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들’, 이 감시시스템이 진짜 무서운 까닭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감시자들>은 설경우, 정우성, 한효주가 주연을 맡고, <조용한 세상>을 찍었던 조의석 감독과 촬영감독 출신의 김병서 감독이 공동연출 한 범죄액션물이다. 홍콩의 두기봉 감독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유내해 감독의 데뷔작 <천공의 눈>(2007)을 원작으로, 대단히 전문적인 경찰조직의 세계를 특화시켜 보여준다.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영화가 시작되자 전철 안 사람들의 일상적인 움직임이 보인다. 한효주가 음악을 들으며 서 있고, 설경구는 앉아서 졸고 있고, 정우성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쓱 지나간다. 그런데 뭔가 긴장감이 흐른다. 카메라는 설경구의 행동을 면밀하게 훑으며, 여기에 따라붙는 한효주를 함께 담는다. 정우성은 어떤 긴밀한 계획 하에 움직이는지,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공간들 사이를 이동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약 10분 동안 관객은 누가 무슨 이유로 누구를 쫓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지켜보게 된다. 설경구가 자신에게 따라붙는 한효주를 알아채고 아는 척을 하고, 한효주가 시치미를 떼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이것이 경찰의 감시반 신입을 뽑는 훈련이었음을 알게 된다. 한효주는 뛰어난 눈썰미와 기억력으로 설경구 반장으로부터 “출근해”를 받아내지만, 감시반의 업무가 그리 녹록치는 않다.

감시반원들은 감시대상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감시대상이 눈치 채지 못하게 모든 동태를 관찰하고 기억한다. 이들은 감시대상 주변에 퀵서비스, 택시기사, 노점상 등으로 변장하여 포진한 채, 서로 무선마이크로 교신하며 통제실의 지시에 따라 팀플레이를 펼친다. 통제실은 이들을 일망 조망하면서 움직임을 지시하고, CCTV, 신용카드, 휴대폰, 차량블랙박스 등 모든 전자통신기기를 해독해 감시대상자의 정보를 ‘사찰’한다. 보통의 범죄 액션물에서 일선 경찰들이 “00한테 감시 붙여” 한마디로 표현되었을 작업의 이면을 <감시자들>이 확대 심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한국, 홍콩을 비롯해 전 세계 어느 나라 경찰도 영화 속의 감시반원들처럼 일하지는 않는다. <감시자들>은 영화적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감시’라는 조직적인 행위를 집중 조명한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경찰조직의 교신을 듣고 움직이는 놈이 있다. 그는 도시의 정보포식자처럼, 가장 상위의 피라미드에서 고독하게 일한다. 마치 배트맨처럼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정우성의 지휘에 의해, 3분 만에 테헤란로의 저축은행이 털린다. 단순 은행 강도가 아니다. 은행의 파산을 앞두고 은행장이 고객들의 개인금고에 있는 100억 원대의 채권을 훔친 것이다. 일당 중 현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자는 정우성에게 철저한 응징을 당한다.

그들의 다음 목표는 압수수색을 앞두고 있는 회계법인의 자료를 훔치는 것이고, 그 다음 목표는 증권거래소 해킹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들썩일 만한’ 사건을 덮기 위해,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어떤 조직의 지령에 의해 움직인다. 정우성은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매우 프로페셔널한 범죄자이다.

◆ 특화된 범죄액션물이자, 감시 시스템의 위험을 암시하는 영화

범죄 액션물로서 <감시자들>의 쾌감은 경찰조직과 범죄 집단이 기존영화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전문적이고 스케일이 크다는 점에 있다. <감시자들>의 범죄 스케일과 성격을 보면, <도둑들>의 범죄자들이 좀도둑처럼 보일 지경이다. 전문적인 범죄자들과 전문적인 경찰이 ‘잘 치고 잘 받는’ 공수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장르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 특화된 소재를 채택해 놓고도 얼간이 코미디와 신파로 두루뭉술하게 망쳐놓았던 <사이코메트리> 같은 영화를 떠올리거나, 법의학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가져와놓고도 억지 반전과 깜짝쇼로 무리수를 두었던 <용서는 없다>등의 영화와 견주어보면 더욱 그렇다. 이 정도로 근사하게 전문성을 살리고, 장르적 쾌감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시자들>은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또한 <감시자들>은 우리가 사는 일상 공간이 수많은 교신과 감시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테헤란로, 여의도, 청계천 등 관객들이 익히 아는 서울의 풍경을 디테일하게 담아냄으로써 실감을 더한다. 영화는 유려한 촬영과 세밀한 편집으로 일망 조망의 느낌과 긴박감을 잘 살려내었다. 2004년도 영화 <썸>이 CCTV로 가득 찬 도시와, 이를 일망 조망할 수 있는 도시 시스템을 보여준 바 있다. 10년이 경과한 지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한 감시망이 만들어졌다. <감시자들>에서 범죄현장의 CCTV에 얼굴이 찍힌 범죄자 중 한 명이 근처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샀는데, 편의점 CCTV와 그가 결제에 쓴 교통카드로 인해 그의 생활권이 드러난다.

영화에서 설경구는 3년 전 간첩단 사건을 언급하면서, 자신들의 업무가 ‘민간인 불법사찰’로 여론의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일임을 말한다. 이를테면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는 경찰, 검찰, 국정원 등 수사기관들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온갖 장비를 이용해 사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갖추어져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시스템을 누가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영화에서 정우성은 ‘나쁜’ 자본과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문적인 범죄를 벌이는 사람으로 암시되며, 그를 막는 경찰은 ‘착한’ 공권력으로 표상된다. 그러나 공권력이라는 도구가 국민이 아닌 다른 특정 집단을 위해 쓰일 때, 선악의 구도는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 국정원 선거개입이라는 헌정파괴사건을 목도한 시점에서 면밀히 곱씹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감시자들>은 속편을 예고하며, 원작의 주인공 중 한명이었던 임달화를 깜짝 출연시키며, 정우성이 국제범죄조직과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하기야 이 정도 스케일의 범죄라면 당연히 그러 할 것이다. 최근 범죄영화들의 범죄들은 예전 같으면 전부 간첩의 행위라고 할 만한 범죄들이다. 가령 <화차>에서 평범한 사람을 죽여 그의 신분으로 사는 여주인공의 행위는 과거에는 첩보물에나 나올 만한 것이었다. <쉬리>의 여간첩은 사람은 죽이지 않은 채 요양원에 있는 여자의 얼굴과 이름을 도용해 살았는데, <화차>에서 빚에 몰린 평범한 여자는 신분세탁을 위해 연속살인을 감행한다.

<감시자들>에서 액체폭탄으로 차를 폭파시키고, 독침을 가지고 다니며, 증권거래소를 해킹하는 등의 행위는 ‘대남혁명전사’나 할 법한 일들이다. 그러나 그런 일을 일개 범죄자가 국가의 요구가 아닌 자본의 요구에 의해 행한다. 특수훈련을 받은 ‘대남혁명 전사’가 달동네에서 바보로 잠복하다 자결명령이나 받는 동안(<은밀하게 위대하게>), 남한의 범죄자들과 심지어 빚에 몰린 평범한 여자는 국가니 혁명이니 대의명분과도 무관하게, ‘오직 돈 때문에’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감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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