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교실’, 그거 매트릭스 속 교실 아닌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은 대개 사랑스럽고 달콤하며 평화롭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등장하는 드라마 속 초등학교 세계는 순수 그 자체에 가깝다. 물론 드라마 속 초등학교가 매트릭스 세계의 초등학교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현실의 초등학교란 이미 무한경쟁 시스템의 출발선에서 숨고르기, 아니 이미 첫 경주가 시작된 경쟁의 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은 때론 상처 받고, 때론 성숙한 어른들보다 잔인하며, 때론 자기들만의 파벌사회를 만들어간다. 우리 어른들은 종종 그 세계의 실체를 외면하려 한다. 모두들 그 시절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등학교가 가상세계 속의 그곳처럼 아름답지 않으면 어딘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추억으로 아름답게 세탁된 ‘유년’이 과거의 진짜 그 시절처럼 끔찍한 기억을 환기시키길 바라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 사전 정보 없이 <여왕의 교실>을 접한 시청자들이라면 이 드라마는 꽤나 당황스럽게 다가오기 십상이다. <천사들의 합창> 속 순백의 옷을 입은 천사 선생님 히메나가 아닌 검정 정장 차림의 무표정한 마녀 마여진(고현정) 선생님이 등장하는 초등학교라니 말이다. 더구나 마녀 마여진이 날리는 말들은 초등학생이 도무지 소화하기 힘든 돌팔매다.

“차별? 그게 어때서?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낙오된 사람들이 차별대우를 받는 건 당연한 사회규칙 아닌가?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잖아. 너희들은 사회에서 이런 특권을 누리며 풍족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1퍼센트. 백 명 중에 1명. 우리 반에서 행복한 그런 특권층은 나올까 말까. 6학년 전체에서 1명 정도? 나머지 99퍼센트는 어떻게 살까? 차별이야, 부당해, 사회가 잘못됐어. 술 마시면서 그렇게 떠들면서 사는 거지. 대부분의 너희 부모들처럼. 참 쓸데없어. 경쟁이 잘못됐다고 소리쳐봤자 세상이 달라지진 않지.”

하지만 드라마의 잔인함은 단순히 마녀 교사 마여진의 존재 하나만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불편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6학년 3반 아이들의 관계자체가 마여진의 대사 못지않게 현실적이고 냉혹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순수성을 가진 인물들인 심하나나 오동구는 이 드라마에서 왕따의 대상이나 말썽꾸러기의 위치에 놓인다. 마치 약육강식의 어른들 사회에서 대개의 물어뜯긴 ‘을’들을 바라보는 시선처럼.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견디게 만드는 건 여전히 정의로운 심하나, 상처 받았으나 해맑은 오동구, 겉보기엔 냉정하지만 알고 보면 청렴결백한 판사 같은 김서현 캐릭터다. 우리는 이 세 주인공이 마여진 교사에 맞서 끔찍한 현실인 <여왕의 교실>을 바꾸기를 응원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현실을 반영하는 듯 보이던 드라마는 다시 한 번 매트릭스 속 학원물로 돌변한다. 실제 세계에서 초등학생들이 마녀 같은 교사에 맞서 싸운다고? 그건 정말 불가능한 작전이잖아? 동시에 이 드라마가 어린이를 위한 드라마가 아닌 밤10시에 방영되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여왕의 교실>은 현실적인 교실이 아니라 어른들이 초등학생들로 돌아간 가상세계 속 잔혹동화 교실이다. 하지만 <여왕의 교실>에서 은유하는 6학년3반은 지금 2013년 어른들의 교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하나, 오동구, 김서현 같은 내면의 어린아이를 간직한 이들에게 2013년의 교실은 경쟁하라고 비겁해지라고 남들을 짓밟으라고 부추긴다. 더불어 거대한 힘에 쉽게 휘둘리는 초등학생 같은 대다수의 어른들은 손쉽게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의 자리에 슬며시 발을 내디딘다.

하지만 내면의 어린아이를 간직한 어른들은 이 세계를 바꾸려고 어떻게든 부딪치고 싸우기 마련이다. 물론 그 싸움은 16부작 드라마보다 훨씬 더 길고 지난하고 막막한 싸움으로 이어지겠지만. 그런 까닭에 <여왕의 교실>을 가상세계 속의 교실로 설정한다면 고현정이 연기하는 이 가상세계 속의 교사 마여진도 그렇게 나쁜 절대마녀 같은 캐릭터는 아니다. 어쩌면 그녀는 가상세계가 감춰둔 비밀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불량한 동네 형들에게 늘 얻어맞던 오동구는 마녀 마여진에게 질문한다.

“싸워서 이길 힘이 없는 약자는 그냥 당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건가요?”

마여진의 대답은 이러하다.

“방법은 없어. 목숨을 거는 수밖에. 약자를 괴롭히는 모든 폭력은 비겁함에서 시작된다. 나보다 약하니까 괴롭히겠다는 비겁함. 어쩔 수 없이 맞서야 할 때는 그 비겁함을 공격해야 하는데. 약자들은 목숨을 거는 것 밖에 방법이 없지. 하지만 이런 용기는 아무나 낼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드라마 속 오동구는 비겁한 동네 형들에게 끝까지 달려들어 결국 그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난다. 가상세계가 아닌 현실 속 <여왕의 교실>에서는 이런 조언마저 해주지 않는다. 그저 인자하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어깨를 다독이는 척하다 등골을 빼먹을 따름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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