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의>, 이요원 존재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서병기의 대중문화 프리즘] MBC 월화사극 <마의>의 여주인공 이요원의 존재감이 약하다고 한다. 총 50회중 37회까지 방송된 <마의>에서 의녀 강지녕으로 나오는 이요원은 분량으로나 캐릭터 성격으로나 여주인공이라 하기에는 분명 미약하다.

이요원은 지난주 방송된 36회와 37회에서 가장 많은 출연 분량을 기록했다. 죽은 줄 알았던 백광현(조승우)이 청나라에서 돌아와 악인 이명환(손창민)을 극적으로 제압하고 금의환향해 종7품 의관으로 제수받고 이요원을 재회하는 순간이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정인과의 만남이라 극적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은 그동안 여주인공의 존재감이 약했다는 점을 불식시키기 위함인지 두 사람에게 사극에서는 보기 힘든 파격적인 키스신까지 보여주게 했다.
 
이요원의 존재감이 약하다는 건 이요원 입장에서도 억울한 면이 있다. 일과 사랑 두 측면에서 한번 보자. 먼저 정인인 조승우 옆에 여자가 너무 많다. 숙휘공주(김소은), 서은서(조보아), 소가영(엄현경) 등 조승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너무 많다. 숙휘와 서은서는 조승우를 줄곧 ‘남자’로 바라보고 있고, 사암도인(주진모)의 제자인 소가영은 조승우를 직장동료로 여긴다. 소가영은 ‘엄친아’ 이성하(이상우)에게 첫 눈에 반했지만, 지금까지 거의 조승우 옆에 있어 ‘조승우의 여자’ 범주에 속한다.
 
조승우의 여자들이 많다보니 러브라인 정체 현상, 병목현상을 빚고 있다. 치고 빠지는 전략이 안 되니 멜로의 여주인공인 이요원이 별로 할 일이 없다. 이요원은 달을 보고 조승우를 그리워하거나, 가까이 와도 항상 스치고 지나가면서 엇갈리는, 그래서 답답한 행보를 거듭해왔다.
 
숙휘는 사실 백의생 시절 그를 남자로 잠깐 사랑하고 빠져주어야 했다. 현실적으로나, 드라마적으로나 숙휘와 백의생의 결합은 불가능하다. 왕족 여성이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보여주었다는 것, 지위 높은 공주가 아니라 첫사랑에 수줍어하는 그냥 한 여인의 모습이 느껴지게 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예전에 없던 ‘들이대는 공주’ 캐릭터가 잘 먹혀 무려 지난주까지 짝사랑 멜로 라인을 끌고 왔다. 숙휘는 37회에 와서야 백광현을 정인이 아닌 벗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마의>의 구성은 지극히 단순한데, 그 방식은 감질나게 해서 조승우를 계속 곤경에 빠트리지만 종국에는 조승우가 이기게 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백광현은 경쟁상대인 악인 이명환에게 계속 당하지만 마지막에 이명환을 실력과 재치로 제압하는 구도다. 시청자는 주인공 조승우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마치 프로레슬러인 김일 선수가 반칙을 쓰는 일본이나 미국 선수에게 피를 질질 흘리며 계속 고전하다가 마지막에 헤딩 등으로 제압하는 구성과 유사하다. 선한 조승우가 김일이라면, 악인 손창민은 안토니오 이노키 선수 같은 인물이다. 사랑과 캐릭터간의 대결 모두 그런 식이다.
 
캐릭터간의 대결은 대결종목을 달리 해 계속 소재를 바꿔나갈 수 있지만 사랑은 남녀 주인공을 바로 맺어지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조승우와 이요원은 계속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대신 조승우를 좋아하거나 도와주는 여자를 대거 투입시켰다. 숙휘나 조보아 등 중간 단계의 여자들이 빨리 자신의 일을 끝내야 이요원과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요원은 러브라인에서도 최근까지 할 일이 없었다.

선악 단순 구조는 보기에 편하고 재미있기는 하지만 오래 지속되면 뻔함이 읽혀져 지루해진다. 청나라에서나 조선에서도 같은 패턴이다. 국면 전환을 위해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새로운 매력적인 인물을 투입하면서 국면전환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선덕여왕>의 비담(김남진)이나 <이산>의 홍국영(한상진) 같은 강력한 욕망 추구형 인물이 투입되면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마의>는 조승우의 무기인 외과술의 문제점을 보완해줄 시술법인 치종지남을 지닌 남자의 등장이 예고됐지만 아직 이렇다할 국면 전환은 없다.
 
게다가 극중 이요원은 너무 욕망이 없다. 선악구도에 갇혀있는 이요원은 조신한 건지, 착한 건지, 맹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성격은 이제 사극에서도 매력이 한참 떨어진다. 숙휘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소가영도 아무에게나 반말을 하는 엉뚱하면서도 톡톡 튀는 4차원 매력을 지니고 있다. 둘은 ‘반전 있는’ 여자다.


 
하지만 이요원은 반전은커녕 수동적인 모습만 드러낸다. 질투도 없다. 그렇다만 ‘그리움의 아이콘’이라는 느낌이 강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되면 숙휘는 사랑에서 패배자이면서도 ‘위너’가 되고, 결국에는 조승우와 맺어지는 이요원이 ‘루저’가 될지도 모른다. 멜로도 결과 못지 않게 과정도 중요하다.
 
일에서도 이요원은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만들어가지 못한다. 이요원은 이명환이 사익을 추구하는 특별 시료청을 설치해 망쳐놓은 혜민서를 벗어나 가난한 서민들을 치료하는 치종원을 세웠다. 그리고는 이윤을 안남기고 약재를 유통시키는 사설 약계를 주도해 약과 의술로 돈을 벌고 권력을 잡으려는 이명환과 그와 연결된 의료조직에 맞서고 있다. 이는 무너진 민간의료를 살리는 길이고 스승인 고주만(이순재)이 세우려 했던 체제이기도 하다. 이요원은 조승우와 분업 체제로 업무를 수행해 문제를 한 단계씩 해결할 만큼 강력하지 못하다.
 
<마의>가 ‘조승우 멋있게 만들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은 ‘남자 캔디’ 조승우가 고생과 시련 끝에 승리하는 것을 쳐다보고만 있다. 기껏해야 약간 돕는 정도다. 조승우는 청나라에 가서 청나라 태의도 못하는 제왕절개술을 선보이고 황비의 부골저(뼈에 발생하는 화농성 질병)를 치료했으며, 조선으로 돌아와 전 우의정 오규태 대감의 당뇨로 인한 탈저(신체 일부가 썩는 병)를 다리 절단으로 완쾌시켰다. 이 엄청난 일을 해나가는 동안 이요원은 별로 하는 게 없다. 하지만 여주인공 이요원의 존재감이 약한 것은 이처럼 환경적으로 열악한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과 처지를 강인하게 어필하지 못한 이요원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corp.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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