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Z’ 관객들의 오감 강타에는 성공했지만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월드워Z>는 베스트셀러인 맥스 브룩스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이다. 엄청난 규모의 스펙터클이 담긴 예고영상이 공개되고, 브레드피트의 내한 행사까지 열리면서, 영화에 대한 국내 팬들의 관심은 치솟았다. 주연은 물론, 제작에도 참여한 브레드피트는 영화 속 주요 장소이기도 한 한국을 방문하여 레드카펫 행사를 벌였는데, 환호하는 국내 팬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했다. 마침내 개봉하여 전모를 드러낸 영화는 가히 압도적이다. 한국에서 찍은 장면은 기대 이하였지만, 전 세계를 무대로 날뛰는 좀비들의 인해전술 장면은 관객들의 오감을 강타했다. 영화의 스펙터클이 강렬한 것은 분명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들도 많다. <월드워Z>는 관객이 무엇을 기대하였는지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만한 영화이다.

◆ 세계적 규모의 감염재난영화

좀비영화는 1968년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필두로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던 B급 영화 장르로, 덜 죽은 시체들이 무리지어 다니며 사람들을 산채로 뜯어먹는 장면이 핵심적으로 등장하는 일종의 ‘혐오물’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뱀파이어가 휙휙 날아다니며 오직 피만 빨아먹는 것에 비해, 좀비는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의 사지는 물론이고 내장까지 맛나게 파먹는다. 뱀파이어가 귀족적이고 단독적인데 반해 좀비는 서민적이고 군중적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뱀파이어와 마찬가지로 좀비에 물린 사람도 좀비가 되는 감염성을 핵심으로 지닌다.

<28일후>(2003)를 거치면서, 좀비영화들도 크게 변화한다. 좀비들이 빠르고 강해졌으며, 감염으로 인한 재난의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좀비영화가 액션 감염 재난물로 변천하면서, 정치적인 함의도 강해졌다. 가령 리메이크된 <크레이지>(2010)는 재난관리를 명분으로 자행되는 엄청난 국가폭력의 논리를 고발하며 국가의 통치성 자체를 의문시하는 영화이다. 이는 뱀파이어 영화의 외피를 지닌 <데이브레이커스>(2010)가 자본주의와 인간욕망의 한계를 비판하였던 것과 같은 궤이다.

<월드워Z>는 감염 재난물로서, 글로벌한 규모를 자랑한다. 사실 감염은 인간세계를 종말에 이르게 할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이다. 항생제의 발달로 인류가 미생물을 정복했다고 잠시 착각한 적도 있었지만, 항생제의 발달보다 빠른 미생물의 진화는 슈퍼 박테리아나 변종바이러스의 출현을 낳았다. 또한 전 세계적인 교통량의 증가는 일단 전염병이 출현하면 세계적인 전파를 막을 길이 없다는 암울한 전망을 보여준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외국에서 <블레임:인류멸망2011>(2008) <컨테이젼>(2011)같은 대규모 감염재난 영화들이 만들어졌으며,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연가시>(2012), TV드라마 <세계의 끝>(2013), <감기>(2013)등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월드워Z>의 오프닝은 <컨테이젼>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세계적 규모로 감염이 전파되는 장면을 짧은 뉴스 클립장면으로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이런 재난에 대처하는 군 당국과 국제기구의 모습을 비중 있게 보여준다. 하지만 <월드워Z>는 <컨테이젼>처럼 전문성과 정교함을 지닌 영화가 아니다. 대신 <월드워Z>가 주력하는 것은 엄청난 스케일의 스펙터클이다. 특히 군중액션장면이 압권이다. 제리(브래드 피트) 가족이 처음 맞닥뜨리는 도심재난 상황은 911의 악몽을 재현한 듯하다. 또한 발원지를 찾아 한국의 평택을 거쳐 이스라엘로 날아간 제리가 보게 된 광경은 실로 본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소름끼치는 장면들이다. 좀비들이 애벌레들처럼 우글우글 모여 자신들의 몸으로 탑을 쌓고, 예루살렘 장벽에 기어올라 마침내 장벽을 넘어 인간사냥을 벌이는 장면은 한번 보면 좀처럼 잊히질 않는 악몽이다. 예루살렘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제리가 비행기 안에서 만난 좀비들을 물리치기 위해 폭탄을 터뜨리자, 반파된 비행기 밖으로 승객들과 좀비들이 날아가는 장면도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이다.

