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취소, 언급할 가치 없다”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생생인터뷰]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의 정지영 감독이 기획 제작한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가 예상했던 대로 격렬한 논쟁에 휩싸여 있다. 이 작품은 천안함의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보다는 좌초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를 싣고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지난주 막을 내린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상영 후 GV(관객과의 대화)가 열릴 때 고엽제 회원인 것처럼 보이는 몇몇 관객들로부터 영화상영 자체에 대해 거센 항의를 받는 등 국내 보수단체들의 저항을 예고했다.

국방부는 현재 이 영화에 대한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럴 경우 영화계를 포함, 문화계 전반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여 또 한번의 보수-진보의 충돌이 예상된다. <천안함 프로젝트>를 선택하고 상영한 전주국제영화제 측에서는 의견과 입장, 정치적 태도가 다르다고 해서 영화상영 자체를 막고 나서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영화제에서의 상영취소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다음은 전주영화제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와의 일문일답.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언제인가?
“1월 중순이었다. 그때가 올해 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을 마감하던 때였는데 정지영 감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 감독은 당시 태국으로 외유 중이었고 국내에서 영화 마무리 작업을 하던 백승우 감독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전주영화제에 출품을 의뢰하려 했다. 백 감독에게서 곧바로 작품을 넘겨 받고 영화제 섹션 가운데 하나인 ‘코리아 시네마 스케이프’ 부문으로의 상영을 확정했다. 이 섹션은, 현재 한국영화의 흐름을 다양한 방향에서 압축적으로 소개하는 부문이다. 강우석 감독도 이 섹션에 초청받았고 박기용, 황규덕 감독처럼 독특한 자기 세계의 영화를 찍는 중견들, 강이관 같은 신예감독들의 작품이 대거 소개됐다. 정지영-백승우 감독의 이 다큐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이 다큐가 어느 정도는 논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가.
“당연히 그랬다. 예민한 소재니까. 이 문제만큼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이견이 많고극심하게 대립되는 것이 있을까? 이 다큐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이 반드시 있을 것으로 내다 봤다. 그렇다고 그게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수작이라고 봤고 우리 영화제에 맞다고 봤으며 ‘새로운 흐름’이라는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뽑았을 뿐이다.”



-항의를 예상했음에도 프로그래밍을 하고 상영을 강행한 이유는?
“영화의 존재이유는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질문을 하는 것이다. 질문과 의심을 잃어버린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만 받아 들이는 것은 영화를 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천안함 프로젝트>는 질문하고 또 질문하는 영화다. 영화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가진 작품이라고 봤다. 천안함 사건은 물론 표면적으로는 모든 진실이 드러난 것처럼 보인다. 모든 이견이 없어지고 정부와 군 당국의 공식적인 발표로 일단락 돼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은 아직 정리될 것이 더 남아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천안함 사태의 진실에 한걸음 더 다가서기 위한 노력의 일환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봤다.”

-정지영 감독의 기획의도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내가 대답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아마도 인터넷 언론인 서프라이즈의 신상철 대표가 구속되고 재판받는 과정을 보면서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정지영 감독은 그 공판이 공정하지 못했다고 봤다. 그래서 <부러진 화살>처럼 법정 영화를 떠올렸고 1차적으로 그 과정을 기록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천안함 사건의 핵심적 이슈로까지 접근하게 됐던 것 같다. 어쨌든 다큐 속에서 배우 강신일 씨가 나와 모의 법정 신을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시작된 단초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본다.”

-프로그래머로서 혹은 평론가로서 이 작품을 평가한다면?
“다큐멘터리는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그 맥락을 찾아가는 역할을 한다. 원인과 결과의 깊은 상관관계, 그 이면을 밝힌다. 예를 들면 천안함을 침몰시킨 원인이 무엇이냐(어뢰냐, 좌초냐)도 중요하지만 천안함 사태가 일어나게 됐던 개연성(남북관계), 그 이후의 결과(군사적 긴장상태)에 대해서도 분석력을 발휘한다. 이 다큐는 그 같은 저널리즘의 정신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봤다.”



-천안함 문제는 우리사회에 있어 일종의 화약고다. 영화에서 새롭게 폭로되는 사실이 있다고 봤나?
“그렇지 않다. 난 오히려 이 영화가 너무 얌전해서 재미없다고 봤다. 이미 다 나온 얘기들일 뿐이다. 논쟁적이라기 보다는 사건 자체를 교과서적으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식이다. 영화제를 하는 입장에서는 좀더 대중적으로 관심을 끌 수 있는 작품을 고려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대중들이 심심해 할 요소가 더 많다고 봤다.”

-일부 보수단체,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 영화의 상영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다큐가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내용일 수는 있겠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기사가 각각 다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럴 때 한쪽의 누군가가 기사를 내리라고 하지는 않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사회는 그 정도까지의 민주화는 됐다고 본다. 마찬가지다. 영화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영화를 내려라 말아라 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주시나 전주시민은 어떤 입장인가?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두고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제에서의 관객 반응은 어떤가? 매진인가?
“당연히 매진이다. 관객들 반응도 우호적이다. 종종 의도된, 공세적 질문이 있으나 백승우 감독이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다고 본다. <천안함 다큐멘터리>는 이념적 입장의 차이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고 소통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려는 작품이다. 그게 백승우 감독이 작품을 만든 의도이자 이 영화를 뽑은 나의 의도다. 영화는 영화고 다큐는 다큐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 작품을 봐주기를 기대한다.”

전주=영화평론가 오동진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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