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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우월주의에 젖은 가정 폭력극 ‘콩가네’
기사입력 :[ 2013-07-07 13:01 ]


‘콩가네’, 엉뚱한 이들에게 향한 조롱의 화살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콩가네>는 남기웅 감독의 코믹 가족극으로, 심은진, 서효명의 출연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기웅 감독은 <대학로에서 매춘하다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로 장편 데뷔하여, <우렁각시><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 등으로 독특한 영화세계를 인정받았다. 베이비복스 출신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심은진과 <드림하이2>에 출연한 후 다양한 연예활동을 하고 있는 서효명이 두 딸로 출연하고, <친절한 금자씨>등에서 개성 넘치는 악역을 연기했던 김병옥과 <사물의 비밀>에서 짧지만 강렬한 연기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윤다경이 아버지와 어머니로 출연한다고 하니, 코미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처참하다. 웃으라고 배치한 장면들이 너무 포악해서 웃음이 나질 않는다. 가장 문제는 영화의 시선인데, 풍자하고 비판해야 할 대상에게는 동조의 눈길을 주고, 엉뚱한 이들에게 조롱의 화살을 날린다. 그 결과 성정치학적으로 최악의 텍스트가 탄생하였다. 영화는 한마디로 남성 우월주의 쩌는 가정 폭력극이자, 저렇게 살아도 돌아갈 가정이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 남성 판타지의 현현이다.

◆ 만성화된 가정폭력, 이게 지금 웃을 일인가

교도소에서 출소한 장백호는 속초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마중도 나오지 않은 아내를 다짜고짜 화장실에 가둔다. 지방방송국 아나운서인 큰 딸은 자기를 좋아하는 피디에게 아버지가 일본에서 활동 중인 록커라고 거짓말을 한다. 대학생인 둘째 딸과 고3인 아들도 아버지를 불편하게 여기긴 마찬가지이다. 장백호는 교도소에서 모은 돈으로 국수집을 차리려 하지만, 잔금 날 5백 만 원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출근하려는 가족들을 헛간에 감금한다. 장백호가 가족들을 심문하고, 갇힌 가족들끼리 5백 만 원의 행방을 묻는 가운데, 이들의 비밀이 차례로 드러난다. 마트에서 일하는 아내는 바람을 피우는 중이었고, 큰 딸은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작은 딸은 일곱 명의 남자와 다중연애를 하고 있었고, 아들은 결석을 밥 먹듯이 하고 있었다. 이틀 넘게 가족을 감금했지만 5백 만 원의 행방은 묘연하고, 가족들은 사회생활에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큰 딸의 거짓말이 방송 사고를 몰고 오나 했지만 그마저 유야무야되고, 마침내 가족들은 탈출하여 다른 사고를 치게 되는데...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가정폭력의 상황이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서사의 전개이다. 교도소를 제집처럼 들락거렸다는 아버지를 둔 가정치고는 가정경제가 매우 잘 유지되고 있으며, 자녀들도 잘 자라준 게 놀라울 지경인데, 가족의 생계와 교육에 아무런 보탬도 주지 못한 아버지가 면회와 마중이 없다고 불만을 표하고, 5백만 원 때문에 가족을 감금해 실직위기에 내모는 게 과연 가당한 상황인가. (5백만 원이라면 이들 가족의 두 달 치 생활비나 큰 딸의 두 달 치 월급에 크게 못 미칠 금액이다.) 화장실 문에는 왜 밖에서 잠그는 자물쇠가 달려있을까. 폭력적인 아버지가 달아 놓은 거라 할지라도 아버지가 복역하는 동안 제거됐어야 할 흔적이 아니었을까.

아버지가 집에 오자마자 엄마를 감금하는 상황에서도 가족들은 왜 으레 있는 일 인양 넘기고, 아버지가 자신들을 헛간에 가두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왜 적극적으로 항거하거나 구조요청을 하지 않고, 유창한 거짓말로 둘러대려 할까. 아버지 역시 당장 잔금을 치르는 게 급선무라면 가족들을 대책 없이 감금해 둘 것이 아니라, 협상이나 다른 방법을 통해 일단 돈을 조달하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큰 딸인데,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왜 적극적으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아버지와 5백만 원에 대한 통 큰 협상을 하지 않을까. (아니, 그녀는 왜 방까지 얻어놓고 집에 들어와 사는 걸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가능한 대답은 아버지는 가족을 감금하고 폭행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이고, 나머지 가족들은 그에 길들여져 적극적으로 항거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 밖에 없다. 사실 영화 속 상황은 전형적인 가정폭력의 모습이다. 아들의 선생님이 찾아왔을 때, 아버지는 “문제없는 가정이 어디 있냐”며 남의 가정사에 관여하지 말라고 선언하지 않던가.



