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닝맨>, 아버지의 이름으로 달리는 ‘도바리 왕’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런닝맨>은 제목에 충실한 영화이다. 시종 달리고 달린다. 영문도 모른 채 누명을 쓰고 쫓기면서, 가까스로 사건의 본질에 접근해 나가고, 그 와중에 가족 간의 불신도 해소한다는 매우 고전적인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서사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일까. <런닝맨>은 20세기 폭스사가 메인 투자한 영화이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박쥐>와 <황해>를 부분 투자한 적은 있지만, 메인 투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는 서울 도심과 월드컵 경기장 등 익히 아는 장소에서 벌이는 도주극을 보여준다. 지형지물을 재치 있게 활용하여 벌이는 맨몸 액션은 아기자기하고 참신하며 현실감이 있다. 주인공 차종우(신하균)는 괴력의 소유자가 아니다. 도망 본능이 살아있고 잔머리가 좋은 인물일 뿐이다. 그는 평범한 시민이나 가장이라기보다 다소 하자가 있는 인물이다. 잡범전과가 무수하나 지금은 카센터 기술자이자 ‘나라시’ 운전기사로 투잡을 뛰는 하층민 노동자이다.

또한 일찍이 ‘사고 쳐서’ 낳은 아들과는 18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아버지로, 머리가 굵은 ‘고딩’ 아들에게 존경은커녕 무시를 당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이 모든 ‘하자’들이 영화 속에선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 그의 잡범전과는 ‘도바리의 왕’이라는 수식과 함께, 그가 왜 현장에서 도주하였으며, 왜 누명을 쓰고 쫓기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경찰과 국정원을 따돌리고 도주를 이어나갈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똑똑하고 반항적인 아들은 아버지가 위기에 놓일 때마다 추리와 몸싸움을 통해 도움을 준다. 그러나 아들의 영민한 추리는 몸으로 세상이치를 익힌 잡범의 본능을 당하지 못한다. 아들의 결정적인 판단 오류는 아버지를 위험에 빠뜨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안전과 아버지로서의 명예를 위해 모든 것을 건다. 이는 가난하고 무능한 아버지였던 차종우가 아들에게 최초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괴물>, <연가시> 등에서도 보았듯이 하층민 아버지의 인정투쟁은 한국영화에서 매우 익숙한 서사이다. 히어로물의 전통이 있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음모에 맞서 문제를 해결하는 주인공들이 전·현직 공무원이거나 과학자 등인 것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괴물>의 아버지는 지능은 낮지만 마취가 되지 않는 몸이었고, 삼촌은 운동권 출신으로 ‘도바리의 왕’이었다. <연가시>의 아버지는 전직 과학자였지만 그의 문제해결 방식은 과학자적 면모가 아니라 말단 회사원의 면모였다. 이들을 결정적으로 돕는 사람들도 노숙자나 공장노동자 등이다. <런닝맨>의 주인공이 잡범 전과자이자 하층민 노동자로서 뛰어난 도주능력을 보이고, 그를 돕는 이들도 개척교회 목사, 주말신문 기자, 해커출신 ‘야동’제작자 등 오합지졸인 것은 한국장르영화의 특성이라 할만한 ‘민중성’과 부합한다.

또한 <런닝맨>은 미혼부가 홀로 아들을 책임지고 키워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제니 주노> <카리스마 탈출기> <혜화, 동> <과속 스캔들> 등에서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을 다루었지만, 선정적이거나 희화적으로 그려지기 일쑤였고, 남성청소년들이 책임의 주체로 그려지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런닝맨>은 미혼부가 홀로 아이를 책임지고 양육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빈곤이나 아들이 겪는 애정결핍과 자존감위축 등을 담담히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정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청소년기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즉 <런닝맨>은 미혼부 가정을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가족의 한 형태로 그리면서, 미혼모 가정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배려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은연중에 알려준다. 덧붙여 다른 사람과 가정을 이룬 엄마와의 쿨한 재회도 성 정치학적 올바름을 지닌다.

후반부에 공개되는 사건의 비밀이 군의 무기거래와 연관이 있고, 여기에 국가정보원이 개입되어 있다는 설정도 꽤 날카롭다. 차세대 전투기종 선정이나 국제무기거래 사업에 상당한 로비가 존재하고 진실은폐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게다가 민간인 사찰이나 선거개입 등으로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적절한 의표 찌르기가 아닐 수 없다.

P.S <런닝맨>에서 아쉬운 점은 딱 한가지이다. 주말신문 기자가 방송기자에게 특종을 넘기고 받은 대가는 무엇일까.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성과를 남성들에게 양보하거나 빼앗기는 일이 흔하기에 더욱 마음에 걸린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런닝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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