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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돌이 엄마부터 방회장까지…박원숙의 아우라
기사입력 :[ 2013-03-13 15:20 ]


- 44년차 명배우 박원숙, 최고 캐릭터를 만나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1998년에 출간된 박원숙의 에세이집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에 따르면 박원숙은 1970년 MBC 탤런트 2기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엑스트라가 아닌 배역 같은 배역을 맡은 것은 4년 뒤인 1974년 <아버지>라는 드라마에서였다.

이 드라마에서 박원숙은 어떤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을까? <백년의 유산>의 방회장처럼 악역의 아우라를 뿜어냈을까? 아니면 지금의 화려한 방회장의 분위기를 지닌 부잣집 딸 역을 맡아 얌체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의외로 배우 박원숙의 첫 역할은 어리고 마냥 해맑은 가정부였다. 이 드라마에서 가정부로 분한 박원숙은 당시 유행하던 “슈바슈바 칠성사이다”라는 씨엠송을 부르며 주인집 사람들은 물론 시청자들까지 모두 웃게 만들었다고 한다. 첫 시작은 악역이 아니라 마당놀이 마당쇠의 소녀 판 같은 역할이었던 셈이다.

이후 박원숙이 보여주는 조연 연기의 바탕에는 늘 그런 웃음이 깔려 있다. 억척도 깔려 있고, 악도 깔려 있고, 천박도 깔려 있지만 살살 들춰보면 밑바닥에는 사람들을 울고 웃기는 하회탈 닮은 해학적인 얼굴이 드러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MBC 드라마 <백년의 유산>의 방회장을 통해 박원숙이 긴긴 연기생활 동안 선보여 왔던 모든 조연연기의 무지개떡을 맛보는 중이다.

박원숙이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아무래도 80년대 MBC 아침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의 순돌이 엄마와 KBS 대하드라마 <토지>의 임이네다. 둘 모두 과거와 현재에서 각각 살아가는 억척어멈이지만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순돌엄마는 가끔 울컥해서 아들 순돌이와 남편 순돌아빠에게 쏘아붙일 때도 있지만 기본적인 성정은 그 시절 우리네 평범한 어머니들처럼 유순하고 속 깊은 사람이다.



반면 우리나라 문학작품 사상 최고의 악녀라고 부를 수 있는 <토지>의 임이네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다. 물론 교양도 없고, 정도 없고 아귀 같은 식탐과 물욕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오죽하면 친아들인 홍이가 자신을 낳아준 임이네보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연인인 월선을 더 엄마처럼 여겼을까? <백년의 유산>의 방회장이 아무리 이기적이고 악독한들 임이네 앞에서는 귀여운 할머니에 불과하다. 소설 속에서도 이토록 지독해서 사람들의 혀를 끌끌 차게 만든 임이네를 드라마에서 박원숙은 오롯이 자기 것으로 만든다. 한손에는 착한 여인, 또 한손에는 나쁜 여인, 하지만 모두 억척스러운 여인. 박원숙은 그런 캐릭터를 안고서 80년대를 지나 90년대로 넘어온다.

90년대의 대한민국은 무엇보다 교양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 ‘교양’이란 말의 뒷면을 살짝 만 엿보아도 곧바로 천박함이 드러나는 시대이기도 했다. 박원숙은 이 시기에 겉보기에 교양 있지만 알고 보면 천박한 인물들을 연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연기 톤으로 그 인물들을 희극적인 캐릭터로 다시 창조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별은 내 가슴에>의 송여사와 <그대 그리고 나>의 홍여사가 있다. 디자이너 송여사는 팥쥐 엄마의 현대판 버전으로 여주인공이었던 연이를 괴롭히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부터 악역에 코믹한 요소를 섞는 박원숙 특유의 몸 연기가 빛을 발하게 된다. 한편 홍여사는 대학부설기관에서 수료를 하고 문화센터에서 여성학, 인간학 등을 가리키며 교수 행세를 하는 인물이다. 홍여사는 전형적으로 겉과 속이 다른 교양인이지만 얄밉지는 않았다. 오히려 홍여사가 자신의 우아함으로 포장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어리숙한 모습이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은 박장대소했다.



이후 2천 년대 중반 <겨울새>의 시어머니로 악녀 시어머니의 정점을 찍은 뒤 2013년 박원숙은 <백년의 유산>에서 다시 한 번 시어머니로 돌아왔다. 어떤 이들은 방회장 캐릭터가 마마보이로 출연했던 윤상현 덕에 ‘쪼다새’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겨울새>의 악랄 시어머니의 복사판이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 김수현의 원작답게 <겨울새>의 시어머니는 말로 다다다다 공격할 뿐 며느리에게 한방 먹이려고 입술에 립스틱을 잔뜩 바르고 아들의 와이셔츠에 일부로 입술자국을 남기는 황당한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을 것 같다.

즉, <백년의 유산>의 방회장은 <겨울새>의 시어머니보다 훨씬 복잡하고 동적인 인물이다. 억척어멈이면서, 교양 있는 척하는 속물이면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팥쥐엄마면서, <겨울새>의 시어머니보다 더 치밀한 계획자면서, 때론 쓸쓸하고 고독한 장년의 여인이기까지하다. 방회장이 고독하다고? 라고 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건 <백년의 유산>의 방회장을 제대로 안 본 분들의 이야기다. 자신의 생일날 술 취해 혼자 생크림케이크를 손가락으로 퍽퍽 떠먹는 방회장, 욕조에 들어가 와인잔을 든 채 거품 목욕을 하며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대전발 0시 50분”을 부르는 방회장을 보라, 얼마나 고독한가. 물론 고독해서 더 웃겨 보이지만.



어쨌든 박원숙은 지금 스스로 즐겁게 잔치할 수 있는 최고의 캐릭터를 만난 셈이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은 박원숙이 능청맞게 연기하는 방회장을 보며 눈살을 찌푸릴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방회장은 드라마 속 여주인공에게는 해악의 악녀이지만, 박원숙이 만들어 보여주는 방회장은 시청자들에겐 해학의 악녀이니 말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위부터 <백년의 유산><한지붕 세가족><별은 내 가슴에><겨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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