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랬다. 가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손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손을 놓아야 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그래야 더 꽉 잡을 수 있다는 것을.“

- SBS <못난이 주의보>, 공준수(임주환)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한동안 저녁이면 눈물을 쏟아냈다. 그냥 눈시울을 적시는 수준이 아니라 목구멍이 따끔거리고 명치끝이 다 쑤실 정도니 도무지 무슨 조홧속인지 모르겠다. 이게 다 MBC <탐나는도다>의 올곧은 한양 선비 ‘박규’(임주환)가 SBS 저녁일일극 <못난이 주의보>의 주인공 ‘공준수’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탐나는도다> 적에도 사랑하는 버진(서우)을 떠나보내며 그토록 서럽게 울더니만 헤어졌던 동생들을 10년 만에 찾아와 머쓱해서 서 있는데 그냥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매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더 희한한 건 어쩌다 한 번씩 웃어도 그 웃음이 서글퍼 눈물이 난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배우 임주환의 눈빛이 나를 울린 것만은 아니었다. 어린 공준수(강이석)가 울 때도 매번 따라 울었으니까. 착하지만 사고뭉치인 아버지(안내상) 땜에 속 썩는 준수의 처지가 하도 딱해서, 그 아이가 천사 같은 새어머니(신애라)를 맞이하고 감개무량해하는 그 표정이 또 딱해서, 그리고 어떻게든 새로 생긴 동생들 비위를 맞추려드는 품새가 안쓰러워 울었었다.

그렇게 가족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인 의젓한 어린 소년에게 세상은 왜 그리 잔인해야만 했는지. 아버지도 새어머니도 죄다 잃고, 게다가 새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자책감까지 끌어안고 살아가게 된 준수. 결국엔 동생 현석(최태준)이 실수로 저지른 살인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만다. 단지 똑똑한 내 동생이 살인자 소리를 듣게 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준수가 태어나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단다. 하나는 어릴 적에 한 문제를 틀렸다고 속상해하는 현석이를 위해서 자신의 백점짜리 시험지를 감췄던 일, 또 하나는 바로 기꺼이 살인 누명을 쓴 일이다. 이제 십년 만에 가석방으로 출소한 준수는 막내 동생 나리(설현)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진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동생들이 아무리 질색을 하며 마다해도 준수에게 그들은 뒷바라지해야 마땅할 가족이니까.



엄마의 말씀대로 손을 잡고 있어야 했으나 더 꽉 잡고자 가족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는 돌아와 다시금 가족을 위해 살아간다. 그런데 이 순간 왜 얼마 전 종영한 KBS <힘내요, 미스터 김!>이 생각나는 걸까? 조카와 동생들을 거두느라 허리 필 날이 없었던 김태평(김동완)도 가족이 삶의 전부가 아니었던가. 가족을 돌보느라 연애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그. 가족을 끔찍이 여기는 것도 좋지만 준수가 부디 미스터 김처럼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야무지게 제 밥그릇 찾아가며 살아달란 말이다. 누구처럼? SBS <돈의 화신>의 이차돈(강지환)이나 tvN <나인>의 박선우(이진욱)처럼, SBS <출생의 비밀>의 정이현(성유리)처럼 진취적이고 지혜로워서 더 이상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천오백 원짜리 김밥 한 줄에 단무지와 장국으로 배를 채워가며 동생네 집 대문 앞에 눈치 없이 과일이랑 우유랑 사다 나르지 말고 이젠 자신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버젓이 잘 살아야 동생들에게도 득이 된다는 사실을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할 텐데. 무엇보다 동생들로 인해 사랑을 포기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제발 행복해져서 더 이상 그의 눈이 슬픔으로 가득하지 않기를.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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