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로피컬 마닐라’에서 ‘엄마는 창녀다’까지…감독 이상우의 세계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영화로 본 세상] 지금 이상우 감독의 영화를 얘기하는 건 다소 뒤늦은 것일지도, 아니면 아주 때이른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 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입소문을 타는 바람에, 영화판에선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만, 대중적으로는 아직 낯선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한 영화포털 사이트에서 치면 <작은 연못>을 찍은 연극연출가 출신 감독 이상우의 이름이 뜨거나 <펜트하우스 코끼리>에 나왔던 배우 이상우의 이름이 뜬다. 그만큼 이상우 감독은 아직 유명세를 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사이트에 신인감독 이상우의 이름이 없는 건, 다분히 의도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읽힌다. 아마도 영화 사이트는 이 ‘괴물같은 인간’ 이상우를 명단에 올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영화는 극악하다. 라스 폰 트리에나 박찬욱, 김기덕, 데이빗 린치 등의 영화를 두고 잔혹하다느니 엽기적이라느니, 고어(gore)적이라느니 하는 표현을 쓰지만 이상우의 영화는 그 범주를 넘어섰다. 그의 영화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역겹고(diwgusting) 더러우며(dirty) 위험한(dangerous) 요소로 가득차 있다. 일종의 ‘3D 영화’인 셈이다.

요즘 와서 여기저기서 들리는 그의 대표작 격인 작품 <엄마는 창녀다>를 보면 그렇다. 솔직히 얘기해서 이 작품은 이상우의 영화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하기야 그의 첫 작품인 <트로피컬 마닐라>에 비하면 아주 소프트한 느낌을 준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질나고’ ‘짜증나게’ 만드는 장면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설정, 대사, 관계들을 보면 이 영화 역시 참으로 흉폭하다.

일단 주인공 상우(감독 이상우가 직접 연기한다.)는 동네 날건달이다. 그것까지는 좋다. 그가 살아가는데 있어 기생하는 대상은 바로 엄마다. 그것까지도 뭐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기생 방식이 문제다. 상우는 엄마에게 창녀 일을 시킨다. 엄마는 60대며 다리를 다쳐 잘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니까 상우는 결론적으로 엄마 창녀에게 남자를 대주는 포주인 셈이다.

엄마가 몸을 파는 값은 한번에 9,900원. 만원 이하 ‘파격세일’이라는데 이 장사의 가격경쟁력이 있다. 상우를 찾아오는 남자는 구천구백원 정도만 쓸 수 있는 인간들이다. 뇌성마비나 하반신 불구의 장애인들이 상당수다. 몸값을 잔뜩 동전으로 갖고 오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늘 그렇듯이 휴가나온, 미친 ‘군바리’들도 있다. 엄마와 상우가 상대하는 남자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인간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엄마와 상우 역시 밑바닥 인생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한 셈이다. 시궁창이다. 쓰레기 인생이며 지옥의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우와 엄마의 대화는 종종 너무나 천진해서 오히려 웃음이 나올 정도다. 똥을 참지 못하는 엄마는 자주 팬티에 똥을 싸댄다. 그런 엄마에게 상우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엄마땜에 돌아버리겠어. 제발 똥 좀 싸지마.” 엄마가 답한다. “어릴 땐 니 똥기저귀 내가 다 갈았어!” 그런 엄마에게 상우는 픽 웃으며 이렇게 대꾸한다. “그래서? 그때 꺼 지금 복수하는 거야?” 둘이 앉아서 소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도 오히려 무슨 동화 속 아이들을 보는 느낌을 준다. 늘 삼겹살을 먹던 둘은 오랜만에 소고기가 너무 맛이 있다. 서로 고기를 먹여주는 모양이 다정한 모자이기 이를 데 없다. 소고기를 쩝쩝 먹어대던 상우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돈 많이 벌어야겠다.” 그러자 엄마는 굳은 표정을 하며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 상우야. 내가 열심히 할께.”



엄마에게 창녀 일을 시키는 남자. 그런 남자를 애지중지하는 엄마. 이건 정상인가 정상이 아닌가. 그렇다고 상우만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상우를 둘러싼 환경은 오히려 더한 느낌을 준다.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버리고 이미 딴 살림을 차린 아버지는 언뜻 지극히 정상적이고 올바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 그는 집안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자신의 의붓아들을 강간하며 즐긴다. 그의 아내는 그런 그의 인면수심을 모르고 사교에 가까운 교회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다. 그녀가 예수에게 기도하는 것은, 알고 보니, 식물인간으로 살아가는 전 남편(실제로는 호적상 여전히 남편인 사람)이 빨리 죽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 두 남녀, 그러니까 자신의 친모와 의붓아버지 뻘인 남자를 바라보는 이 집 딸도 제대로일리 없다. 딸은 종종 배가 다른 상우를 찾아와 자신들의 처지를 확인하고, 오히려 위로받고 싶어한다.