◆ 아버지의 폭력성 대신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비난하다

장백호는 그깟 5백만 원이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생계나 장래를 위기에 빠뜨린다. 그는 가족의 삶이나 미래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자신의 욕망이나 화풀이에만 관심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장백호에게 연민의 시선을 드리운 채 그가 고등학교 때 악기를 훔쳐 친구 어머니를 구했다는 것과 교도소에서 손을 다쳐 기타리스트의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인생이 한번 기스가 나면 계속 난다’는 말과 함께.

그가 국수집을 하려는 것은 어머니의 손맛을 잊지 못해서라나. 그런데 현재 장백호는 자기 어머니도 돌보지 않는 사람이다. 마지막에야 존재를 드러내는 치매노인인 어머니에게 장백호는 출소 후 문안도 드리지 않았고, 가족을 감금한 상태에서 노인은 방치되어 있었다. 인생이 한번 기스가 나면 계속 난다는 말은 맞다. 장백호는 지금 자식의 인생에 마구 기스를 내는 중이다. 큰 딸은 직업을 잃었고, 둘째 딸은 남성들의 폭력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아들은 기타리스트의 꿈을 포기하게 생겼다.



하지만 영화는 나쁜 아버지 장백호를 비판하는 대신 아내의 외도와 큰딸의 이중생활과 작은 딸의 다중연애를 조롱하기에 바쁘다. 가족의 생계와 삼남매의 교육을 책임지고 치매노인을 수발한 아내의 삶은 누락되고 그녀의 외도만 조명된다. (이 시선을 윈터바텀의 <에브리데이>와 비교해보라.)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좋은 가정 출신인양 이미지를 가꾸어 온 큰 딸의 노력은 무시되고 그녀의 이중생활만 조롱의 표적이 된다. 칼 같은 관리로 다중연애를 해가며 댄서로 활동해온 작은 딸의 꿈은 지워지고 그녀는 남성폭력에 노출된다. 그녀들의 삶은 소거되고,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만 부각된다. (여성이 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여성의 삶에서 성적인 측면만 강조되고 이것이 비난의 논거가 되는 것이 문제이다. 같은 방식이 동성애자의 재현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게이가 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게이의 삶에서 성적인 측면만 강조되고 그것이 비난의 논거로 사용되는 것이 문제이다.)

영화에서 그녀들은 모두 남근에 의해 충족되어야 할 성욕 들끓는 존재이거나, 남자를 속이고 갈취하는 존재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한편 영화 속 남자들은 잘 뭉친다. 둘째 딸의 일곱 애인들은 연대하여 그녀를 협박하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여자들은 믿을 게 못되니 자신이 프락치가 되겠다고 한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아버지가 주인공이지만, 영화는 아내와 딸들의 성생활을 조롱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영화의 이러한 시선은 찌질한 남성이 여성을 비난하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여성에게 ‘썅년’이니 ‘된장녀’니 비난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영화는 시작 5분 만에 이미 자신의 성 정치학을 밝히고 들어갔다. 장백호가 좁은 길에서 차를 세우고 오줌을 누려하는데, 소형자동차가 빵빵거리자 장백호는 차에 다가가 여성운전자의 얼굴에 오줌을 갈긴다. 바바리 맨처럼 성기를 여성 위협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클락션을 울렸다는 이유만으로 성적 봉변을 당한 이 여성운전자는 이후 몇 번 더 등장한다. 장백호와 마주치자 그녀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숨는다. 마지막엔 미숙한 운전으로 장백호에게 “너 오늘 죽자”라며 위협 당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우리시대 여성멸시의 또 하나의 키워드인 ‘김여사’를 대변하는 캐릭터이다. 색녀, 썅년, 된장녀, 김여사 등으로 여성들을 표상하는 이 영화의 무의식은 남성 우월주의다.

자식을 임신시키기만 한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대접받기를 원하고, 뒤늦게 나타나 가족들의 삶에 개입할 권한이 있다고 믿는 영화의 시선 역시 남근 중심적이다. 그들의 삶이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그걸 ‘나쁜 아빠’가 문제 삼고, 개입·교정하려 드는 것은 터무니없다. 현실에서 이런 종류의 아버지가 맞이할 상황은 아마 이런 것이다. 이미 가족이 해체되었거나, 아버지가 찾아올 수 없도록 몰래 이사를 갔거나, 아내와 장성한 자식들이 아버지를 집에 발도 못 들여놓게 하는 상황 등. 결국 <콩가네>는 이렇게 개차반인 아버지도 돌아갈 집이 있을 거라는 남성 판타지의 발현이다. 참으로 뻔뻔하지 않은가.

P.S 홍보사에서 배포한 영화의 보도 자료에는 “인간 말종 아버지보다 더 콩가루 집안....장백호도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아버지 장백호, 팔을 걷어 부치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버지 장백호는 가족을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관객에게 웃음을 기반으로 한 잔잔한 감동을 준다...”라고 쓰여 있다. 세상에나!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콩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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