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상우·이정진, 원톱은 버거운 뼈아픈 한계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톡 털어놓고 말하자면 권상우와 이정진은 원톱배우로서의 매력은 별로 없다. 두 배우가 혼자 이끌어가는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일은 상당히 지겨운 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건 두 배우 모두 미남이긴 하지만 스크린 속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몰입도가 강력한 배우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권상우의 단점인 혀 짧은 발음과 이정진의 단점인 뻣뻣한 대사처리를 관객들이 참을 수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두 배우에게는 모두 공통된 장점이 있다. 그건 연기력을 떠나 상대 여배우와의 그림이 그럴싸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여배우와 등장하든지 간에 그 그림이 화면 안에서 꽤 멋져 보인다. 상대배우와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건,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건, 아니면 허름한 방에서 술잔을 기울이건 간에 그건 하나의 장면이 된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이정진이란 오브제를 감독이 얼마나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보여준 예다. 이 영화에서 눈밑에 아이라인 그린 냉혈한 사채업자 강도를 맡은 이정진은 사실 대단한 호연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특유의 뻣뻣한 대사는 여전하고 감정을 끌어올려야 할 부분에서는 여전히 삐걱거린다. 하지만 넓은 어깨와 특유의 남성스러우면서도 오밀조밀한 얼굴, 못으로 철판을 살짝 긁는 것 같은 날카로운 음색은 강도의 분위기를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런 거친 역할이 여배우와 합을 이뤄내기가 쉽지는 않은데 <피에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피에타>에서 한 맺힌 모성애의 힘으로 강도의 죽음을 이끌어내는 강렬한 여주인공 미선을 맡은 조민수를 돋보이게 하는 데에 이정진은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 이 영화에서 강도는 미선을 위한, 혹은 김기덕 감독을 위한 멋진 장신구였고 이정진은 그 역할과 맞아떨어지는 비주얼덩어리였다.



하지만 장면과 분위기에서 승부가 갈리는 김기덕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철저히 대사의 힘과 배우의 연기의 조화로 이루어진 세계다. 최근 <백년의 유산>에서 남자주인공 이세윤 역을 맡은 이정진은 너무나 당황스러운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은 사실 누가 맡아도 조용히 묻어갈만한 역이다. 비록 애인을 사고로 잃기는 했지만 감정선이 그렇게 복잡한 인물은 아니다. 적당히 인정 많고, 적당히 고집스러우며, 적당히 틱틱거리는 인물이다.

세윤을 연기하기는 쉽겠지만 그만큼 배우가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매력 없는 캐릭터가 되기 쉽다. 하지만 이정진이 연기하는 세윤은 날고 기는 중년 연기자들의 호연을 볼 수 있는 <백년의 유산>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도드라진다. 세윤은 발음은 정확하지만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게 말한다. 이 드라마에서 세윤은 시청자들이 보낸 사연을 소개하는 라디오방송의 무미건조한 아나운서 같다. 그러니까 남자주인공이 대사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의 내용을 또박또박 읽고 있는 셈이다.

<피에타>에서 꽤 무게감 있는 역할을 맡았고 배우로서도 더 자리매김할 수 있는 시기에 이정진이 보여주는 연기는 무척 아쉽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자주인공 채원을 연기하는 유진과 함께 있을 때에 그림이 살기는 하지만.



한편 <야왕>에서의 권상우는 이정진과 다르다. 거의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여자주인공 주다해를 사랑한 죄로 온갖 굴욕을 다 겪는 호구 하류의 감정을 이만큼 잘 연기하기도 힘들겠지 싶다. 잘 울고, 잘 화내고, 정말 어리숙하다. 거기에 더해 가끔 대사를 잘 알아듣긴 힘들긴 하지만 다소 혀 짧은 발음 역시 하류라는 캐릭터와 어울리는 것만 같다.

사실 권상우는 미남 배우들 중에 상당히 독특한 지점에 위치한다. 얼굴은 잘생겼고 몸은 좋지만 미남 특유의 멋진 아우라가 없다. 그래서 권상우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잘생긴 동네 형이나 동네 오빠의 이미지를 연출하기 쉬운 배우다. 본인 역시 그런 점을 이용해서 제대로 연기하고 있는 인상이다.

다만 배우로서 그는 분명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건 발음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의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권상우가 아무리 감정 표현력이 좋은들 <피에타>의 강도 같은 역할에 캐스팅 될 수는 없을 터다. 더불어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짧은 대사 한마디로도 관객들을 사로잡는 스크린의 남자배우도 되기는 힘들다.

권상우에게는 발음을, 이정진에게는 감정을. 이것만 갖춰진다면 두 배우의 대표작이 생각은 미숙하고 피만 뜨거운 고등학생들이 몰려나오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멈추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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