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자애인>, 이 졸작이 중국에선 흥행했다니!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그림자 애인>은 권상우와 장백지가 주연을 맡고 중국의 반원량 감독이 연출한 멜로영화로, 지난해 중국에서 대규모로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 권상우는 드라마 <대물><야왕> 등을 통해 국내 팬들의 인기를 누리는데다 최근 성룡과 <차이니즈 조디악>을 찍으면서 중화권에서 한류스타로 부상 중이며, 장백지는 중화권 최고의 여배우이자 <파이란>, <무극>, <위험한 관계> 등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배우이기에, 두 사람의 멜로가 기대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장백지가 재벌 상속녀와 꽃집 아가씨의 1인 2역을 하며, 권상우가 한중 다국적 기업의 CEO 역할을 맡는다고 하니, 상류층의 화려함으로 볼거리도 풍부할 것이 기대된다.

보통 이런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 포인트는 정해져있다. 첫째, 배우의 매력을 잘 살릴 것, 둘째, 멜로의 감정이 이해될 것. 셋째, 화려한 볼거리로 눈을 즐겁게 할 것. 그런데 아뿔사! <그림자 애인>은 이 중 어느 것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배우의 매력은커녕 둘 다 종이인형처럼 보일 지경이고, 멜로의 감정은커녕 최소한의 줄거리조차 납득되지 않는다. 볼거리는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지만 방만한 카메라 워크로 아무런 감상도 되지 못한다. 사태가 이지경이 된 데는 기괴한 편집 탓이 가장 크지만, 애초에 시나리오자체도 조악해 보인다.

영화는 한국에 눈사태가 났다는 뉴스와 함께 시작한다. 곧이어 패리스(장백지)가 권정훈(권상우)에게 한국에 가겠다는 말을 윽박지르듯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말인 즉, 재벌 상속녀 패리스가 경영권 승계문제로 삼촌과 대립하다 한국의 주주를 설득하러 한국에 갔으며, 눈사태 소식과 함께 애인인 권정훈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라는 뜻. 관객이 이런 내용을 미처 이해하기도 전에, 꽃집아가씨 진심(장백지)이 자신의 내레이션을 가지고 등장한다. 그리곤 권정훈이 도로위에서 진심을 발견하고 쫓아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초반 시퀀스에서 진심은 그야말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인물인데,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내레이션을 쫓으며 우연히 알게 된 권정훈의 제안에 따라 별다른 망설임 없이 패리스의 대역을 수행하기로 하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나아간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내가 재벌의 상속녀를 꼭 닮았으며, 그녀가 없는 동안 그녀의 회사나 집에서 감쪽같이 사람을 속이는 연기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면 어떨까. 그게 옳은 일인지, 내가 잘 할 수 있는지, 사기나 음모에 휘말리는 건 아닌지, 대가로 뭘 요구해야 될지 고민하지 않을까.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고민을 과감히 생략하고, 진심이 패리스의 대역을 금세 받아들이고, 곧잘 수행하는 장면으로 점프한다. 그녀가 그리 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영화는 ‘꽃집 개발설’과 그녀가 나쁜 일을 예견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말로 밑밥을 깐다. 그러나 영화는 개발문제도 말 몇 마디로 술렁술렁 넘어가고, 진심이 병상에 누운 패리스 아버지 앞에서 패리스인 척 연기를 하며 아버지를 위험에 빠뜨리는 장면도 장난처럼 그린다.

