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에 대한 호평, 혹평으로 바뀐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5집을 들고 돌아온 이효리에 대한 호평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5집에는 지난 앨범들과는 달리 자신의 진솔한 삶이 고스란히 손때처럼 묻어났기 때문이다. 트렌드 세터나 섹시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는 여전했지만 여기에 조금은 편안해진 스토리텔러 같은 모습이 더해졌다고나 할까. 사실 타이틀곡인 ‘Bad girls’도 좋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미스코리아’나 'Holly Jolly Bus', 'Special' 같은 곡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건 그 때문일 게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음악을 갖고 나온 이효리에 대해 쏟아지던 호평은 단 몇 주만에 혹평으로 바뀌었다. 음악방송 출연을 2주만 하고 휴식기에 들어간 반면, 예능 프로그램은 줄기차게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들이 쏟아졌다. 이효리는 가수인가 예능인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제기됐다. 여기에 이효리 측근이라는 사람의 쓸데없는 설명은 불에 기름을 부운 격이 되었다.

한 매체는 이효리 측근의 얘기라며 음악방송 중단의 이유에 대해 “요즘 가요계가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고, 음악 방송의 경우 아이돌 팬층이 대다수”라며 “이효리가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부분과 다소 맞지 않고 고충이 있어 우선적으로 중단하게 됐다"는 식으로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액면 그대로만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의 순위제가 부활된 음악 프로그램은 아이돌 중심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따라서 이효리 같은 아이돌을 벗어난(혹은 벗어나려는) 가수들에게는 어색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개념 있는 행보’라고도 볼 수 있는 이효리의 음악방송 중단은 호평보다는 혹평을 더 받았다. 이유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과소비되면서 생긴 그녀의 왜곡된 이미지 때문이다. 똑같은 모습도 너무 많이 보이게 되면 진력이 나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이효리라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계속 나오는 것은 시청자들로서는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여기도 이효리, 저기도 이효리인 상황은 심지어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효리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자칭 타칭 예능 고수(?)인데다 실제로 출연한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올리기까지 하는 상황이니 그녀를 모시려는 프로그램이 줄을 서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게다가 이효리의 입장에서도 예전 프로그램을 통해 인연이 있는 PD들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이지만, 문제는 예능이 이효리를 소비하는 방식에도 있다.



모든 프로그램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프로그램들은 이효리를 ‘기 센 여자’로 캐릭터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해피투게더>는 제목에 걸맞게 여러 출연자가 함께 해피한 모습을 보여줘야 균형이 맞지만 이효리가 출연한 분량에서는 거의 그녀의 독무대처럼 그려졌다. “난 쿨한 여자니까.”라는 이효리의 전용멘트는 이런 상황에서는 쿨함을 넘어 ‘기 센 여자’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심지어 돌직구가 쿨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건 그것이 순수하고 솔직한 느낌을 전해주었을 때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자칫 드센 느낌으로 변질될 수 있다.

또한 <맨발의 친구들>이나 <안녕하세요>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효리는 센 캐릭터를 잡는 더 센 캐릭터로 그려졌다. ‘강호동 잡는 이효리’는 ‘효리성 복통’을 앓는 강호동을 통해 웃음을 줄 수 있었지만 그녀의 센 이미지를 강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또 <안녕하세요>에서는 아예 대놓고 이영자에게 독설을 날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러자 이효리는 과거 이영자의 ‘안 좋은 일’을 거론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예능이 일관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이효리의 ‘기 센 여자’ 이미지는 과거처럼 쿨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는 음악 방송 중단 같은 소신 있는 행동조차 ‘너무 나대는 이미지’로 보이게 만든다. 측근의 설명은 그런 뜻이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이효리와 아이돌을 음악적으로도 비교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그녀에 대한 달라진 대중정서의 변화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내고 있는 ‘기 센 여자’ 이미지는 이번 5집 앨범이 기대하게 만든 이효리의 보다 성숙한 이미지와도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5집 앨범의 분위기는 그녀로 하여금 그저 ‘센 언니’가 아니라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성숙한 언니’를 기대하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예전의 모습으로 반복 소비되고 있다.

새 음반을 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본격 활동을 나선 이효리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순심이 같은 새로운 사회활동을 통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면서 그런 변화된 삶이 음악으로 뭉쳐져 결실을 맺은 5집은 그녀의 새로운 출사표지만 달라진 그녀를 받아줄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없었던 셈이다.

순위제가 부활된 음악 프로그램은 달라진 자신의 음악적 성향과는 잘 맞지도 않고 또한 아이돌을 벗어난 나이의 자신 같은 가수들에게는 어딘지 어색한 무대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이효리만이 느끼는 것이 아닐 게다. 실로 우리네 음악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이 아닌 싱어 송 라이터나 순위와는 상관없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음악인들이 음반을 냈을 때 그들에 맞게 노래를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몇 개나 되는가.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조금은 밀려난 시청 시간대에 남아있는 음악 프로그램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은 달라진 이효리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 이효리가 예능에서 효과를 봤던 ‘센 이미지’만을 불러와 소비시켰다. 물론 프로그램들은 이효리를 통해 화제도 얻고 시청률도 얻었지만 이효리에게는 그다지 좋은 효과를 내지 못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효리는 음원을 냈을 때의 호평이, 본격적으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혹평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물론 잘못된 이미지 노출의 문제가 가장 크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이효리처럼 아이돌을 벗어난 나이에 이제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려는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나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이 깔려 있기도 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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