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탄3>·<야왕>, 노골적 간접광고 불편하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그런 시절이 존재했다. 드라마에서 두 친구가 소주를 마신다고 치자. 하지만 술병의 상표는 손으로 능숙하게 가려야 하는 것이 배우의 능력 중 하나였다. 혹은 아예 술병에 흰 종이를 덧붙여 상표를 가리기도 했다. 그 흰 종이가 너무 허전하게 여겨졌는지 가끔은 매직으로 ‘소주’라고 쓰는 경우도 있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그게 참 코미디 같다 여겨졌다. 호부호형을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왜 브랜드명을 브랜드명으로 솔직하게 보여주지를 못하나? 하긴 시절 자체가 모든 걸 가리기에 바빴던 시절이기는 했다.

반면 2013년 현재는 또 모든 걸 드러내기에 급급한 때다. 간접광고가 허용된 뒤로 시청자들은 수없이 많은 PPL에 노출된 지 오래다. 수많은 간접광고 상품들이 방송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 그건 별반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에서 PPL은 곁다리가 아니라 당당히 주인공 자리를 꿰찬 지 오래다. 모름지기 PPL 공해의 시대인 셈이다.

그 선두에 있는 방송으로 MBC의 <위대한 탄생3>가 있다. 이 프로그램의 스타는 노래 잘 하는 멘티들이 아니라 수없이 노출되는 PPL로 변한 지 오래다. <위대한 탄생3>의 멘토서바이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라이벌 경연이 아니라 MC유진이 멘티들을 위해 한 턱 쏘겠다며 피자 여러 판을 들고 오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유진은 무언가 어색한 말투로 멘티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제가 피자 쏘는 거예요.” 하지만 하느님만 아는 게 아니라 유진도 알고 멘티들도 알고 시청자도 안다. 멘티들이 무엇을 위해 피자를 먹어야 하는가를.

수많은 프로그램의 PPL 중에서도 <위대한 탄생3>의 PPL이 조금 더 거부감이 드는 건 멘티들이 소도구로 이용된다는 인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슈퍼스타K>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간접광고 상품들을 참가자들의 일상 속에 부드럽게 녹아들게 한 편이었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에서는 참가자들이 간접광고 상품을 위해 너무 애를 써야 한다. <위대한 탄생3>의 멘티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노래를 부르려 이곳에 왔지 PPL 브랜드의 옷을 쇼핑하며 “우리 노래와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니?”라는 국어책 대사를 읽기 위해 참여한 것은 아닐 터다.

하지만 이 멘토서바이벌에서는 종종 멘티들이 PPL 상품을 위해 상황극을 연출하고 어색한 연기를 펼쳐야 할 때가 여러 번 반복된다. 특히 PPL 브랜드의 스마트폰과 슬레이트PC가 등장할 때면 더더욱 그렇다. 아직 프로 방송인이 아닌 멘티들이 어떻게든 그 상황극을 자연스럽게 끌어가려고 연기 아닌 연기를 하며 노력하는 걸 보면 웃음이 터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도대체 <위대한 탄생3>의 주인공은 참가자들일까, 아니면 스마트폰과 슬레이트PC일까?



<위대한 탄생3>만큼은 아니지만 드라마의 간접광고 역시 날이 갈수록 과해지고 있는 건 틀림없다. 드라마 PPL의 문제는 사실 너무 많이 등장한다는 것에만 있지는 않다. 그 장면 장면의 연결이 자연스럽다면 그래도 편안하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PPL 상품을 광고하기 위해 드라마를 산으로 끌고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데 문제가 있다.

<더킹>이 아닌 ‘던킨’이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던 드라마 <더킹>과 죽 한 그릇 못 먹을 만큼 몸이 아픈 상황에서 병실 침대에서 치킨을 뜯던 여주인공의 명장면을 보여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뜬금없이 “어머님, 염색할래요?”라는 장면이 나왔던 <내 사랑 나비부인> 등등.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든 드라마의 소도구들이 PPL로 보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아마 드라마 <야왕>이 아닐까 싶다. <야왕>에서는 자꾸만 지렁이 모양 젤리 과자를 자주 비춰준다. 여주인공의 딸은 틈만 나면 지렁이 과자를 먹고 남자주인공의 입에도 넣어준다. 여주인공이 지렁이 젤리과자를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한 또 한 명의 남자주인공은 어마어마한 양의 지렁이 젤리과자를 선물한다.

그런데 지렁이 젤리과자는 정말 간접광고 상품인 걸까, 아니면 작가의 설정인 걸까? 설마 저 하찮은 젤리과자까지도 PPL로 쓰이는 걸까? 그냥 과거 같은 작가가 썼던 드라마 <토마토>의 요요 같은 소품 아닐까? 아니야, 하지만 시대가 이러하니 정말 PPL일 수도 있겠는걸. 나중에는 드라마 속 사건에 집중되기보다 지렁이 젤리과자의 PPL 유무에 대해서만 궁금해졌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꿈틀거리다 보니 심지어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어느 날 깨어나 보니 벌레가 된 카프카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처럼 간접광고를 쪽쪽 빨아들인 방송 프로그램은 이미 거대하고 알록달록하고 우스꽝스러운 메가왕꿈틀이 젤리처럼 변해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는.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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