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겉 피부보다 속 피부가 중요한 이유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살갗은 연약한 조직이다. 딱딱하거나 뾰족한 물체에 살짝 스치거나 찔려도 쉽게 상처가 나고, 반복적인 마찰에 물집이 생긴다. 이처럼 연약한 피부이지만 외부 세균의 침입을 막는 데 있어서는 ‘성벽’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 몸에서 외부 세균의 침입에 가장 취약한 곳이 장상피조직이다. 입 속에서 항문에 이르는 뱃속 부위를 덮은 조직이다. 피부가 ‘외피’라면 장상피조직은 ‘내피’에 해당한다. 장상피조직은 영양분과 수분을 흡수하면서 해로운 세균이 우리 몸 안에 침투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상반된 두 가지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장상피조직이 외부 물질을 인지하고 선별해 받아들이면야 좋겠지만, 말단 세포가 그렇게 고난이도 작업을 수행하기란 불가능하다.

◆ 장벽은 외부 침투에 가장 취약

먹어서 탈이 나더라도 어쩌겠는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래서 장상피조직은 흡수와 방어 가운데 흡수를 택한다. 장상피조직 세포는 사이가 벌어져, 우리 몸은 그 틈으로 영양분과 수분을 받아들인다. 대신 우리 몸에 해로운 세균이 쉽게 침투할 경로를 제공한다. 이에 비해 피부 세포는 촘촘히 붙어 세균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다.

장상피조직 중 위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강력한 위산이 분비되는 위 속에는, 헬리코박터 같은 희귀한 독종이 있긴 하지만, 세균이 별로 없다. 세균은 장(腸) 가운데 소장과 대장에 주로 살고, 소장에서 대장으로 갈수록 서식밀도가 높아진다.

우리 몸은 정교하고 뛰어난 면역시스템을 갖추고 가동한다. 하지만 우리 몸에 해로운 온갖 균이 장상피조직을 통해 들어오도록 방치된다면, 면역시스템도 감당하지 못하게 되고 우리는 질병에 감염된다.

◆ 유익균 vs 유해균 장내 생태계 경쟁

다행히도 우리 몸에는 장상피조직을 방어해주는 ‘우군(友軍)’이 있다. 유익균이다. 영어로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라고 한다. 유익균은 물리적으로는 장벽에 먼저 자리잡고 살면서 유해균이 달라붙을 여지를 없앤다. 유해균은 장벽에 붙지 못하니, 우리 몸에 침투하지도 못한다. 영양 측면에서는 영양분 섭취 경쟁을 통해 유해균이 먹을 거리를 줄인다. 화학적으로는 항균물질을 생성해 유해균의 활동을 억제한다.

유익균은 또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과민한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교육하면서 면역세포의 성장을 돕는다. 면역세포가 지나치게 예민해지면 아토피, 음식 알러지, 자가면역 등 과민성 면역질환이 생긴다. 유익균이 면역세포의 성장과 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돕는지는, 내 지식으로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장내 유익균은 면역세포와 가까운 곳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은 전한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의 80%는 장 안쪽에 분포한다고 한다.

◆ 쾌변을 원한다면 매일 유익균을

유익균은 또 대장의 활동을 도와 우리가 대변을 잘 보도록 한다. 대장은 자율신경체계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제 뜻대로 움직인다는 말이다. 대장은 우리 의지에는 따르지 않지만, 심리에는 영향을 받는다. 심한 스트레스는 대장의 연동 활동을 방해한다. 장이 지나치게 예민해 정신적인 압박을 받거나 긴장하거나 불안한 등의 상태가 되면 탈이 날 수 있다. 이 증상이 고질이 되면 과민대장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설사나 변비로 나타난다. 과민대장증후군에는 치료약이 없다. 원인은 같은데 사람에 따라 증상이 달라서 치료제를 개발하기 어렵다. 골치 아픈 과민대장증후군은 유익균으로 개선할 수 있다. 장내에 유익균이 많아지도록 하면,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과민대장증후군이 완화된다. 유익균은 ‘방어벽’ 역할을 해 어지간한 스트레스에는 장이 휘둘리지 않도록 한다.

유익균의 도움이 여기까지라면 유익균이 아니다. 유익균은 우리가 섭취한 영양분을 먹는 대신 우리 몸을 이롭게 하는 물질을 생성해준다. 유해균은 해로운 물질을 배출한다. 유익균은 비타민K를 비롯해 각종 비타민을 형성하고 발암물질을 제거하거나 분해하며 칼슘 철분 마그네슘 등의 흡수율을 높인다.

충수돌기는 유익균의 피난처 인간과 유익균은 공생관계다. 이 공생관계의 증거가 충수돌기다. 충수돌기는 대장이 시작되는 부분에 아래로 5~10cm 길이로 늘어뜨려진 기관이다. 맹장이라고 불리며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연구 결과 유익균의 피난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설사가 나면 장내 세균이 대변과 함께 휩쓸려 몸 밖으로 배출된다. 이 때 충수돌기는 유익균의 피난처가 된다. 설사가 멎으면 충수돌기는 유익균을 장에 공급한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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