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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주먹>, 父들의 처절한 밥벌이가 남긴 것
기사입력 :[ 2013-04-18 15:28 ]


- <전설의 주먹>, 향수·부성·격투기 제대로 버무렸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전설의 주먹>은 이윤균 만화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강우석 감독의 격투기액션 영화이다. 영화는 케이블 방송국에서 과거 ‘전설’이던 주먹들을 불러 모아 이종격투기 경기를 벌인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하기야 궁금하긴 하다. 그 많던 ‘전설’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동안 한국영화들은 ‘전설’들의 후일담을 잠깐씩 보여준 적이 있다. <품행제로>에서 류승범은 기타교습소를 차렸고,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는 재수가방을 둘러맸다. <뚝방전설>의 주인공은 건달세계를 기웃거리다 거기는 진짜 잔혹한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건 짧은 후기일 뿐, 긴 생애를 두고 어찌되었는지 말해주진 않는다.

<전설의 주먹>은 그들이 40대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 ‘전설들의 생애사적 연구’라 할 만한 흥미로운 모티브가 깔려있는 셈이다. 사당고등학교 ‘전설’ 황정민은 섭외 0순위이지만, 출전을 거부한다. 국수집을 운영하며 중학생 딸을 키우는 홀아비인 그는 주먹질을 하고 살던 과거를 잊고 싶다. 하지만 딸(지우)이 사고를 치자 합의금 마련을 위해 링에 오른다. 그곳에서 그는 학창시절 몰려다니던 윤제문과 유준상을 만나게 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거친 호흡으로 오가며 이들의 사연을 들려준다. 영화가 품은 코드는 크게 세 가지 이다. 첫째, 향수, 둘째, 부성, 셋째, 격투기이다.

첫째, <써니>의 성공이 말해주듯, 40대인 주인공이 학창시절 잘나가던 때를 회상하며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관객들에게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전설의 주먹>은 이를 달콤한 노스탤지어로 향유하지 않는다. 영화가 나른한 향수로 빠져들 무렵에 배치된 동창회 장면은 자아도취의 유혹을 뿌리치고 뜨악한 각성을 안겨준다. 영화는 ‘주먹질의 추억’을 윤색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이를 섣부른 자아 찾기와 연결시키지도 않는다. 그 점에서 <전설의 주먹>은 성찰적이며, <써니>의 유아적인 나르시시즘보다 한걸음 나아간 윤리의식을 지닌다.



둘째, <7번방의 선물>의 흥행과 <아빠 어디가>의 화제에서 보듯이, 부성은 최근의 새로운 화두이다. 왜 부성이 화두일까. 이는 ‘돈 벌어다 주는 아버지’와 ‘인간적으로 정이 가는 아버지’ 사이의 간극을 이 사회가 포착하게 되었다는 징후이다. 외환위기 당시의 부성은 돈 벌어다 주는 아버지가 전부인줄 알았다가 그것마저 실패한 부성이라면, 지금의 부성은 어차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부자아빠가 되지 못할 바에는 ‘교감하는 아버지’라도 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부성이다.

영화에서 황정민이 출전을 거부하자 방송국 PD는 “싫은 일도 돈이 되면 하는 것이 아버지가 아닌가?” 반문한다. 황정민이 승부조작을 못내 받아들이자 도박꾼은 “아빠 맞네”라며 추임새를 넣는다. 영화는 ‘치욕을 감내해가며 돈벌이를 해내는 부성’을 유준상을 통해 더욱 부각시킨다. 유준상은 아들 친구에게 머슴처럼 머리를 조아리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이자, 자신도 부자친구 밑에서 온갖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대가로 “매달 제날짜에 돈을 부치는” 기러기 아빠이다. 영화는 밥벌이하는 존재로서의 아버지와 자신의 꿈과 울분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대립시키고, 이내 둘을 통합한다.



황정민과 유준상은 애초 밥벌이를 위해 링에 오른다. 그러나 마지막에 황정민은 딸이 응원하는 아빠의 꿈을 이루어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임을 딸에게 보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고, 유준상은 자신의 비루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즉 ‘밥벌이를 하는 아버지’와 ‘꿈을 이루거나 자기한계를 돌파하려는 아버지’ 사이의 간극이 스무드하게 봉합되어 있다.

