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왕 조용필의 귀환을 칭송하는 사람들의 심리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조용필의 머리에는 가왕이란 칭호가, 그 앞길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다. 그가 걷기 시작하자 싸이와 마찬가지로 전폭적인 찬사가 쏟아진다. 신기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고 소비하는 대상이 ‘기도하는~’에 자지러지는 중장년층 세대가 아니라 ‘고추잠자리’나 ‘여행을 떠나요’같은 노래는 알지만 조용필의 무대는 직접 보지 못한 세대라는 점이다. 그래서 ‘당신은 조용필을 평소 얼마나 좋아하세요?’ 혹은 ‘당신은 조용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나요?’라는 질문은 그 어떤 제다이보다 화려하게 귀환한 조용필 열풍의 단서다.

물론 노래가 좋다. 매우 괜찮고 세련됐다. 노래가 좋았기 때문에 이런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은 이 글의 전제이자 바탕이다. 하지만 가요시장의 트렌드를 생각하면 조금 갸우뚱하게 된다. 세련되고 신선하며 젊어졌지만, 우리 가요시장에선 다소 낯선 사운드다. ‘노래가 좋아서’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을 사로잡았다고 하기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고 조용필이 가왕이기 때문에 이 모든 현상이 벌어졌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15집부터 18집까지는 홍보와 활동이 제한적인 것도 있지만 가요계를 지금처럼 들썩이는 것은커녕, 신간 발매 자체가 세간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었다.

많은 언론에서 이 현상을 두고 세대 통합을 말하지만 위의 질문은 오히려 세대를 구획 짓게 만든다. 중장년층에게 조용필의 귀환은 추억이자 옛 전성기에 대한 향수다. 오디션 쇼의 리메이크 열풍이 7080세대를 대중음악 시장에 다시 돌아오게 했고, 이들이 열렬히 반응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음원 사이트와 음악 프로그램을 장악하는 규모로 폭발할 수 있었던 것은 조용필에 대한 기억이 옅거나 아예 없는 30대 이하 세대들이 조용필의 노래를 새롭게 받아들이고 소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소속사 YPC프로덕션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23일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19집 쇼케이스를 25만 명이 실시간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이는 일반적인 아이돌 그룹 생중계를 배 이상 능가하는 수치다. 또한 음원 다운로드 사이트와 아이돌 일변도였던 TV 음악 프로그램 차트를 석권하고 있다. 이는 이런 평소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그리고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세대에서 반응을 했다는 증거다. 허나 중장년층과 그 아랫세대의 접근법이 같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왜?’라는 물음을 해야 한다. 겪어본 적도 없는 시절을 마치 회상하는 듯하며 가왕의 귀환을 칭송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인가.



조용필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관심과 지지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 케이팝과 한류, 싸이 등과 같은 현재 대중음악 씬이 성장하면서 보여준 성과는 기본적으로 은연중 우리의 콘텐츠에 자부심을 갖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프로스포츠 산업이나 팝 음악 산업의 ‘레전드’ 문화가 그러하듯 우리도 역사에 주목하고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대중문화, 우리 대중음악이 세월을 거듭해서 발전하면서 갖게 된 유산이다. 옛날 가요를 촌스럽다고 생각한다거나 7080세대의 흘러간 시간을 추억하는 미사리 문화라고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영광을 전설로 받아들이고 새롭게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슈퍼스타K’, ‘K팝스타’와 같은 오디션 쇼와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등의 음악 프로그램은 이런 흐름을 인도했다. 이 프로그램들은 리메이크를 통해 7080세대를 대중음악의 소비자로 다시 데려오는 동시에 예전 가요들이 낡고 구린 옛 음악이 아니라 스토리를 품은 ‘전설’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나는 가수다>는 지금 아이돌 스타들처럼 그 당시 인기 가수였던 이들을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이 돌아왔다는 식의 스토리텔링을 입혀서 성공한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젊은 세대들은 과거를 학습할 수 있었다.



이때 홀연히 조용필이 나타난 것이다. 조용필은 <나는 가수다>에서 끝판왕이라 불리던 임재범을 훌쩍 능가하는 전설적 스토리를 가졌다. ‘7080시절 방송국 사장과 대담하던 사이다.’ ‘다른 가수들은 지각하면 벌서고 구타를 당하던 시대였지만 조용필은 1시간이 늦어도 PD가 90도로 인사했다’ 등의 실제 에피소드와 무용담, 그리고 그가 실제로 남긴 수많은 명곡과 수치로 드러나는 판매고와 수상내역은 마이클 조던이 찬란했던 90년대의 NBA를 상징하듯 우리 가요의 헤리티지 그 자체다. 가왕 조용필에 대한 이런저런 전설과 과거 이룩했던 음악적 성취가 온라인과 SNS에서 ‘스토리’로 소비되면서 조용필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기대를 품었다. 엄청난 전설의 귀환에 이견이란 불경한 것이었다. 조용필이란 브랜드의 스토리 앞에 전폭적인 열광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 과거를 복기하고 그때의 영광으로 미래의 희망을 보려는 움직임은 전 세계적인 경향이며,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할리우드만 봐도 전 세계가 좀비로 뒤덮이는 재난의 공포를 통해 녹록치 않은 현실을 그려내지만 한쪽에서는 미국의 가장 화려하며 영광스러웠던 시절을 상징하는 게츠비가 미국 굴지의 패션 브랜드 브룩스브라더스의 옷을 입고 다시 그 찬란하고 화려했던 시절로 초대장을 돌리는 식이다.

이런 시대에 조용필은 여전히 멋진 오빠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며 과거의 추억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현재를 찍고 그 너머를 보여주었다. 10년 만에 귀환한 가왕에게 열광하는 것은 조용필에 대한 추억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설에 동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멘토 열풍의 근원이 사실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체화하려는 욕구에 있듯, 우리는 전설을 함께 누리고 싶은 것이다. 이를 통해 찬란해질 어딘가로 데려가줄 것이란 무의식적인 기대를 품는 것이다. 이런 레전드 스토리를 소비하고픈 심리와 열망을 가왕이라는 브랜드를 가진 조용필이 젊은 감각과 그들에 맞는 접근법으로 돌아오면서 제대로 터트려 준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YPC프로덕션, 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