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고 또 벗고’…여가수들은 민망하지도 않을까

[엔터미디어=노준영의 오드아이] 필자의 어머니는 음악을 좋아하신다. 젊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으셨고, 트로트부터 시작해 인기 아이돌 그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듣곤 하신다. 듣다가 모르는 부분이나 혹은 어머니만의 의견이 생기시면 나에게 전화를 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꺼내신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공감대가 사라져 소통하기 어려운 어머니와 필자 사이를 이어주는 공감의 연결 고리가 바로 음악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최근 어머니는 필자에게 근심어린 말을 건넸다. 시간이 나는 주말에 음악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니 다같이 보기에는 다소 민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컴백한 걸그룹, 여자 아티스트, 심지어 남자 아이돌 그룹까지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장년층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우연찮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많은 아티스트들이 컴백을 선언하고 있다. 다가오는 본격적인 여름 시즌에도 상당수의 아티스트들이 신곡으로 대중들을 만날 예정이다.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사실 중에 하나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컴백과 동시에 콘셉트 자체가 지나치게 선정적인 게 아니냐, 혹은 노출이 과다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섹시 콘셉트를 바탕으로 하는 아티스트가 많아져서 그렇다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는 지점이다.

물론 섹시한 콘셉트가 음악과 안무, 그리고 전반적인 구성 요소들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스토리텔링’ 으로 이어졌을 때는 일명 ‘까임 방지권’을 획득할 수 있다. 아티스트의 기본에 충실한 모습을 바탕으로 섹시한 이미지를 구현해도 ‘멋있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다. 아무리 비주얼이 중요한 시대라지만 아티스트가 갖춰야 할 기본적 덕목에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줘야 대중들은 지지를 보낸다. 모든 것에 납득이 필요하고, 일정 수준의 개연성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섹시 콘셉트가 완성되게 만드는 방법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기반을 닦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하루가 다르게 노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아티스트들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과 걱정은 결국 한 눈에 봐도 특별한 개연성이 존재하지 않는 노출 포인트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음악 보다 살색 이미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눈과 귀가 함께 즐거워야 할 순간에 눈만 자극하니 특별한 감흥을 느끼기 어려워진 것이다. 요즘의 음원 시장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선택을 이끌어 내야 한다. 워낙 선택 카드가 많다. 그러니 대중들의 선택 욕구를 빠르게 장악하지 못하면 밀리는 게 다반사다. 이런 상황에서 빠르게 눈도장을 찍는 건 감성보다 말초신경일 수 있다. 홍보의 척도를 좌우하는 ‘실시간 검색 순위’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면 쉽게 오르락 내리락 거릴 수 있다. ‘좀 더 빨리! 좀 더 먼저!’를 외치다 보니 노출을 필두로 한 콘셉트를 선택하는 경우가 점점 많이 지고 있는 것이다.

1세대 아이돌 열풍 때부터 안정적인 수익구조로 평가 받아온 기획 시스템도 한 몫을 담당한다. 효율성을 따져 빠르고 정확한 방법을 통해 안정적인 수입을 담보할 수 있는 기획을 모색하다 보니 기획사에 가장 최적화 되어 있는 시스템을 선택하려 든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이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고민하고 회의를 거듭해도 결국 나오는 생각들은 자극적인 이야기 뿐이다. 똑같은 과정을 거쳐 똑같이 육성되는 아티스트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방안도 그렇게 많지 않다. 기획사에서 제시한 이야기를 아티스트들은 당연히 따라야만 한다. 고착화된 기획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는 지금의 구조를 생각해 보면 논란은 어쩌면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 일 수도 있겠지만, 기획 단계에서부터 느린 방법론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현재 케이팝계에서는 이런 느린 방향성, 혹은 자신들만의 방향성을 선택해 톡톡한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들이 많이 있다. 충분히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빠르게 눈길을 사로잡고 시끌시끌한 이슈를 만들어 내는 마케팅 방법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경로를 좀 더 다양하게 만들고, 기획 단계부터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주체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조율하면서 가장 발전적이면서도 좋은 방향을 찾아내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아이디어가 공존해야 살 수 있는 업계인 만큼 분명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 케이팝 열풍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 발전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내려면 그만큼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같이 평면화된 모습으로는 지속적인 케이팝 열풍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냉철한 판단이다.

다들 똑같은 바람일 것이다. 케이팝 열풍이 더 오래 가서 국가적인 위상을 높여주길 바라고, 대중음악이 세대와 세대 사이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수단이길 바란다. 하지만 지금의 가요계는 다소 빨리 시들 수밖에 없고, 시작과 끝이 분명하게 보이는 콘셉트에 의존하고 있다. 때로는 불확실성을 높일 필요도 있다. 대중들에게 좀 더 신선한 설렘을 안겨주는 가요계가 되길 기대해 본다.

칼럼니스트 노준영 no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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