엄청난 스펙터클이 곳곳에 배치되어 끔찍함을 체험하게 하지만, 이를 통해 얻어지는 통찰이나 깊은 사유는 별로 없다. 영국에 불시착한 제리가 연구소에서 좀비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며, 좀비들을 끝장낼 백신의 아이디어를 얻는 장면도 그리 신선하지 않다. 주먹구구식으로 면역 방법을 알아낸 제리가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음료수 캔을 따먹는 장면은 유머러스하지만, 다소 허무하다. 그 허무함이 <화성침공>의 마지막에 비해서야 덜한 편이지만, <데이브레이커스>처럼 고도의 정치철학적인 함의를 끌어낼 것이 없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아쉽다.



◆ 껍데기만 남은 가족영화

원작소설은 인류 대재난을 경험한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영화는 UN조사관이었으나 은퇴한 제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가장이자 전문가로서 그가 겪는 재난의 생생한 현장을 보여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가장 익숙한 가족-영웅 서사를 차용한 셈이다. 하지만 그 적용이 다소 작위적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제리 가족의 아침식사시간으로 시작된다. TV에선 세계적인 이상 징후와 계엄령이 내려졌다는 뉴스가 나오지만, 제리 가족은 한가롭게 “계엄령이 뭐예요?”라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등굣길에 오른다. 그러나 곧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건물이 폭파되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 길길이 날뛰는 인간들을 보게 된다. 여기에 딸의 천식도 첨가되지만, 진부한 양념이다. 이어지는 시퀀스에서 제리는 재난 당국에서 급히 찾는 재원임이 말해진다.

아니 왜? 전 세계 재난현장을 누비며 누구보다 재난 상황에 대한 직감이 발달해 있을 제리가 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계엄령 하에서 딸들을 등교시키려 했을까. 이는 영화 시작과 동시에, 평범한 가족이 느닷없이 재난에 맞닥뜨리는 상황 속으로 관객의 감정을 끌어들이려는 작위적인 설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리는 평범한 가장이자 평범하지 않은 전문가여야 하기 때문에 모순이 벌어지는 것이다.



본래 재난 영화는 가장 강렬한 가족 영화의 요소를 띄기 때문에, 이런 식의 모순은 어느 정도 용납될 수 있다. 문제는 제리가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현장에 투입되면서, 가족서사의 요소가 급격히 힘을 잃고, 마지막 포옹장면까지 그 동력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제리가 가장의 책임을 완수하고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후, 부인은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한 채 가장의 무훈을 빌며 애타게 전화를 기다리거나 엉뚱한 때에 전화를 걸어 위험에 빠뜨리는 역할로 축소되고, 아이들은 화면에서 사라진다. ‘후방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전장의 아버지’라는 1.2차 세계대전 당시의 가부장적 가족구도가 재현되는 것이다.

영화는 재난 시 요인들의 가족만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현실이 불편해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대피과정에서 만난 히스패닉 소년을 제리의 가족과 동행시킨다. 하지만 소년이 제리 가족과 유기적으로 삼투되진 않는다. 한편 제리는 이스라엘에서 만난 여군과 강한 전우애를 느끼게 되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영화에 수용되지 않는다. 가족서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월드워Z>는 전 세계가 좀비로 뒤덮인다는 근 미래적 파국을 보여주면서도, 20세기 보수적 가족서사를 끝까지 붙잡는다. 하지만 그 마저도 가족 간의 동력은 급격히 소실되고, 영화가 외적으로 부여하는 당위로만 가족의 테두리가 유지된다. <우주전쟁>이 보여주었던 21세기의 참담한 부권몰락이 차라리 더 솔직해 보이는 이유이다.

P.S 제리가 평택미군기지에서 듣게 된 북한의 재난 예방책은 진짜 황당하다. 북한이니까 가능한 해법이라는 게 뭔지, 직접 확인하시길...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월드워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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