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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식> 김수현 작가가 내놓은 비장의 카드
기사입력 :[ 2013-03-17 07:59 ]


- <무자식> 김수현 작가의 노련한 선택 통했나
- 한국 드라마계의 코코 샤넬 김수현 작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텔레비전, 그 중에서도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의 판타지를 제공한다. 그것은 자극적이지만 가끔은 계몽적이다. 또 계몽적이다가도 한순간에 보는 이를 황당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굴곡 있는 판타지의 결말은 언제나 해피엔딩이거나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가 김수현은 드라마 결말내기의 룰을 거의 처음 깬 작가였다. 그녀 최고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80년대 중반의 <사랑과 야망>과 90년대 초반의 <사랑이 뭐길래>의 결말을 보자면 그러하다. <사랑과 야망>은 주인공 태준과 미자의 갈등이 해결될 듯 보이다가 막판에 부부싸움이 극에 이르는 장면으로 끝난다. 아마도 마지작 장면은 분에 못이긴 태준에게 뺨을 맞은 미자의 경악한 표정이었던 것 같다.

<사랑이 뭐길래>의 결말 역시 홈드라마의 공식인 훈훈한 화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 다지기가 아니었다. 이 드라마는 방송 내내 가부장적 가장의 표본이었던 대발이 아버지가 보여주는 의외의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몸이 아픈 아내 몰래 대발이 아버지가 새벽에 마당에 나와 쌀을 씻다 그만 아내가 나오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바가지를 엎고 마는 것. 그 장면에서 드라마는 끝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 이후 대발이 아버지의 가치관이 조금씩 달라지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작가 김수현이 모든 틀을 다 깨부술 만큼 파격적인 작가는 아니다. 오히려 김수현은 드라마의 생리를 잘 알고 그 장점과 단점을 잘 꿰고 있는 노련한 디자이너에 가깝다. 한국 드라마계의 코코 샤넬이라 할 수 있는 김수현은 언제나 천박과 계몽이라는 이질적인 재료를 교묘하게 씨줄과 날실로 엮어 자신만의 드라마 디자인을 완성한다. 그렇게 탄생한 김수현 드라마의 디자인은 푸근하고 은은해서 자연스럽기보다 인위적이고 날카롭지만 동시에 매끈해서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최근 작품 중에서 마지막으로 날렵하고 완성도 있는 감각을 보여주었던 작품은 <내 남자의 여자>가 아니었나 싶다.



다소 심심한 반응을 얻었던 <천일의 약속> 이후 김수현이 종편에서 보여준 새 작품은 본인의 장기를 살린 홈드라마였다. <무자식 상팔자>는 미혼모 문제를 건드리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김수현이 홈드라마에서 쓰는 전형적인 인물구도가 다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가부장적인 할아버지와 지혜로운 할머니, 모든 걸 다 잘 하느라 오히려 삶이 피곤한 어머니, 언제나 허허실실 웃어 조금 속없어 보이는 푸근한 아버지, 따따따 엄마에게 말대꾸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딸, 결혼하기 싫어하는 자녀들, 다소 맹하지만 알고 보면 효자인 막내아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어떻게든 자녀 결혼시키기(가끔 김수현의 홈드라마를 보면 명절날 친척 어르신들의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듣는 것 같은 환각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거대한 인물들이 한곳에 모여 대가족을 이루며 산다는 구성까지.

하지만 김수현은 홈드라마 디자인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언제나 똑같은 디자인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부모님 전상서>와 <인생은 아름다워>가 비슷하지만 다르듯 <무자식 상팔자>에도 새로운 디자인은 추가된다. 그것은 바로 모든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우울한 ‘그림자’들이다. <무자식 상팔자>의 이번 대가족은 다른 홈드라마의 대가족들처럼 화목하지만은 않다. 가뜩이나 자린고비 같은 둘째 며느리는 남편의 퇴직 이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날카로워져 있다. 셋째 며느리는 남편에게 사랑 받지만 아이가 없다는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드라마의 중심축인 첫째 며느리는 맏며느리와 엄마라는 자신의 역할에 지쳐 나날이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한때 모든 권위를 누렸던 가부장인 할아버지는 자식들이나 아내에게 종종 뒤에서 잔소리꾼 취급을 당한다. 이렇게 짙어진 ‘그림자’를 추가한 것은 아마 대가족 판타지만으로는 더 이상 감추기 어려운 지금의 각박해진 현실을 녹여내 보려는 작가의 시도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김수현의 홈드라마가 더 이상 대중들에게 새로움으로 어필하긴 힘들 것 같다. 그녀의 따박따박한 문어체 대사들은 종종 피곤하게 느껴지고 거기에 담겨 있는 윤리관은 결론적으로는 지극히 교과서적이다. 다만 아직도 늘어지는 부분 없이, 억지스러운 장면 없이, 탄력 있게 사건들을 진행시키는 감각만은 젊은 드라마 작가들보다 오히려 더 세련됐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이번에 <무자식 상팔자>를 보면서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작가 김수현 특유의 현란한 대사가 이어질 때가 아니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웃기면서도 혀를 내둘렀던 장면 중 하나는 장남 성기가 연인 영현과 서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이 길게 이어질 때였다. 지나치게 긴 문장과 휘황찬란한 비유들로 만들어진 문자메시지라니. 배우들이 던지는 대사만이 아니라 그들이 손가락으로 작성하는 문자메시지마저 자기화하는 노작가 특유의 그 스타일이라니.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JTBC, 김수현 작가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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