상우는 상우대로 자신만의 고민이 있다. 그에겐 자꾸 치근덕 거리며 따라 붙는 미소년과의 남자가 하나 있는데 이 남자아이가 볼 때 상우는 너무나 매력적인 연인이다. 그런 그를 상우는 늘 쌍소리를 해대며 좇아 내지만 어느 날 상우는 그 아이에게 역으로 강간을 당한다. 상우는 더 이상 남자든, 여자든 잠자리를 하면 안되는 상황인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는 현재 AIDS 보균자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창녀다>의 내용을 보고 기겁을 하는 사람들은 이상우의 데뷔작 <트로피컬 마닐라>를 보면 안된다. 감추거나, 가리거나, 그럴듯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이상우의 카메라는 <트로피컬 마닐라>에서 극단에 극단을 걷는다. 예컨대 남자가 오줌을 누는 장면의 경우도 뒤에서 찍지 않고 앞에서 찍는다. 일부러 자신은 다르게 찍는다는 듯, 그리고 이게 역겹다고 생각한다면 더 그렇게 생각하라는 듯 남자 성기를 이곳저곳에서 드러나게 한다.

<트로피컬 마닐라>는 엽기,잔혹에 역겨움, 더러움이 뒤범벅이 돼있는 영화다. 호모 섹슈얼과 매춘도 빠지지 않는다. <트로피컬 마닐라>는 한국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필리핀에 숨어사는 한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는 아버지가 아니라 짐승에 가까울 만큼 악마다. 그는 늘 엄마를 때리고 (처)먹고, (처)자는 인물일 뿐이다. 이상우는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직접 출연하며 등장하는데 역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필리핀에서 살아가는 한국 남자고, 변태성욕자로 나온다. 그는 주인공 남자가 학대하는 여자를 지켜보며 수음하고, 그것도 모자라 어느 날 강간까지 해댄다.

<트로피컬 마닐라>를 먼저 보면 <엄마는 창녀다>가 순한 영화라고 한다. 볼 만한 영화라고 한다. 그래서 <트로피컬 마닐라>를 먼저 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반대로 <트로피컬 마닐라>를 보면 이상우의 다른 영화를 아예 쳐다보지 않게 된다며 그래서 <엄마는 창녀다>를 먼저 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순서는 상관이 없다. 이상우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태도,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의 영화를 통째로 인정하거나 아니면 인정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상우가 가장 싫어하는 얘기일지 모르겠으나 그의 영화는 어느 부분에서만큼은 그의 사부 격인 김기덕을 닮았다. <트로피컬 마닐라>에서 여자가 꼭 가면을 쓰고 잠자리를 하는 장면들, 눈에 대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등등은 김기덕의 영화 <시간>을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김기덕도 이렇게까지 표현을 극단적으로 밀고 가지는 않는다. 김기덕이 사회적 이슈를 영화의 전면에 강하게 내세우는 것과(그의 영화 <사마리아> 등) 달리 이상우는 오히려 그것을 뒤로 숨기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트로피컬 마닐라>는 필리핀 내에 한국남성들이 저질러 놓은 문제, 곧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2세) 문제를 얘기한다. <엄마는 창녀다>는 노인 매춘, 근친강간, 장애인들의 성 문제 등등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들 이슈는 영화를 앞장서 끌고가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것을 표현하는 양식이 폭력적일만큼 지나치게 직접적이서 ‘(사회적) 이슈 파이팅’은 뒤로 가는 느낌을 준다.

이상우는 왜 이렇게 직접적이고 극단적인가. 그가 보는 세상은 우리와 다른 가 같은 가.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옳은 가, 그른 가. 그가 생각하는 세상의 풍경은 진실인가 허구인가. 우리는 그가 그리는 영화의 방식 혹은 영화 자체에 동의할 수 있는가 없는가. 적어도 분명한 것 한가지는 그가 지금 세상에 없는 얘기를 지어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영화가 역겨운 것은 역설적으로 실제의 얘기를 가감없이 해대서이다. 남들이라면 끔찍해서 피하고 외면하고 싶은 얘기를 대놓고 하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가 포르노와 다른 것은 포르노는 오로지 성적 환상만을 위해 이런저런 장면들을 만들어 내지만 이상우가 꿈꾸는 것은 성적인 오르가즘을 뛰어넘는다는 데에 있다. 그와 그의 영화가 불편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결국엔 치워야 할 ‘똥’을 삽으로 퍼다 보여주며, 지금 당장 치우는 게 나중을 위해 더 좋은 거 아니냐며, 낄낄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진실이 무서운 것은 견딜만 하다. 하지만 진실이 더러운 것은 참기가 어렵다. 이상우의 영화는 무서운 진실을 얘기하기 보다 더러운 진실을 얘기하는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영화는 칠레의 알렉산더 호도로프스키를 닮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좀더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 이상우는 가슴 한 켠에 활활 불타오르는 장작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때론 세상에 대한 분노가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분노만으로는 영화의 끝을 맺기 어렵다. 이상우가 배워야 할 점은 바로 그것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영화 ‘엄마는 창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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