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최근 방영하는 드라마의 기준으로만 판단하자면 조선시대는 상상 그 이상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장옥정은 최고의 한복 디자이너였고 또 전라도 일대의 최대 상인여관인 백년객관은 반인반수의 신수가 지켜준다니 말이다. 당연히 시대가 그랬으니 어쩌면 예인이나 왕족 같은 당시 스타들에 관한 대중문화 칼럼이 존재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없었으니 스타들의 매력 역시 쉽게 접하지는 못했을 터. 어쩌면 당시의 대중문화 칼럼들은 스타들의 사주풀이를 통해 그 매력을 전했을지 모른다. 그러니 믿거나 말거나 퓨전사극 속 칼럼을 읽는 기분으로 사주 네 기둥 중 태어난 날인 일주를 기준으로 <구가의 서>의 최강치 이승기와 <장옥정>의 숙종 유아인의 매력을 한번 비교해 보자.

1987년 1월 13일에 태어난 이승기와 1986년 10월 6일에 태어난 유아인의 일주는 각각 임술(壬戌)일과 계미(癸未)일이다.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일주에서 ‘나’의 본질 자체를 나타내는 천간인 일간이 임과 계로 모두 물을 의미한다. 물이란 지혜의 상징이자 또한 변화무쌍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똑같은 물이라 할지라도 임과 계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이승기의 일간인 임은 호수나 강물처럼 어쨌든 고여 있는 물을 의미한다. 언제 어떻게 찾아가든 그 자리에 있는 고정된 물이라는 의미이다. 언제나 찾아가면 시원한 물을 공급해주는 강가와 호수, 그래서 사람들은 늘 물가를 찾아가면 편안함과 안락함과 즐거움을 느낀다. 이승기가 대중들에게 주는 이미지도 그러하다. 다가가기 어려운 뇌쇄적인 매력으로 사람을 끄는 것이 아니라 잘생긴 모범생 아들 같은 ‘친숙함’이 후광을 발휘하는 특이한 케이스다.

반면 똑같은 물이라도 계는 고여 있는 물이 아니다. 계수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에 가까워서 아주 작은 이슬비일 수도 있고 또한 어마어마한 장대비일 수도 있다. 혹은 이제 막 비가 쏟아지려는 꾸물꾸물한 하늘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계수는 눈에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물이기도하다. 그러니 당연히 유아인의 매력은 이승기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 존재한다. 때론 수줍어서 때론 너무 과격해서 짐작할 수 없어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비, 일기예보마저 피해 버리는 비의 매력을 유아인은 지니고 있다.



순둥이 고등학생 이미지였던 유아인을 단숨에 존재감 있는 배우로 만들어준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 역할이 바로 이 비의 느낌이다. 재밌게도 단정한 성균관 유생들의 모습은 바로 임수 이승기의 이미지에 가깝다. 하지만 그곳에 마음대로 드나드는 자유분방한 조선시대 히피 같은 걸오는 바로 계수 유아인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시선을 아래로 내려 두 스타의 일주 지지를 알아보자. 놀랍게도 두 스타의 일지 역시 똑같이 흙을 의미하는 글자들이다. 하지만 이승기의 일지 술토는 동물의 형상으로는 ‘개’를 뜻하고 유아인의 일지 미토는 ‘양’을 뜻하는 글자로 각각 다르다.

생각해 보니 이승기의 이미지와 사람들에게 친숙한 동물인 ‘개’는 어쩐지 잘 어울린다. 아무리 요란하게 짖어도 혹은 사납게 굴어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동물이 바로 개다. 하지만 이승기의 관상은 애완견보다는 어딘지 사냥개와 비슷하다. 임술 일에 태어난 이승기는 호수 주변을 돌면서 짖어대는 에너지 넘치는 귀염상의 사냥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구가의 서>의 최강치가 이승기와 딱 궁합이 맞는 역할인 것은 그래서 부정할 수가 없다. 온몸에 야생 개과 동물의 피가 흐르는 신수로 변신할 때의 모습을 보면 이 역할은 이승기가 아니면 할 수 없겠다 싶다. 물론 이승기가 최강치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고 볼 수는 없다.



판타지 퓨전 사극의 연기는 아무래도 <일지매>나 <아랑 사또전>의 이준기의 능청스러움과 자연스러움을 따라갈 사람은 없다. 하지만 최강치의 모습이 때론 <1박2일>에서 복불복 게임하는 이승기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지언정 시청자들은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다. 어차피 많은 이들이 이승기를 보고 기대하는 것은 <1박2일>에서나 은행 광고에서나 <구가의 서>에서나 비슷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승기는 최고의 연기자나 가수보다는 이승기란 이름으로 소비된 지가 이미 오래다. ‘개’의 날에 태어난 이승기는 이처럼 타고난 친숙함이라는 매력을 갖추었다.

반면 ‘양’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친숙한 동물은 아니다. 더구나 계미일, 비오는 날의 양이라니 얼마나 처량해 보이는가? 어딘지 성경에 나오는 ‘길 잃은 양’이 떠오르는 날이다. 그리고 실제로 유아인의 길 잃은 양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목동이 아무리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쳐도 턱을 들고 고집을 부리며 빗속에 홀로 있는 양 한 마리. 하지만 사람들은 아흔아홉의 순종적인 양의 무리보다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더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완득이> 도완득부터 <패션왕> 강영걸까지 유아인은 길들여지지 않는 양 같은 인물들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쌓아왔다. 그런 그에게 어쩌면 곤룡포란 옷은 그리 맞지 않는 옷이었을지도 모른다. 왕은 울타리 안의 인물, 그것도 세상의 중심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유아인은 기존 사극의 왕과는 상당히 다른 흥미로운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중이다.

유아인은 드라마 상에 존재하는 숙종보다 훨씬 더 입체적으로 숙종을 표현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사극을 통틀어서 유아인이 연기하는 숙종처럼 예민하고, 고집스럽고, 여인에게 아련한 표정을 보여준 왕은 별로 없었다. 다만 아직도 유아인이 입고 있는 곤룡포가 때론 무겁게 보일 때가 있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너무 억지로 힘을 주어 내리까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가볍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한석규와 송중기가 <뿌리 깊은 나무>에서 보여주었던 신선하면서도 기품 있는 왕의 분위기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장옥정, 사랑에 살다>처럼 장희빈과 맞붙는 숙종이 개성 있는 왕으로 도드라진 드라마는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그건 대본의 힘보다는 오롯이 유아인이 만들어낸 캐릭터의 힘이다. 그렇기에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후반부에서 장옥정이 사약을 마시는 장면보다 오히려 사약을 내리기 전까지 갈팡질팡 고뇌할 숙종의 모습이 오히려 더 기대되는 바이다.

대중들은 묘하게도 때론 친숙한 인물을, 때론 까칠한 인물을 좋아한다. 그리고 사주 상에서 비슷한 듯 다른 글자를 가진 일주를 가진 인물인 이승기와 유아인은 각각 그 대척점에 자리해 있는 스타다. 물론 조선시대 정말 신수가 존재했는지, 장옥정이 정말 디자이너였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주를 바탕으로 한 이 칼럼 역시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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