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 언제쯤 돼야 이름값을 할 것인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부활>과 <마왕> 두 편의 복수극 드라마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은 김지우 작가와 박찬홍 연출의 세 번째 복수극 <상어>가 드디어 나타났다. <마왕>이 방송된 것은 2007년, 그 후로 5년 이상을 더 넘긴 뒤에야 <상어>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이 <부활>과 <마왕>은 당시의 체감 인기보다 더 많은 입소문을 탔다. 전작들이 한국 드라마에 흔치 않은 웰메이드 복수극 드라마란 평가 덕에 <상어>는 방영 전부터 대단한 복수극이 등장하리란 기대감에 부풀게 했다. 게다가 냉동실의 고등어도 아니고 통조림으로 흔히 먹는 참치도 아니고 이름만 들어도 온몸에 으스스 소름이 돋는 상어 아닌가?

더구나 <상어>의 첫 장면인 캠코더 속 어린 이수의 대사들은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 살기 위해선 끊임없이 움직여야 된대. 멈추면 죽으니까. 자면서도 움직여야 상어는 살 수 있어. 그래도 바다에선 상어가 제일 강해.” 그렇게 말한 뒤에 어린 이수는 어린 해우의 상어가 가장 강해서 좋아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아무도 상어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불쌍한 상어를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지금에서는 현재 <상어>를 시청하고 있는 <부활>과 <마왕>의 팬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대사 같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상어>는 만듦새에는 큰 문제가 없는 드라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웰메이드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고 청소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흘러가는 과정에도 꼼꼼한 설정들이 돋보인다. 작가와 연출이 얼마나 성실하게 드라마에 힘을 쏟고 있는지도 확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왜 <상어>의 시청률은 높지 않을까? 혹은 시청자들은 <상어>에 쉽게 열광하지 못할까? 문제는 연출과 작가의 꼼꼼함이 오 년 사이에 다소 진부한 것들로 변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마왕>과 <부활>의 매력적인 요소들은 다른 드라마에서 좀 더 빠른 호흡과 개성적인 설정으로 변형되어 자주 나타나기까지 했다. <적도의 남자>나 <추적자>, <돈의 화신> 등등 우리나라 드라마의 복수극은 5년 전에 비해 그 수준과 재미가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너무 늦게 돌아온 <상어>는 인물들의 대사나 상황이 시청자들의 감각에 비해 몇 발자국 뒤쳐져 있다. 당연히 시청자들이 예측하는 그대로 드라마가 진행되다 보니 복수극이라 하기에 다소 심심해져 버린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싱싱한 <상어>를 기대했을 터인데 눈앞에 있는 것은 유통기한 5년 동안 맛에는 변화가 없지만 진미라고 하기엔 심심한 상어 통조림이다.



이런 문제는 특히 두 남녀주인공의 청소년시절을 보여주는 초반에 더 도드라졌다. 1회부터 4회까지 이어지는 동안 남녀주인공의 과거는 너무나 많은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장면들이었다. 어딘지 고독하면서도 여학생들이 말을 걸고 싶어지는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전학생, 그 남학생에게 반한 발랄한 여학생. 하지만 무슨 우연의 장난인지 남학생의 아버지는 호텔을 운영하는 여학생 집안에 운전기사로 들어간다. 물론 그런 상황에 관계없이 두 남녀주인공은 서로 애틋한 감정을 품는다.

이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음에 이르게 된 남자주인공의 아버지. 그리고 그 비밀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남자주인공과 그 남자주인공을 도우려고 애쓰지만 크게 도움은 되지 않는 여자주인공. 마지막 남자주인공이 사고를 위장한 모종의 음모로 죽음에 이르고- 물론 진짜 죽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여자주인공은 호수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한다. 이때 여자주인공을 짝사랑하던 학교 선배의 등장으로 여학생은 자살을 포기하고 대신 언젠가 남자주인공이 죽은 진짜 이유를 밝혀내리라 다짐한다.

여기까지가 <상어>의 과거를 보여주는 대략적인 흐름이다. 언뜻언뜻 비슷한 드라마들의 패턴이 보였고, 실망스러움 역시 종종 느껴졌다. 너무 포장된 대사들은 오히려 따분했고 종종 반복되는 과거와 현재의 플래시백은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부활>과 <마왕>에 이은 복수극이고 제목마저 <상어>인데.

어쨌든 <상어>는 지루한 과거회상을 거치며 많은 밑밥을 깔아놓았고 본격적으로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흥미로운 밑밥을 수거해가는 과정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복수극에 어울리게 <상어>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는 것일 터다.

그런 면에서 <상어>의 4회에 등장한 수족관 수조 속에서 상어가 헤엄치는 모습은 제작진의 의도와 달리 이 드라마의 현재 문제점을 정확하게 은유하는 장면이다. 튼튼한 유리벽 속 상어는 아무리 사나워도 아무런 긴장감과 공포도 주지 못한다. 깨질 것 같지 않던 유리가 깨지고 상어가 바로 코앞에 있을 때에야 시청자들은 오들오들 떨리는 전율을 체험하는 법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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