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필, 봄 제철음식처럼 감칠맛 나는 까닭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한국 대중음악사에는 큰 발자취를 남겨놓은 작은 거인들이 존재한다. 이들 모두 체구는 자그마했지만 대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커다란 음악의 손길로 지금껏 사랑받고 있다.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늦기 전에>로 대표되는 신중현의 음악은 뜨거운 여름날 시원한 소나기처럼 한국 가요계에 시원하게 쏟아진 로큰롤 음악의 축복이었다. 한편 80년대에 동그란 안경을 쓴 귀여운 작은 거인 김수철은 앳된 외모와 달리 가을이라는 계절과 어울린다. 단순히 김수철의 <못다핀 꽃 한송이>가 낙엽 떨어진 늦가을처럼 애절하고 쓸쓸해서만은 아니다. <황천길>, <서편제>로 대표되는 국악에 담긴 한의 미학을 현대적 크로스오버로 풀어낸 김수철의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있어 단단한 열매로 영글어져 남았다.

한편 우리는 겨울의 작은 거인들도 알고 있다. 유달리 추운 겨울이 길었던 우리 시대에 따스한 난로가 되어주었던 <아침이슬>로 대표되는 김민기의 음악들. 그리고 여전히 마음이 겨울일 수밖에 없던 현대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던 <서른 즈음에>와 <이등병의 편지>의 김광석에 이르기까지. 통기타 선율에 얹힌 겨울의 작은 거인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우리들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게 도와준다.

한편 19집 <헬로>를 낸 조용필 역시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조용필은 봄의 작은 거인이다. 봄이란 어떤 계절일까? 봄은 때론 겨울 같고 때론 여름 같아 변덕스럽고, 아지랑이 피어 나른하고, 가끔은 계절을 인식하기도 전에 금방 지나가 버린다. 또 보릿고개라는 말이 의미하듯 봄은 실속 없이 배고프고 서러운 계절이기도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또 봄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린다. 꽃이 핀 봄은 화사하고, 봄바람에 마음은 설레며, 또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해바라기를 하며 아무 고민 없이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계절이 봄이니 말이다.



조용필은 바로 그런 계절 봄의 작은 거인이다. 조용필의 목소리는 시원하거나, 묵직하거나, 부드럽지 않다. 그의 보컬은 봄의 아지랑이처럼 다소 간질거린다. 하지만 이 아지랑이 사이사이로 조용필은 다양한 톤의 음악들을 여유롭게 소화해왔다. 그의 첫 시작은 록 음악이었지만 소위 그가 뜨게 된 이유는 구성진 트로트의 기름기를 살짝 빼고 담백하지만 감칠맛 있게 부르면서부터였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시작으로 <미워 미워 미워>, <허공> 같은 곡들이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트로트가 아닌 팝 취향의 성인가요 역시 그의 아지랑이 같은 목소리와 잘 들어맞는다. 그의 대표적인 히트곡인 <창밖의 여자>나 히트곡 <서울 서울 서울>, ‘Q’가 이런 취향의 음악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용필은 7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90년대를 아우르는 인기스타가 될 수 있었다. 조용필 한 사람에게서 대중들은 이미자와 패티김 거기에 더해 <추억 속의 재회>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변진섭이나 신승훈 같은 팝발라드 가수의 매력까지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조용필의 매력이 보컬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의 음악은 깜짝 놀랄 만큼 새롭지는 않았지만 귀가 즐거울 만큼 세련되었다. 그리고 한창 인기 있던 시절 자기가 추구하는 음악만을 깊이 있게 파고들지는 않았지만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입맛의 대중가요들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울긋불긋한 새로운 옷차림의 유행이 시작되는 봄날의 번화가처럼. 이런 그의 음악들은 <단발머리>나 <못찾겠다 꾀꼬리>를 필두로 80년대의 뉴웨이브 영향을 받은 듯한 <어제 오늘 그리고>, <미지의 세계> 그리고 한국의 댄스음악 중에 가장 세련된 비트의 곡 중 하나라고 여겨지는 <장미꽃 불을 켜요> 같은 히트곡으로 이어진다.



사실 필자는 조용필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시기를 제대로 실감했던 세대는 아니다. 그저 그의 지난 음악과 자료들을 접하며 그 인기를 추측해 볼 따름이다. 오히려 내 또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의 인기가 어땠는지를 몸으로 겪은 세대다. 아직도 92년 봄소풍과 가을소풍 당시 잔디밭에서 회오리춤 추던 친구들의 휘몰아치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용필의 음악에 매력을 느낀 건 91년에 발표된 앨범 <꿈> 때문이다. 이 노래는 멋모르는 중학생의 귀에 그 사운드의 아련하고 세련된 매력 때문에 그저 멋있게만 들리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시기에 듣는 조용필의 <꿈>은 여전히 멋있지만 쓸쓸하고 울적해서 더 아름다운 노래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0년이 지난 후에 듣는 조용필의 <꿈>은 지금과 또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조용필의 <바운스>와 <헬로>가 담긴 조용필의 19집 음악으로 돌아오자. 우리에게 알려진 두 곡은 봄의 작은 거인이 부르는 열아홉 살을 위한 노래 같다. 그리고 앨범 곳곳에 숨겨진 다른 노래들은 그보다는 조금 더 연륜이 느껴지지만 유행하는 사운드의 옷을 갈아입었다. 깊이를 담보한 새로움, 혹은 ‘가왕’으로서의 무게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무거울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은 든다. 조용필의 새 노래를 들으며 모두들 이 쌀쌀했던 봄날에 오랜만에 어깨가 들썩이는 즐거운 기운이 느껴진다면 그걸로 ‘따봉’ 아닌가?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YPC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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