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왕>, 백도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이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SBS <야왕>은 참 허술한 드라마다. “저게 말이 돼?”, “아이구, 답답해라.” 한 회에 이런 소리가 몇 차례씩이나 나온다. 그러면 옆에서 보던 딸아이가 한 마디 한다. “그냥 그러려니 해요. 뭘 새삼스럽게.” 하지만 얼마 못가 이번엔 딸아이가 장탄식을 한다. “어떻게 저런대?” 짐작컨대 아마 이 집 저 집, 곳곳에서 비슷한 광경이 벌어지리라.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연속과 반전들이 몇 년 전 화제가 됐던 tvN <롤러코스터> ‘막장극장’, 딱 그 짝이지 뭔가.

‘사랑과 전쟁’에서 첩보 물을 오가는, 막장에 막장을 거듭하는 이야기 전개도 기가 차지만 가장 속 터지는 건 답답해도 너무 답답한 등장인물들이 아닐는지. 희대의 악녀 주다해(수애)와 도훈(유노윤호)이 고모 백지미(차화연) 빼고는 다들 헛똑똑이도 그런 헛똑똑이가 없으니 말이다. 아무리 멀쩡히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라지만 하다못해 기업 회장이라는 백창학(이덕화)조차 무지렁이 모양 주다해에게 홀딱 속아 넘어가니 이리 답답할 데가 있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을 쥐락펴락해온 주다해. 이젠 대선후보 석태일(정호빈)까지 꼬드겨 결국엔 대통령 부인 자리에 오르게 된단다. 한 마디로 말세랄 밖에.

이처럼 욕하는 맛에 보는 드라마 <야왕>. 이 걸 보는 동안 두 차례 눈물을 흘렸는데 한번은 하류(권상우)의 딸 은별이가 죽었을 때이고 또 한 번은 며칠 전 도훈이가 죽었을 때다. 늘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았을 테고 사람의 정에 목말라했을 아이들이 아닌가. 억울하기 짝이 없는 그 둘의 죽음이 애통절통하고 그 두 아이의 아비와 어미의 슬픔이 사무치도록 안타까워 펑펑 울었다. 그러나 오열하는 하류와 도경(김성령)이를 따라 눈가를 연신 훔치면서도 이 드라마를 보며 슬피 우는 내가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가만 보면 두 아이는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애꿎게 차 사고를 당해 숨을 거둔 것도, 마음을 기댈 형제도, 변변한 친구 하나 없었던 것도, 마냥 순하디순해서 사람을 잘 따랐던 것도 똑 닮았지 뭔가. 사실 그간 나는 우유부단한 도훈이에게 질려서 이 드라마를 포기해야 되나 마나 몇 차례나 망설였었다. 사람이 착해도 유분수지 어떻게 저리도 숙맥일까, 왜 저렇게 영리하질 못하나, 가슴을 치고 또 쳤었다. 번번히 주다해(이상하게 주다해는 ‘다해’라고 부르면 제 맛이 안난다)의 술수에 놀아나는가 하면 하류를 ‘형’이라고 부르며 살갑게 굴 때면 ‘저런, 멍청이!’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랬던 도훈이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주다해가 죽였다고는 하지만 목적을 위해 접근한 하류나 생모인 도경이, 외할아버지와 고모에게는 과연 책임이 없을까?

지금 와 생각해보니 도훈이는 또 다른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였다. 사랑하는 주다해를 의심 한 점 없이 무한 신뢰해온 그. 그녀의 섬뜩한 과거와 자신에게 접근한 이유를 다 알게 된 이후에도 그녀가 솔직히 털어 놓고 자신을 믿고 의지해주길 기다렸던 그. 아마 마지막 순간에라도 주다해에게서 진심이 엿보였다면 모든 걸 용서하고 받아줬을 그. 마냥 순수하고 속이 맑은 그에게 왜 그리 답답하다며 눈을 흘겼을꼬. 착한 사람이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이라니, 반성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 괜한 소리가 아닌가 보다. 다음 회,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싶으니 말이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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