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지호·강지환, 폼만 잡는 젠틀맨은 가라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이 글은 가래떡 스카프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싸이의 신곡에 대한 칼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칼럼은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김수미가 불렀던 “젠젠젠 젠틀맨이다”와는 통하는 면이 있다. 바로 젠틀맨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젠젠젠 젠틀맨의 연기로 사랑받는 남자배우들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젠틀맨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지는 아마 양복 지면광고가 아닌가 한다. 검정계열의 양복을 입고 배꼽 부위에 지긋이 손을 올려놓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신사의 모습, 혹은 허리를 비틀고 어깨에 상의를 걸치고 태양이 떠오르는 창밖을 바라보는 듯한 그 포즈가 전형적인 젠틀맨의 이미지일 것이다. 지금껏 수많은 남성스타들은 양복 지면광고의 젠틀맨으로 활약했다.

<직장의 신>의 오지호나 <돈의 화신>의 강지환 모두 긴 기럭지와 잘생긴 외모 덕에 역시 젠틀맨 포즈를 여러 번 취해본 배우들이다. 오지호는 ‘트레모모’라는 브랜드의 모델로 활약했고 강지환 역시 ‘인디안모모’의 지면광고에서 멋진 정장 패션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지면광고에서의 모습과 달리 젠틀맨의 전형에서 벗어난 젠젠젠 젠틀맨일 때 오히려 매력을 발휘하는 배우들이다.

오지호는 조각상 같은 외모와 몸으로 데뷔한 배우다. 그의 영화 데뷔작인 여균동 감독의 <미인>은 여주인공 이지현과 오지호라는 두 신인 남녀배우의 아름다운 몸을 스크린에 담았음을 타이틀로 내세운 영화였다. 하지만 당시 이 영화는 생각만큼 흥하지 못했고 배우 오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우 오지호는 서구 조각상처럼 딱딱해서 언뜻 보기에는 인간적인 매력을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이었다. 그러니 그가 멜로의 주인공으로 나왔던 <가을소나기>에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하기는 어려웠다. 멜로란 사람과 사람이 사랑으로 나누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물은 조각상이 흘리는 눈물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반면 조각 같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허술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일 때 오지호는 오히려 빛을 발했다. 그가 웃으면 조각상에서 순식간에 나사가 하나 빠진 젠젠젠 젠틀맨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시작이 영화 <은장도>였다면 그 정점은 아마 장철수로 나온 <환상의 커플>이었을 것이다. 이후 오지호는 자신의 젠젠젠 젠틀맨 캐릭터를 이용 <내조의 여왕>이나 현재 <직장의 신>에서까지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물론 그의 연기 폭은 좁고 코믹연기는 배꼽 잡게 만들지만 여전히 감정이 오가는 멜로 연기에서는 맥이 뚝뚝 끊기는 감이 있다. 하지만 화보 속에서만 멋있는 젠틀맨일 뿐 젠젠젠 젠틀맨은 물론 평범한 젠틀만마저 소화하지 못하는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자기의 길을 열심히 개척해가는 중이라 하겠다.

한편 <돈의 화신>에서 자기에게 맞는 슈퍼맨 망토 같은 캐릭터를 입고 날아다닌 이차돈 역의 강지환 같은 경우는 타고나길 젠젠젠 젠틀맨 같다. 사실 강지환의 목소리에 대해 대중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목소리는 젠틀맨에 어울리는 나직하고 믿음직한 저음은 아니다. 약간 방방 뜨기도 하고, 혹은 어딘지 발음을 뭉개지면 덜 자란 소년처럼 들리고, 어딘지 유약한 한량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가 강지환의 단점만은 아니다. 그 때문에 다른 남자배우들은 쉽게 살리기 어려운 미묘한 캐릭터 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지함과 우스꽝스러움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젠젠젠 젠틀맨들 말이다.



이런 그의 매력을 가장 잘 살린 드라마가 바로 <경성스캔들>의 주인공 선우완이다. 맥고모자를 쓰고 그에 어울리는 흰 양복차림으로 등장하던 선우완은 신사적이면서도 바람둥이이고 한량이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대한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물이다. 이처럼 다양한 성격을 지닌 식민지 조선의 모던보이이자 살아 있는 젠젠젠 젠틀맨을 강지환은 이미 능숙하게 연기한 바 있다.

최근 강지환이 연기한 <돈의 화신>의 이차돈 역시 매력적인 젠젠젠 젠틀맨이다. 주말드라마의 주인공이라기에는 너무 복합적이고 괴상한 인물인 이차돈은 아마 다른 남자배우들이라면 쉽게 소화하기가 어려웠으리라 본다. 겉보기에는 빤한 속물이지만 알고 보면 내면에는 슬픈 과거가 가득 고여 있는 남자. 소년시절의 유약함이 남아 있지만 복수를 시작할 때는 누구보다도 남성적이고 계산적인 남자. 하지만 한번 보면 멀끔하게만 보일 뿐 쉽게 속을 알 수 없는 남자 이차돈. 이차돈은 드라마 내내 코메디와 멜로와 스릴러와 드라마를 갈지자로 넘나드는 젠젠젠 젠틀맨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이런 이차돈은 우직하게 한 길로만 가는 악역 젠틀맨 지세광과 대비된다. 그리고 또한 그 동안 수많은 드라마에 나왔던 평면적인 남자주인공들과도 대비된다.



작가팀이 지금껏 보기 어려웠던 이 이차돈이란 인물을 마음 놓고 자유롭게 쓴 건 아마 배우 강지환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인 것 같다. 속물적인 비리 검사부터, 정신병원에 입원한 조선의 국모부터,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통곡하는 아들부터, 복수의 작전을 교묘하게 조직하는 냉혈한까지. <돈의 화신>에서의 강지환은 빤한 젠틀맨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젠젠젠 젠틀맨이었다.

그리고 오지호와 강지환 뿐 아니라 앞으로 드라마에서는 많은 젠젠젠 젠틀맨 스타들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정장 차림의 폼만 잡는 젠틀맨은 이미 매력 없고 진부해서 아침드라마에서나 사랑받는 인물들이 된 지 오래니까 말이다.

“공부 잘해 취직한 너 너만 잘났냐. 백수지만 꿈 많은 나 나도 잘났다. 젠젠젠 젠틀맨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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