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급 공무원> 즐기거나, 외면하거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수목드라마 <7급 공무원>은 지금 현재의 드라마들과 트렌드가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20여년 전 MBC에서 인기를 끌었던 청춘물 미니시리즈들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농구선수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던 <마지막 승부>라던가 파일럿과 항공사 직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파일럿>같은 미니시리즈들 말이다. 그 드라마들의 특징이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군을 다루면서 그 사이사이 연애담을 끼워 넣어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렸다는 점이다. 특히 <파일럿>의 경우에는 당시 드라마의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꽤 철저하게 파일럿이란 직업에 대한 고증에 신경 쓴 부분이 높게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후의 <7급 공무원>은 국정원 요원을 다루지만 그 세계를 밀착해서 들어가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2013년 대한민국에서 국정원 요원은 그리 선망의 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몇몇 사건들을 통해 검은 양복 입은 키보드워리어 같은 이미지로 코믹하게 전락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런 까닭에 <7급 공무원>은 국정원 요원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대신 아예 흐지부지하게 뭉개버린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에서 국정원의 세계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만화책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비밀요원’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그렇다면 왜 하필 <7급 공무원>에서는 국정원 요원을 다룬 걸까? 이 드라마에서 길로와 서원이 국정원요원이라는 사실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이들이 신분을 철저히 숨겨야 한다는 것, 더 나아가 그것 때문에 서로의 사랑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에 드라마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 실체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는 상대야말로 가장 매력적인 연애대상일 테니까. 거기에 플러스 원,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남자주인공과 조연들이 싸움을 잘 해야 하고 총도 잘 쏘면 좋다. 그러니 신분을 감춰야하고 싸움 잘하는 국정원 요원보다 드라마로 만들기에 더 좋은 직업이 어디 있으랴? <7급 공무원>의 국정원 요원들은 사실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드라마를 위해 존재하는 직업인 셈이다.



한발 더 나아가 작가는 국정원이란 직업 자체가 지닌 이미지를 코미디의 양념으로 종종 도마에 올려놓는다. 이 역할은 서원의 부모인 시골부부에 의해 재연된다. 이들은 아직 국정원을, 안기부의 시절로, 서슬 퍼런 권력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있다. 부부는 그래서 어떻게든 국정원 요원인 딸의 힘을 빌려 마을이장의 자리를 보전하려 애쓴다. 어쩌면 이 장면이야말로 <7급 공무원>에서 가장 그럴듯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7급 공무원>은 그렇게 완성도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7급 공무원>은 라면 한 그릇 후루룩대며, 컴퓨터로 게임을 하면서 힐끔힐끔 볼 수 있는 드라마다. 유머는 진부한 90년대식이지만 킬킬거리면서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의 센스는 있다. 특히 서원의 엄마 아빠가 선보였던 주인공들 머리끄덩이 잡고 흔들기 엔딩은 이 드라마의 명장면으로 남을 것 같다. 또 로맨스와 첩보물이 뒤섞여 있지만 그 패턴이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 우선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따라가다 보면 금방 흐름이 읽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드라마를 즐기는 시청자들의 입맛이 90년대보다 까다로워졌다는 데 있다. 이제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즐기기보다 완벽한 구조물을 갖춘 감상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런 시청자들에게 <7급 공무원>은 지극히 엉성한 실패작으로 여겨질 것이 뻔하다. 작가의 대표작인 <추노>가 제법 큰 그림이 그려지는 작품이었다면 <7급 공무원>은 순간순간의 재미로 엮여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경쟁작인 <아이리스2>가 영상 자체는 압박감 있게 꽉 채워져 있고,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노희경 작가의 쫀쫀한 대본인 것을 감안할 때 <7급 공무원>의 단점은 그래서 더욱 도드라진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며 머리가 복잡해지길 원치 않는 시청자들에게 <7급 공무원>은 여전히 틀어놓고 딴 짓하며 시간 보내기 좋은 드라마다. 드라마 <7급 공무원> 즐기거나, 외면하거나.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사과나무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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