진심은 패리스의 대역을 연기하는데 기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없으며, 때로는 투정도 부리지만 은근히 즐기는 듯 보인다. 모처럼의 공주놀음이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배우도 아닌 사람이 낯선 환경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연기하며 그를 아는 사람들을 속여야 하는 상황이 그리 만만할까.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영화가 충분히 묘사하기도 전에, 별다른 고민 없이 넙죽 남의 인생을 연기하는 그녀라니, 관객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더더욱 알 수 없으며, 그 결과 관객은 그녀에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보통 이런 역할극에는 탄로가 날 만한 고비가 있고, 그 고비가 장르적인 재미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림자 애인>은 그런 고비를 무가치하게 허비해 버린다. 가령 오랫동안 일해 온 늙은 집사를 속이기가 어렵다고 말해 놓고, 3분도 되지 않아서 그를 치매노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사촌동생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그녀에게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굴었다가 불과 1분 만에 ‘우리 편’이라고 해버린다.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보듯이 이런 서사에서는 진짜 패리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진심을 어떻게 은근히 무시하며 그들과 진심이 어떻게 기 싸움을 벌이는지도 재미를 주는 요인이지만, 영화는 삼촌이라는 단 한명의 적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균질하고 착한 우리 편’이라는 구도 속에 쓸어 놓고 아무런 긴장도 살리지 못한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권정훈이 처음 진심에게 가졌던 마음이 무엇이었으며, 어떤 계기를 통해 차츰 변해 가는지도 완전히 밋밋하게 그려져서, 관객들은 멜로의 관전 포인트를 전혀 따라갈 수 없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의 멜로는 아무에게도 감정이입이 일어나지 않는 ‘남의 다리 긁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패리스가 없어졌다가 나타나는 과정도 전혀 극적인 요소가 없다. 그는 실종이라기보다는 잠적에 가까운 부재의 시간을 갖은 뒤, 권정훈이 아닌 사촌에게 먼저 연락을 취하고 연회 장소에 나타난다. 그녀가 왜 없어졌으며 권정훈과는 어떤 감정으로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는지 영화는 전혀 다루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둘이 얼마나 애틋한 관계였는지 아니면 그저 정략적인 관계였는지 알기 어렵다.



즉 권정훈이 패리스에게 품었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멜로의 대전제부터 불확실해지는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권정훈이 패리스를 떠나 진심에게 가는 것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권정훈의 선택은 진심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서 이루어진 결실이 아니라, 그동안 참아왔던 패리스의 거만함에 대한 반발로 여겨진다. 돈 많고 성질 나쁜 공주에게 질려서, 가난하고 고분고분하며 얼굴은 똑같이 예쁜 여자로 ‘갈아탄’ 부자남자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감동이 있단 말인가?

영화는 정작 집중해야 할 주인공들 사이의 감정을 등한히 한 채, 서사의 필연성을 자꾸만 진심의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랑에서 가져오려 한다. 영화는 자신이 할머니를 닮았다는 진심의 말을 처음부터 내레이션으로 깔고, 이들의 사랑 사이에 유비관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두 개의 사랑 사이에 내재적 연관성은 없으며, 다만 “불가능한 사랑을 통해 이별을 겪게 되더라도,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는 할머니의 충고를 위해 외삽된 이야기다.

<그림자 애인>은 84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 안에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랑이야기까지 버무리면서, 주인공의 감정에 집중할 짬도 주지 않은 채 후딱후딱 정해진 결론을 향해 간다. 속성으로 진행되는 ‘미친 편집’으로 인해 배우의 매력이나 멜로의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고, 호사스러운 볼거리조차 음미할 수 없는 최악의 졸작이 되었다. 이 영화가 중국에서 4천개 이상 관에서 개봉하여 4주간 박스오피스 상위에 머물렀다니, 중국은 진정 낯선 나라이다.

P.S. 1. 영화의 설정에 흥미를 느끼는 국내관객이라면 차라리 TV 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을 보기를 권해드린다.
2. 영화 속에서 가장 흥미롭던 대목은 패리스를 연기하던 진심이 잠깐 쉬게 해달라고 하고는 갑자기 진짜 패리스인양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몇 초간 스릴러의 느낌이 감돌았지만, 곧 장난처럼 흐지부지 되었다. 차라리 이런 대목을 살려 관객과 게임을 하는 것으로 나갔더라면 조금 재미있었을지 모른다.
3. 일본인에게 길러져 일본어를 쓰는 소녀였던 진심의 할머니는 전쟁당시 일본어를 감추기 위하여 차라리 벙어리인 척 연기를 한다. 언제나 한국어 발음이 문제였던 권상우는 중국영화를 찍으면서 중국어로 연기하는 대신, 아예 더빙을 해버렸다. 전자는 언어를 감추기 위해 벙어리인 척 하였고, 후자는 언어를 핑계로 벙어리가 되었다. 기묘한 우연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그림자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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