경환, 김준현, 정태호, 이 여섯 명의 개그맨들은 자신들이 몇 시간 동안 만든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보고 당황해 한다.

한 개의 종이컵이 썩기까지 무려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는데 별 생각 없이 사용하고 버린 수많은 일회용품들, 죄책감 없이 남겼던 음식들. 각자 자신이 만든 쓰레기를 한 주일 내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규칙이기에 그들은 즉시 쓰레기 줄이기에 돌입한다.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텀블러를 사는가 하면 개인 수저와 음식을 담을 용기도 구입한다. 그러면서 차차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낭비를 해왔는지, 얼마나 공해에 일조해왔는지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나도 매주 통감했던 부분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화, 수요일 이틀간 분리수거가 이루어지는데 한 주 동안 모아놓은 재활용품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지 뭔가. 빈병이며 빈 박스, 다양한 종류의 캔, 플라스틱, 종이뭉치들이 두 손으로 다 들지 못할 정도다. 뭘 이렇게 많이도 먹고 썼을까. 대체 내가 이 세상을 향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재활용품을 내놓을 적마다 가슴이 뜨끔, 뜨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했지만 솔직히 그때뿐이지 별 실천에 나서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인간의 조건>을 보고나니 당장 휴지 한 장을 뽑아 쓰려 하다가도 망설이게 된다. 수건이나 걸레를 찾아 들게 되고 물이나 음료수를 따를 시에도 적당량을 가늠해서 따르게 되고. 그리고 가방마다 죄다 장바구니를 접어 넣어두었는가 하면 차에는 여차하면 사용할 용기도 비치해두었다. 텀블러 사용은 당연지사,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가져다 준 변화,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휴대전화 없는 생활을 시작할 때 숙소에 전화를 놓자는 획기적인 제안을 했던 ‘양엄마’ 양상국은 이번 미션에서도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지렁이에게 잔반처리를 맡기자는 것. 파일럿 당시에도 직접 차를 몰고 전화국에 다녀오더니 이번에도 김준현과 함께 지렁이를 사러 나섰는데 낚시가게 주인아주머니의 지렁이 예찬론에 한참 고무된 양상국과 김준현. 나 역시 정말 지렁이가 그 많은 음식물을 해결해줄지, 그것이 궁금하다. 다음 주가 몹시 기대가 된다. <인간의 조건>, 진정으로 칭찬해주고픈 좋은 프로그램이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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