그런데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령 <즐거운 인생>에서 아버지의 자아실현은 밥벌이로부터의 이탈이었고, <반칙왕>에서 레슬링 하는 자아는 사회적 자아와 통합되지 않는다. <우아한 세계>의 조폭아버지의 밥벌이는 아버지 되기의 실패를 낳았으며, <주먹이 운다>에서 밥벌이를 위한 아버지의 사투는 가까스로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지지만 그 과정이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전설의 주먹>에서 아버지의 격투기는 밥벌이로 출발하여 어느새 아버지의 자아실현이 되고 딸과의 소통도 이루어준다. 이는 강우석 감독이 믿고 싶어 하는 부성의 통합이다. 아버지의 처절한 밥벌이가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자아실현이 되고, 그 진심이 가족들에게도 전달되는 것, 이것이 강우석 감독의 다소 나이브한 희망사항인 것이다.



셋째, 영화가 가장 공을 들인 대목은 격투기이다. 격투기 장면은 합을 맞춰 찍는다는 의미에서 ‘리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격투기 동작이 가능한 몸을 만들고 타격을 주고받으면서 느끼게 되는 고통은 진짜이다. 황정민은 몇 달간 매일 서너 시간씩 윗몸일으키기를 하여 식스 팩을 만들었다 한다. 정두홍 무술감독이 전권을 쥐고 촬영한 액션장면은 무척 생생하고 캐릭터에 따른 액션의 구성도 다채롭다. 권투 유망주였던 황정민은 주먹을 주로 사용하고 다리가 긴 유준상은 발차기로 승부한다. 관리되지 않은 삼류조폭의 몸뚱이를 지닌 윤제문은 막 싸움을 펼친다. 이들이 펼치는 링 안의 사투는 처절하다.

그러나 경기는 링 안의 싸움이 전부가 아니다. 경기는 상금을 걸고 판을 깐 방송국과 여기에 판돈을 거는 이들의 돈 놀이판이기도 하다. 상금에 낚여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워야 하는 선수들은 흡사 투견장의 개처럼 보인다. 경기가 저조하면 방송국은 끊임없이 파이팅을 요구하며, 이들을 미끼로 ARS와 광고 등 부가수입을 얻는다. 여기서 가장 큰돈을 버는 사람은 승부조작과 도박을 일삼는 큰손들이다. 링은 정직한 몸과 몸이 맞붙는 곳이기도 하지만, 뒤로는 협잡이 난무하는 곳이다.



영화는 이 구조를 감추지 않으며, 순수와 오염의 이분법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집무실에서 직원들에게 ‘빳다’를 치고 돈다발을 쥐어주는 재벌3세가 유준상에게 “네 주먹이 얼마나 센지 한번 붙어보라”며 조폭과 싸움을 붙이려는 장면과 겹쳐놓음으로써, 이종격투기의 링이 실은 ‘얻어맞고 매 값을 받는’ 천민자본주의적 노동시장, 즉 생존의 정글을 유비하는 장임을 은연중에 누설한다. 영화는 링을 둘러싼 자본의 구조를 보여주지만, 이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며 죽을 때까지 자본에게 착취당하면서도 이를 자신의 열정이라 착각하는 개인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강우석 감독은 전작 <글로브>에서 극한의 승부욕과 프로정신을 생존의 원리이자 윤리로 받아들이고 이를 장애인들에게 설파하는 것을 휴머니즘으로 여겼다. 그러나 <전설의 주먹>에서는 승부욕으로 부추겨진 착취의 메커니즘에 거리두기를 하면서, 주인공이 마지막 승부를 거부하는 모습을 통해 조금이나마 자본의 논리로부터 탈주하여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P.S 1. 영화 속 유머코드가 상당하다. 특히 한화 김승연 회장과 M&M 최철원 전회장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재벌3세의 캐릭터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2. 강우석 감독이 여자를 모른다는 풍설은 사실인 듯하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너무 평면적이고 도구적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여배우는 미스 캐스팅이고, 연기지도도 없어 보인다. 이요원의 허공에 외치는 듯한 연기는 영화에서 가장 거슬리는 흠결이다. 어린 지우의 안정된 연기와 비교해보았을 때 더욱 그러하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전설의 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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