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문근영의 ‘불안’한 매력을 끌어낼 수 있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청담동 앨리스>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이 드라마의 청담동은 이상한 나라라기보다 지극히 현실적인 동네에 가깝다. 속물스럽고, 야박하며, 서로 속고 속이는 동네. 약간의 우아함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스러운 이웃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오히려 세경(문근영)의 부모가 보여주는 따뜻하고 인간미 있는 모습이 이제는 동화 속의 세계와 가깝게 여겨진다.

고로 세경은 어린 시절 자랐던 순수한 동화 속 세계에서 현실적이고 냉정하고 상스러운 세계로 진입하는 여주인공이다. 그런 세경의 캐릭터를 여배우가 만들어 나가기란 사실 쉽지 않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순수해야 한다. 발 하나만 잘못 디디면 욕먹기 쉬운 캐릭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매번 커졌다 줄어드는 자기 몸이 감당이 안 되지만, <청담동 앨리스>인 세경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워 힘겨워하는 인물이다.

내 진짜 감정은 뭐지? 나는 순수하고 건강한 사람이라 자부했는데 내가 왜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속물이 되어야만 하나?

배우 문근영은 세경을 어떻게든 설득력 있게 보이도록 연기하느라 애썼다.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문근영의 연기는 성공인가? 절반은 성공이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 많은 이들이 문근영하면 국민여동생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아니다. 나에게 남아 있는 문근영이란 배우는 ‘불안’한 눈빛의 배우다. 검고 큰 눈망울은 때론 사랑스럽지만 종종 촛불처럼 흔들리고 가끔은 주변의 어둠을 모두 모으고 있는 것만 같다.

문근영은 어린 나이에 대사 없이도 사람들의 호흡을 잠시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배우다. <가을동화>의 은서 아역 때도 그렇고 비운의 황후인 <명성황후>의 아역일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불안함이 극도로 드러난 것은 영화 <장화, 홍련>에서일 것이다. 친모의 자살을 목격한 뒤 장롱에 깔려 압사당한 불쌍한 소녀 수연. 수연은 여주인공 수미의 곁에 무의식의 슬픔으로 존재하며 유령처럼 배회한다. 관객들은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말하지 않지만 많은 것을 말하는 수연의 눈동자에 붙들린다.



이후 문근영이 영리한 배우임을 증명한 것은 <어린 신부>나 <댄서의 순정> 같은 영화보다 오히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다. 이 드라마에서 문근영은 뛰어난 재능 때문에 도리어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도화서의 화원 신윤복을 맡는다. 상투를 틀고 소년인지 소녀인지 알 수 없는 외모의 그녀가 단순히 남장이 잘 어울렸기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 빛났던 것은 아니었다.

문근영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쓰여 다들 쉽게 갈 수 있는 남장여자란 캐릭터를 윤복의 삶에 맞게 재단했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윤복은 아직 소년처럼 해맑지만 자신의 인생을 속인 자이기에 언제나 불안한 눈빛을 지닌 채 살아가야 한다. <바람의 화원>에서 문근영은 뻔하고 귀여운 남장여자가 아닌 윤복이란 예술가의 자화상을 성실하게 그려냈다.

문제는 문근영이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멋진 역할을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이 맡았다는 것에 있다. 문근영의 눈빛은 여전히 많은 것을 말하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연기는 대개의 아역이 그러하듯 정극적이고 무거울 때가 많다. 그래서 자신의 나이에 맞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을 연기해야 할 때 문근영의 무거움이 오히려 캐릭터를 가라앉히는 경향이 있다.



<신데렐라 언니>에서는 이러한 과도기를 잘 극복한 것처럼 여겨졌다. 은조는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어른인 척 살아가는 아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은조는 아직 성장이 덜 된 어린아이인 걸 알 수 있다. 이 비틀린 어른아이를 문근영은 그 나이 때의 자기 자신 것처럼 잘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이후 맡았던 드라마인 <매리는 외박중>의 매리는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문근영 아닌 다른 누가 맡았다면 더 매력 있을 것 같은 인물이었다. 다시 <청담동 앨리스>로 돌아와 세경을 말하자면 이 인물은 문근영의 장점과 단점이 고스란히 충돌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장점은 세경의 진지한 고민을 잘 이해했다는 것, 단점은 그 고민을 너무 고지식한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것. 그 결과 문근영의 눈은 충분히 슬픔을 말하고 있지만 그녀의 대사나 표정은 답답해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른의 감정을 다 안다고 믿는 아이가 어른의 감정에 대해 너무 분석해서 연기한다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청담동 앨리스>는 막을 내렸고 문근영은 또 다른 인물로 우리들을 찾아올 것이다. 과연 국민여동생이었던 문근영은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될까? 지난 1999년에 데뷔해 연기 13년차를 맞은 스물다섯 문근영은 절실한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귀여운 여동생의 길은 이제 떠날 때가 되었고 가볍고 달달한 연애만하는 캐릭터로는 연기의 톤이 너무 무겁다. 하지만 문근영은 정적인 연기로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배우란 점만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만일 문근영이 특유의 불안한 분위기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캐릭터를 한번쯤 연기한다면 어떨까? 더불어 그녀의 모범생 연기 방식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풀어나간다면. 영화 <라 빠르망>이나 <미나 타넨바움>에서 광기어리고 불안하지만 무언가 우리를 애처롭게 만드는 예술가적 인물들을 연기했던 90년대의 프랑스 여배우 로만느 보링거처럼 말이다. 하지만 과연 문근영의 숨겨진 매력을 끌어내줄 영화나 드라마가 과연 지금 이 시점에서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문근영은 기대되는 배우이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SBS, <장화, 홍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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